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원의 포토차이나] 오녀산성의 봄
오녀산성(五女山城, W?n?sh?nch?ng)은 요녕성(遼寧省, Li?on?ngsh?ng)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환인진 북측 8.5㎞지점,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渾江, h?nji?ng)의 오른쪽에 위치한 산성이다. 오녀산 봉우리 중 가장 높고 험한 804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남북 길이 1,500m,동서 너비 300m에 이르며?절벽?200여m 위에 축조됐다.
환인현에는 현재 한족, 만족, 조선족, 회족, 몽골족, 시버족 등 14개 민족 30만 여명이 산다. 그?중 조선족은 7,000여 명으로 환인현성과 11개 향진에 분포돼 있다. 환인에서? 국내성이 있는 집안(集安, J??n)으로 가는 길은 통화(通化, T?nghu?)로 통하는 육로와 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로가 있으며, 집안에서 심양이나 요양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중국의 행적구역은 성, 현, 진, 향으로 우리의 도, 군, 읍, 면에 해당한다.)
오녀산성 발굴조사는 1985년 중국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이뤄졌다. 1985년과 1986년 5~8월에 요녕성과 본계시(本溪市, B?nx?sh?), 환인현의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조사해 많은 유물을 수습했지만 정식 보고서는 발표되지 않았다.
1996년~2003년까지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와 본계시박물관, 환인현문물관리소 등에서 연합조사단을 구성해 네 차례에 걸쳐 오녀산성을 발굴 조사했는데, 고구려 시기 토목·건축 구조와 양식 등을 알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대량으로 검출됐다. 선사시대 유구 등?발굴된 유물들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정상 서쪽의 점장대(點將臺, di?nji?ngt?i)라 불리는 평평한 산지에는 대형 건물 터 3동과?병영, 초소, 온돌의 흔적으로 보이는 주거지가 여럿 발굴됐다. 중국은 지금까지 발굴한 유적 등을 정비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했다.
오녀산성은 흘승골성(訖升骨城, q?sh?ngg?ch?ng)이나 졸본성(卒本城, z?b?nch?ng)으로 비정되거나 졸본성 혹은 흘승골성의 방어용 산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고구려 건국 당시 주변의 많은 성읍국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요새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산성은 서쪽과 남쪽, 북쪽 절벽을 천연의 성벽으로 이용했고, 지세가 험준하지 않은 동쪽과 동남쪽에 돌을 쌓아 성벽을 축조했다. 현재 동북쪽 1,000m 남쪽에 11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는데 화강석을 사각추형으로 다듬고 그 사이에 막돌이나 흙을 다져 넣은 옹성(甕城)이다.
옹성은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철옹성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오녀산성은 가장 이른 시기 고구려 옹성의 흔적이?남아 있다. 이러한 성벽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보다는 새눈이 움트는 봄이 더 적합할 것이다.
필자가 처음 오녀산성을 방문했을 때는 이른 봄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환인시내에 숙박하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안개 낀 혼강을 끼고 차를 달렸다. 꼬불꼬불한 굽은 길로 올라간 주차장에서 산 정상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잡목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올라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곳곳에서 진달래를 비롯한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오녀산성의 마지막 관문인 천창문(天昌門, ti?nch?ngm?n)을 통해 산정에 올랐을 때 송도(松濤, s?ngt?o)운해라 불리는 짙은 안개가 비래봉(飛來峯, f?i?if?ng)을 맴돌고 있어서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허나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산성은 정상의 평탄지와 완만하게 경사진 동쪽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성안에는 장기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물을 비축하는?동서로 긴 장방형의 못이 있다. ‘천지’로 불리는 이 못의 규모는 동서 길이 12m, 남북 너비 5m, 깊이는 1m 정도다.?암반을 깎아낸 뒤 변두리에 큼직한 막돌을 쌓았으며 지면에 나타나는 부분은 네모나게 잘 다듬은 돌을 규모있게 쌓았다.
천지수는 일 년 사계절 내내?마르지 않고 깨끗하여 물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음용수로도 사용됐다. 최근에는 넘쳐나는 관광객과 관리 소홀로?오염됐는지 물빛이 흐려져 있다. 산 정상 동쪽에 서면 환룡호라고 부르는 환인댐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안겨온다.?산성 인근에는 배꽃이 만발한 마을들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 와보니 고구려가 왜 이곳을 첫 도읍지로 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시조인 고주몽이 하백의 외손이었다는 것이 전설을 넘어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댐 건설로 수량이 더욱 늘어났지만, 산성을 둘러싼 풍부한 강줄기는 초기 고구려인들이 깎아지른 절벽과 함께 외적을 방비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녀산성의 아래쪽에 위치한 고려묘자촌(高麗墓子村, ?ol?m?zic?n)에서 다수의 고구려 고분들이 조사된 바 있으나 댐 건설로 수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