[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얼음꽃 만발…길림의 ‘무송’
길림은 고구려시기 축조된 용담산성이 있는?오랜 역사를 이어온 고도였다. 명청시대에는 중국 동북지방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1907년에는 길림성의 성도로 지정됐지만, 1953년?장춘으로 성도가?옮겨가면서 길림시는 길림성 제2의 도시가 된다.
길림시는 송화강이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강의 도시다. 강변에는 버드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겨울이 되면 이 나무들에 무송(霧淞)이라고 부르는 성에가 얼음꽃으로 만개한다. 중국에서 무송은 예부터?수괘(??), 수기화(水汽花), 설류(雪柳)라고 불렀으며, 한국에서는 상고대, 서양에서는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라고 했다.
길림의 무송은 나무줄기나 가지, 풀잎 등에 피어나며 금방내린 눈처럼 보여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길림의 무송은 장강의 삼협(長江三峽), 계림의 산수(桂林山水), 운남의 석림(云南石林)과 더불어 중국의 4대 경관으로 칭송된다.
길림의 송화강변에서 무송이 나타나는 것은 송화호와 풍만댐 때문이다. 1937년 착공돼 1945년 완공된 풍만댐은 수력발전소로 500㎢의 면적에 110억톤의 저수량을 가진 송화호라는 거대한 호수를 안고 있다. 풍만댐의 높이는 91m에 달한다.
댐에서는 수력발전을 위해 물을 방류하는데 겨울철에는 무송을 피우기 위해 방류 시간대를 매일 해뜨기 전으로 결정했다. 방류되는 물은 댐의 높이로?생긴 낙차 때문에 유속이 빨라지면서 물 분자의 충돌에너지가 커지고 수온이 높아진다. 그래서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도 강물은 얼지 않고 길림시를 관통하며 무송도(霧淞島)까지 흐른다.
이렇게 방출된 물이 찬 공기의 영향을 받아 증발해 강변의 나뭇가지에 붙으면서 무송이 형성된다.
길림에서 오랫동안 무송을 관찰한 사람들은 “무송은 영하 10도 이상에서는 생기지 않으며 영하 30도가 넘으면 수증기가 나무에 전달되기 전에 얼어버려 생기기 어렵다. 영하 15도에서 영하 25도 사이에서 가장 잘 생긴다. 그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증발된 수증기가 엉켜서 무송이 되기 전에 강으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바람이 적당히 불 때가 좋다”고 말한다.
무송은 해뜨기 전 생기기 시작하여 해가 뜨는 찰나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은 햇살이 반투명체인 무송을 비쳤을 때 눈보다 훨씬 더 반짝거리고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무송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녹아버리고, 지나치게 많은 무송이 형성되면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쉽게 떨어져서 절정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동쪽 산등성이에서 떠오른 태양이 한 뼘쯤 올라오면 기온은 서서히 높아지고 무송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다가 조금 더 지나면 우수수 한꺼번에 떨어져 내린다. 이 떨어지는 눈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은빛 나비가 춤을 추며 나는 듯 황홀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눈밭에 떨어진 무송은 방금 내린 눈과 같다. 가만히 살펴보면 눈보다는 훨씬 큰 입자를 가지고 있는데 독특한 디테일과 형태미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무송이 가장 아름다운 지역은 풍만댐 바로 아래에 있는 송화강의 양안이다. 구 도로와 신 도로로 구분할 수 있는 송화강의 양안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구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오래된 가로수가 높게 자라고 있으며 강변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그래서 쉽게 무송이 피지 않지만 한번 피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신 도로 옆에는 버드나무들이 고목이 되어 길게 늘어서 있다. 그 버드나무의 가늘고 긴 잔가지에 피어난 무송의 아름다움은 송화강변 무송의 백미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십 리에 달하는 송화강 양안은 안개가 자욱하게 덮였다 물러나면 강변에 자리 잡은 소나무, 수양버들, 백양나무, 상수리나무, 그리고 갈대숲까지 모두가 무송으로 뒤덮인다.?
꽃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그 모습은 나무에 보석이 걸려있는 듯, 어여쁜 눈꽃이 피어있는 듯, 환상적인 몽환의 세계를 연출한다.?힘차게 흘러가는 강물과 함께 묘한 대비를 이루며 도심까지 연결된다.
시내에서는 길림대교 부근부터 천주교성당 사이에서 무송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무송이 만개할 때면 시민과 관광객들이 한데 어울려 환호를 연발하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고적한 분위기를 가진 무송의 풍경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길림시에서 북쪽으로 40여km 떨어진 우라가진(?拉街?)의 송화강변에 있는 무송도를 꼽을 수 있다.
무송도의 이른 아침은 나무마다 온통 얼음 꽃이 피어난다. 집집마다 아침을 준비하는 굴뚝의 연기같다. 무송도는 다른 곳에 비해 무송을 만나기가 쉽다.
해가 뜨기 전 무송도로 건너가는 배를 타려면 길림의 호텔에 숙박하기 보다는 전날 저녁 이곳에 와서 뱃사공과 시간약속을 정하는 것이 좋다.
나룻터에 도착하면 강 건너 무송도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여기도 송화강물은 빠르게 흘러간다. 강을 건너는 것은 뗏목의 원리를 응용해서 만든 듯 보이는 작은 배다. 배는 이쪽 강변과 저쪽 강변을 노와 놋줄에 의지해 오가고 있다.
강을 건너 무송도에 내리면 섬 전체가 무송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는다. 무송도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사진작가가?많다. 필자가 무송도를 찾은 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무송도로 건넌 사람은?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필자 역시 무송도의 일부가 된 듯 한껏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영하 20도의 맹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송 속을 어슬렁거리며 반나절을 보냈다.
무송도의 또다른 명품은 석양의 풍경이다. 은빛 설원에 서있는 고목들과 낙조, 송화강에 반영된 은파는 신선이 노닐던 세계를 방불케 한다.
한국에서 길림으로 갈 때에는 장춘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장춘공항에서 길림시까지는 전철이 운행되는데, 1시간 남짓 걸린다. 승용차보다 전철이?빠르다.?
길림시내에서 풍만저수지나 무송도에서 무송을 보려고 한다면 전날 시간에 맞춰 택시를 대절해 두는 것이 좋다.?무송이 형성되는 장소나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데다 눈길을 걷는 것이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 따뜻한 음료수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곳도 마땅찮아 비상식량이나 보온병 등을 준비해서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유를 가져야만 무송을 제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