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백두산의 봄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에 웬 봄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백두산의 겨울은 몹시 길고 봄은 유난히도 늦게 온다. 6월에도 눈이 내리고 천지가 얼어 있을 때가 많으니까 따뜻한 남쪽나라에 있는 우리들로서는 그곳의 기온에 대해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봄이 오는 시기에 맞추어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부터 시작된 필자의 백두산 촬영여행은 2000년대 초까지 10년간 집중적으로 이어져 왔으며 해마다 수차례 계절을 달리하면서 촬영하였다. 영산인 백두산은 천의 얼굴을 가졌고 기상조건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촬영조건이 까다롭다. 원하는 콘셉트로 한 번 만에 촬영을 완성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고 반복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대상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상과 환경이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고 그것들이 영상미로 승화되어 시각적 언어로 표출될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사진이고 힘들고 어렵지 않은 경우가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백두산의 봄을 촬영하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인 것이다. 그것은 백두산의 봄이라고 볼 수 있는 기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조금만 잘못하면 때를 놓쳐 최소한 한해를 더 기다려야한다.
처음 백두산의 봄을 촬영할 목적으로 선택한 대상은 천지의 해빙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지역이 백두산에서 가장 따뜻하다고 하며 남파라고 부르는 와호봉(臥虎峰) 지역이었다. 와호봉은 중국조선족의 자치향인 장백현에서 백두산을 오르는 길이며 중턱에서 압록강의 발원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성지순례차 들른 북한사람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볼 수도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와호봉에 오르려면 남파의 백두산 파출소가 있는 횡산참(橫山站)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외국인의 백두산 접근이 안도현의 천문봉에 국한되어 있었던 시절 와호봉에서 숙박하는 것은 장백산 자연보호국 생물 촬영사였던 중국인 왕영씨를 통해 어렵게 성사되었다.
그러나 횡산참에서 머무르는 6일 동안 계속 비가 왔다. 횡산참 체류의 마지막 날 겨우 천지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기상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눈길을 뚫을 수 있도록 덤프트럭에 인부들을 태우고 가서 함께 어렵게 와호봉을 올랐다. 그러나 그사이 내린 비가 얼어붙어있던 천지의 얼음을 말끔히 녹여버려서 백두산의 해빙을 보는 것은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와호봉을 오르는 일이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해에는 섭외 없이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천문봉, 즉 백두산 북파를 통해 천지에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예전부터 편하게 머무르며 베이스캠프로 활용하던 기상대가 있다. 기상대에서 천지가 보이는 천문봉은 그렇게 멀지 않다. 하루에도 몇 차례 다녀올 수가 있으며 관찰이 편리하다. 내친김에 자하봉까지 가보기도 했다.
천문봉에 자리를 잡은 지 6일째, 드디어 천지가 녹아서 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다. 하루만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는데…. 아쉬웠지만 얼음이 반쯤 녹은 천지를 촬영하고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틈나는 대로 백두산의 봄을 촬영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만족할만한 역작은 얻지 못하였다.
백두산의 봄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모습은 야생화들이 얼음과 눈 속에서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1년 동안 피어나는 야생화들이지만 백두산에서는 6월과 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동시에 피어난다. 가혹한 백두산의 기상조건은 식물들의 생체리듬까지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필자가 백두산에서 가장 이른 계절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본 것은 노랑만병초였다. 그리고 좁은잎돌꽃이 꽃망울이 맺히고 있는 6월 초에도 눈이 왔다. 정말 끊임없이 봄을 시샘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혹한 환경만큼 백두산의 생명체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눈과 얼음 속에서 싹을 틔우고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얻어가는 것을 보면서 감동에 겨운 일들이 많았다. 곳곳에서 눈과 얼음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인 것이다. 바람도 온기가 느껴지고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다. 또 관광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색에 잠겨 편안함을 만끽하며 나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