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백두산의 야생화
백두산은 한민족과 청나라 양국의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이다.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들은 1628년부터 백두산 일원에 봉금령(封禁令)을 시행하여 주거와 경작을 금하였다. 봉금령은 1880년 해제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전까지 3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으므로 원시적인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1990년 처음 중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백두산의 원시적인 신비로움은 나를 매혹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계절과 관계없이 백두산 전역에 산재해서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생화들이었다. 그래서 10여 년간 백두산을 답사하면서 틈나는 대로 야생화를 촬영하게 되었다. 백두산에는 한국에서는 희귀종이거나 이미 멸종된 야생화들 상당수가 서식하고 있었다.
최근 다시 백두산에 오르면서 예전에 야생화를 촬영했던 지역에 다시 가 보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예전에 만났던 야생화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야생화들의 군락지가 이동한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봉금기간은 야생화들이 자연 그대로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하면서 살아올 수 있었으나 개방이 되어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야생화들은 가시 지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2~6도이며 최저기온은 영하 23~34도, 최고기온은 34~38도에 이른다. 9월 하순에 서리가 내리고 결빙기는 10월부터 이듬해 6월 초까지 이어진다. 겨우내 쌓인 눈은 이듬해 봄이 되어야 녹는다. 연평균 강우량은 1000~1500mm이고 강우량의 60%가 6월에서 8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기상조건을 보면 백두산에는 식물의 생장이 어려울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화사하게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눈과 토양에 있었다.
겨울철에 내린 눈은 바람이 불지 않는 지역은 30cm 이상 쌓이는 것이 보통이며 구릉이나 계곡 등 낮은 지역에는 몇 미터씩 쌓이기도 한다. 그리고 한번 쌓인 눈은 이듬해 봄이 되어야 녹기 때문에 이 눈이 강풍과 혹한으로부터 0°C 전후 온도로 식물의 종자나 뿌리를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화산 폭발로 형성된 부석질의 다공질 토양은 분화구가 가까울수록 두껍고 알갱이가 크기 때문에 심한 강우량에도 뿌리가 썩을 정도로 물이 고여 있지 않고 배수가 잘되며 식물이 생존할 수 있는 영양소와 수분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생명체는 종족 보존의 본능이 있기 때문에 생존이 어려운 계절이 되기 전에 개화와 결실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백두산을 포함한 두만강유역에서는 6월부터 8월 사이의 짧은 기간에 1년간 피는 다양한 야생화들이 계절과 관계없이 집중적으로 개화하는 것이다.
백두산을 탐사하다보면 천연 습지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황승포와 원지, 두만강의 발원지인 적봉은 그 범위가 상당히 넓으며 수많은 수중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그중에서 황승포(黃松蒲)는 필자가 발견한 백두산 인근의 가장 넓은 천연습지였다. 도로를 경계로 양쪽에는 백산차, 설사초, 속세, 은방울꽃, 두루미꽃 등이 군락을 이루고 북부지방에서만 간간이 볼 수 있다는 버들까치 수영과 민송대 등 희귀종 식물들을 비롯하여 속사초 등 이름 모를 수많은 수중식물이 서식하고 있었다.
비룡폭포 부근과 흑풍구 지역, 와호봉 가는 길과 천지 호반, 청석봉과 백운봉, 오호봉 등 백두산을 오르는 곳곳마다 야생화들의 종은 다양해졌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밀림 깊숙한 곳일수록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야생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백두산과 두만강 변 곳곳에서 발견된 복주머니 난은 엄청난 변종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야생화 애호가들이 몰려오고 있다. 야생화 연구가들은 야생화 서식지를 발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주머니 난은 다른 식물들은 자라기 어려운 참나무 군락지에 서식한다. 그것은 참나무 군락지가 그늘이 많아서 햇빛이 적고 습기가 높기 때문이다.
2007년 장백산 관리국이 신설되어 백두산 관광에 대한 제반 업무를 장백산 자연박물관으로부터 이첩받아 홍송왕 풍경구와 부석림 그리고 빙수천 계곡 등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그래서 나무로 만든 산책로를 따라 편하게 답사할 수가 있었지만 수없이 방문하는 관광객의 영향으로 천연의 모습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었으며 청나라의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원지 역시 1995년에는 울창한 수림 속에 수많은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었으나, 여러 차례 개발이 진행된 2011년 시점에서는 황산차라고 불리는 일종의 좀참꽃 군락 외에는 별다른 야생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산화원이라고 불리던 광펑림장과 적봉 부근도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지자 야생화들의 종 변화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