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베이징의 오페라 경극
베이징은 1153년 금(金)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800년 이상 중국 역대 왕조들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로 수많은 문화적 유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극(京劇, J?ngj?)은 노래와 춤, 연극이 혼합돼 있는 중국 전통 극으로 별다른 장치가 없는 텅 빈 무대에서 연기자들이 노래, 낭송, 연기, 무예에 해당하는 네 가지 기예(工)와 입, 손, 눈, 몸, 걸음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표현방법(法)으로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는 ‘4공5법’의 종합예술이다. 더욱이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분장으로 ‘베이징 오페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가장 중국적인 면모를 자랑하면서 베이징 관광의 필수 코스로 등장했다.
경극은 중국 각지에서 전해오는 360여종의 희곡 장르 중의 하나로, 국극(國劇)이라고도 불린다. 한의학, 중국화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국수(國粹)로서 베이징에서 발전한 극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극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원나라 때 원극(元劇)에서 시작해 명·청에 걸친 300년 동안은 소주(蘇州) 곤산(崑山)에서 일어난 곤곡(崑曲)이 발전했으나 귀족들의 전유물이 되어 형식에 치우치면서 쇠퇴했다.
18세기 중엽에는 많은 지방극이 나타났다. 그 무렵 안휘성·호북성 등 양쯔강 연안에서 성행한 이황조(二黃調)가 건륭제(乾隆帝)의 80세 생일잔치가 벌어진 1790년, 명배우인 고낭정(高朗亭)과 함께 베이징에 들어오면서 대중의 호평을 받아 유명해졌다. 그 후 1830년경 청나라 말 서피(西皮)라는 곡조와 합쳐 피황희(皮黃戱), 즉 경극으로 발전하였고 정장경(程長庚), 담흠배(譚?培) 등의 노력으로 격조가 한 단계 높아졌다. 근세에 와서는 메이란팡(梅蘭芳, m?i l?nf?ng)의 등장으로 현대화돼 ‘베이징 오페라’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현존하는 경극의 각본은 1,000여 종에 달한다. 대부분 역사소설과 전설에서 소재를 따 온 것으로서 작자미상이다. 소재는 <수호전>, <삼국지연의>, <초한전>, <서유기> 등에서 일정 부분을 각색했고, <초한전> 중 초패왕 항우와 우미인의 이별을 그린 비극적 러브 스토리 <패왕별희(覇王別姬)>가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 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경극의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
경극 공연시간은 대부분 1시간 안팎이다. 지극히 서사적인 표현양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상황이나 행동을 보여준다. 의상은 명(明)나라 때 복장을 기초로 하는 한(漢)·초(楚)시대의 전통극 고유의 것으로, 색과 무늬에 따라 신분과 직업 등을 알 수 있다. 배역은 크게 생(生: 주역), 단(旦: 여자역), 정(淨: 호걸·악한), 축(丑: 어릿광대), 말(末: 단역) 등으로 나뉜다. 정과 축은 배우 얼굴에 물감으로 선을 그리는데 형식이 정해져 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붉은 색은 긍정적인 인물을 가리키고, 검은 색은 지혜로운 인물, 푸른색과 녹색은 민간의 영웅호걸, 금색과 은색은 신이나 귀신을 나타낸다. 극은 노래와 음악, 대사, 동작, 액션 등으로 구성되며 호궁과 징·북을 중심으로 한 반주의 선율과 리듬이 극의 기조를 이루며 무용에 가까운 동작은 격렬하면서도 아름답다.
필자가 처음 경극을 접한 곳은 이원(梨園, l?yu?n)극장으로 전문반점(前門飯店, qi?nm?nf?ndi?n)안에 있으며 지하철 2호선 화평문(和平門, h?p?ngm?n)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이다. 좌석은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이 1등석, 그 다음이 2등석,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3등석이다. 1등석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가 있으며 다과와 음료가 나온다. 2등석은 음료, 3등석은 영화관의 객석과 같고, 모두 사전 예약이 필요했다.
처음 경극을 관람했던 1993년 이원극장의 3등석 입장료는 30위안, 1등석은 300위안(100$정도)으로 기억한다. 요금이 싼 3등석은 경극이 시작되기 전에 만석이 되는데 서양인들이 대부분이다. 관람도 중요하지만 촬영이 주목적인 나는 아무리 비싸도 1등석을 선택해야 했다. 다행히 1등석은 자리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서 예약을 하지 않고 간 내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1등석은 삼각대를 설치하고 망원렌즈를 사용하면 인물을 클로즈업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여서 촬영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 후 베이징 관광이 붐을 이루면서 경극을 공연하는 곳은 다양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국가대극원(?家大劇院, Gu?ji? d? J?yu?n)이라고 불리는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메이란팡대극원(梅?芳大?院)이 건설됐다.
천안문광장에 있는 국가대극원은 프랑스인 폴 앙드뢰(Paul Andreu)의 설계로 2001년 12월 13일 착공해 2007년 9월 완공됐다.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드라마센터로 구성돼 있다. 그중 희극원(戱劇院, h? J?yu?n)으로 불리는 드라마센터에서는 연극·경극·전통 지방극 등이 주로 공연되며 규모는 1,040석이다.
베이징 금융가에 인접한 메이란팡 대극원은 지하철 2호선 차공장(?公庄, ch?g?ngzhu?ng)역을 나오면 어느 출구에서나 바로 보인다. 경극 세계화의 주역인 메이란팡 선생의 이름을 따 건축했으며, 경극 공연을 위주로 하는 1,008석의 규모를 갖춘 대규모 복합극장이다.
현재 이원극장이나 국가대극원 등의 입장료는 3등석이 500위안에서 1,000위안 정도로 비싸지만 시설이나 극의 수준에 차이가 없는 메이란팡 대극원은 무료이거나 100위안 정도여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저렴하다. 그것은 고급화와 대중화를 병행하면서 문화예술의 전승에 대한 중국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