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이가산촌의 고택
이가산촌(李家山村)은 산서성(山西省, sh?n x? sh?ng) 여양산(呂梁山, l? li?ng sh?n) 가운데 황하 상류에 있으며 명청(明淸) 시기의 건축물들이 산재한 오래된 마을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지금의 행적구역으로 가장 가까운 큰 도시는 태원시(太原市, t?i yu?n sh?)가 있으며 남쪽은 유림맹문진(柳林孟??, li? l?n m?ng m?n zh?n), 동쪽은 임가평진(林家坪?, l?n ji? p?ng zh?n), 북쪽은 총라욕진(????, c?ng lu? y? zh?n)과 붙어 있고 서쪽은 섬서성(陝西省, sh?n x? sh?ng)의 오보현(吳堡縣, w? b?o xi?n)과 황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가산촌은 적구진(?口?, q? k?u zh?n)에서 3km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대부분 ‘흙 요동’이라고 불리는 땅굴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가산촌은 이가산(李家山, l? ji? sh?n)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산동과 하남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정착하였으며 지금은 장씨, 하씨, 이씨, 제씨 등의 집성촌이다.
청나라 건륭 41년 3월에 기재된 이씨세계도(李氏世系?)에는 이씨의 시조는 산서성 평양 곡옥현 호적으로, 서남향 중사점(西南?中史店, x? n?n xi?ng zh?ng sh? di?n) 사람이며 1522~1566년에 이가산이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곡옥현지에는 처음 12가호에 남자 19명, 여자 10명, 어린이 2명이 살았다고 하며 1980년대에 행정촌이 되었고 2000년 인구조사에는 45가호, 153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마을입구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이가산촌의 정경은 장관이었다. 한눈에 마을 전체가 고층빌딩인 것같은 느낌이 든다. 마을을 둘러보니 하나하나의 독립된 건축물들이 층을 이루는 듯 배치되어 있었고 집의 내부에는 토굴을 파고 장식을 하였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자연친화적이고 과학적인 배려가 숨어있다.
가옥들은 40도의 경사가 있는 수백m의 산언덕에 굴을 파고 돌을 갈아서 만든 벽돌과 나무, 돌을 재료로 살림집을 지은 것인데 이씨들이 번창하면서 이등상과 이덕봉이라는 두 부호가 서로 경쟁하듯 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어떤 집은 산을 옮기다시피 무려 11채의 집이 3층으로 지어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중복되는 디자인이 없이 서로 다른 품격을 갖도록 정밀하게 설계하고 정교하게 건설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벽과 지붕을 땅굴을 파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가산촌에는 크고 작은 살림집 100여 채가 원형을 보존한 채 남아있으며 220여 가호 760여명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또 문화재급의 호화로운 청나라 시기 건축군이 8종 이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