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조선족의 환갑잔치
회갑(回甲)은 60갑자를 한 바퀴를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해의 간지와 동일한 해를 기념하는 생일잔치로서 회갑 혹은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부모의 회갑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일가친척과 부모님 친구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인다.
중국 조선족의 경우 회갑을 맞은 갑주(甲主)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전날 먼저 작은 잔치를 베풀어 부모님을 모시고 즐긴다. 부모는 자식이 회갑잔치하는 장소에 참석하지 않는다.
부모는 지병이 없는 한 자식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같이 살아도 건물을 달리하거나 집 근처에 따로 살면서 식사 등 일상생활을 별도로 한다.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아마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별로 흠이 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20여년 중국의 조선족 사회를 돌아보면서 많은 회갑잔치를 경험했다. 그 중 2006년 10월28일 압록강변의 집안시 용봉각이라는 식당에서 열린 박춘송, 이춘화 부부의 회갑연 모습이 아주 인상 깊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회갑잔치를 하는 장소 앞에는 한족들이 명절이나 경축일 등에 사용하는 궁문이라고 부르는 대문 모양의 비닐문을 설치하는 것이 최근 관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이지만?넣어 보았다.
박춘송씨는 집안조선족학교의 교사로 재직했는데 지금은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 상황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인이 다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갑연을 거행해 참석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가족은 부부와 유치원 교사인 큰딸, 중국인 사위, 외손녀, 그리고 간호사로 근무하는 작은 딸과 사위 등이다.
회갑연회장의 뒤쪽 벽에는 ‘박춘송선생 리춘화여사 환갑축수연’ 그 아래쪽으로 왼쪽에는 ‘오래오래 앉으세요’ 오른쪽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 중앙에는 ‘장수’라는 글씨의 현수막을 걸었다.
앞에는 갑주 부부가 큰상을 받고 앉았고 좌우로 세로로 마련된 자리에는 형제자매, 친척과 친구들이 앉는다. 상차림은 과일, 떡, 꽃, 닭, 생선 등의 음식을 3단으로 화려하게 차렸으며 갑주 부부의 상에는 ‘축복’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오전 9시30분 갑주부부가 입장하면서 연회가 시작되었다. 집안조선족학교 학생밴드가 반주를 맡았고 남녀 두 명의 사회자가 진행을 맡았다. 먼저 외손녀가 헌화를 하고 사회자는 갑주의 형제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조선족 학교 유치원생들이 나와서 축하공연을 하였으며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케이크의 꽃잎이 벌어지면서 초가 나오고 촛불을 밝혔다.
이 때 생일축가를 부르고 딸과 사위가 앞으로 나와서 부모님의 장수를 기원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어서 집안조선족학교 박정복 교장선생님이 갑주 부부의 약력을 소개했다. 조선족학교 학생들이 오르간 공연을 펼쳤고, 지휘자인 최선생이 ‘반갑습니다’를 축가로 불렀다. 이 학교의 오르간 연주단은 전국 대회에서 금상을 탈 정도로 중국에서도 유명했기 때문에 특별히 초청됐다.
10시 5분, 장녀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오늘의 가장 핵심적인 행사인 헌수례(獻壽禮)가 거행되었다.
헌수례는 장녀부부로부터 시작하여 차녀, 외손녀, 친척, 손자항렬 전체로 이어졌으며 학교 선생님 대표, 장녀 친구들, 사위 친구, 제자, 동료교사 등도 모두 헌수를 하였다.
장녀는 금목걸이와 시계, 차녀는 금반지를 선물로 준비했다.
축사는 외손녀를 시작으로 제자 대표가 그 뒤를 이었고 집안 문화관 문선생이 축가를 불렀으며, 마지막으로 갑주 부부의 와인 러브샷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헌수에 대한 답사는 이춘화 여사가 담당하였으며 축하객 모두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할 때 딸이 하객들에게 일일이 술을 한 잔씩 권하면서 하객들에게는 축하전용 담배인 쌍희자(囍) 상표 담배 1갑씩을 선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