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라의 아랍이야기] 널뛰는 아랍지역 축구 중계권료

지난 1998년 월드컵까지만 해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월드컵을 보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중계권료, 혹은 재전송권을 바탕으로 요르단이나 시리아 같은 나라에서도 국영티비를 통해 생중계로 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유료 방송국들에게 중계권이 넘어가 시청할 권리를 제한하더니, 2010년 월드컵 때는 중계권을 갖고 있던 알자지라 스포츠에서 가난한 나라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엄청난 재전송권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알자지라 스포츠 외에 타방송국에서 사실상 볼 수 없게 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개막식을 중계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걸어 한동안 검은 화면만 나오고 먹통이 되는 해프닝을 겪었을 정도였다.

K리그 팬들에게도 아랍어 중계를 친숙하게 만드는 ‘아챔’ 역시 지난 시즌까지는 알자지라 스포츠로부터 자료를 받아 국영 스포츠 TV를 통해 무료 생중계로 볼 수 있었지만, 이번 시즌부터는 재송출권료를 인상시켜 버리는 바람에 알자지라 스포츠와 알카스 1&2 (아챔 중계를 위해 새로 채널을 추가해서 알자지라 스포츠 카드에 묻어서 편성된 채널)에서만 생중계를 한다. 리그 경기는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스트리밍 생중계를 보는데, ‘아챔’은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TV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중동-북아프리카 축구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EPL(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을 놓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중동-북아프리카 독점 중계권은 팔렸으나 아직까지 이를 중계할 방송사가 결정되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는 다음 시즌 부터 제대로 볼 수?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인은 중계권료 때문인데, 중계권 소유자는 있는데 중계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전통의 <OSN> 시절 – 07/08~09/10시즌????

중동지역 유료 위성방송 시장의 선두주자였던 ART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몰락하면서 유료 사업자 시장은 Orbit와 Showtime이 합병한 OSN Network와 알자지라 스포츠로 양분됐다. 중동-북아프리카 EPL 독점 중계권은 우리나라처럼 방송국 맘대로 선별해서 생중계, 녹화중계, 딜레이중계 등 입맛대로 편성하는 것이 아니다. 시즌 전 380경기 생중계를 해야하기 때문에 유럽 주요 리그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는 알자지라 스포츠가 중계권을 갖지 못하고 EPL만큼은 다른 사업자를 통해서 중계됐다. 2000년대 후반, 07/08~09/10시즌까지 세 시즌에는 OSN이 중계권을 갖고, 알자지라 스포츠는 FA컵과 칼링컵 같은 컵대회 중계권을 나눠가졌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맨유시절 박지성의 경기를 보려면 OSN(EPL)과 알자지라 스포츠(FA컵, 칼링컵, 챔피언스리그)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OSN의 경우 단순 스포츠 채널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채널이기 때문에 시청카드 두 개면 유럽의 주요 경기와 최신 영화나 오락 프로를 보기에 충분했다.

스포츠 방송 사업자로 세력 키운 <아부다비 스포츠> – 10/11~12/13시즌

하지만, OSN의 계약이 만료되고 10/11시즌부터 12/13시즌까지 세 시즌의 중계권을 아부다비 스포츠가 가져가면서 상황이 바뀐다. 엔터테인먼트 채널로 전용 수신기 등 풍부한 채널을 바탕으로 운영을 해올 수 있었던 OSN과 달리 아부다비 스포츠는 중계권을 사기전만 해도 무료채널 두 개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아부다비 스포츠가 덥썩 EPL 중계권을 물게 되면서 시즌 전경기 HD 생중계를 걸고 셋탑박스를 포함한 패키지를 판다. HD 셋탑박스를 포함한 1년 시청료는 1000리얄, 갱신시 연 399리얄 (사우디 기준) 이다. 다시 말해 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모두 즐기고 싶으면, 기존의 OSN, 알자지라 스포츠에 아부다비 스포츠까지 사야 한다는 의미다.

시작부터 불분명해 보이는 <MP&Silva> 등장????

아부다비 스포츠와 계약이 12/13시즌으로 끝나고, 지난 1월 EPL측에서 13/14시즌부터 중계권을 MP&Silva (Media Partner & Silva)에 넘기면서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OSN도, 알자지라 스포츠도, 아부다비 스포츠도 아니면서 EPL 중계권을 사들인 그들은 기존의 중계권자들과 같은 방송국이 아닌, 방송할 능력 자체가 없는 중계권 거래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한 기반시설을 갖췄던 OSN이나, 아부다비 스포츠와 달리 MP&Silva는 다른 사업자에게 되팔고자 중계권을 사들였는데, 실제로 여러 사업자들과 논의 중이라고는 하지만 협상이 생각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폭등한 EPL 중계료에 있다. 우리나라 방송업자들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판 키운 <아부다비 스포츠>가 방송 사업자들에게 준 교훈???

07/08부터 09/10까지 세 시즌을 중계하기 위해 OSN이 낸 중계권료는 1억2000만달러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아부다비 스포츠가 기존의 세 배인 3억6000만달러로 10/11~12/13 중계권을 가져가면서 중계권료 폭등에 불을 지폈다. 설상가상 MP&Silva가 계약한 13/14~15/16 세 시즌 중계권료는 그 수십배인 79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지어는 연간 총매출액이 3억달러에 불과한 그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업계 관계자들까지 있을 정도다.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장담할 수 있어 중계권료가 올라가면 모르겠지만, 정작 문제는 3억6000만달러를 들여 새로운 시장의 강자로 들어선 아부다비 스포츠는 투자한 만큼의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업계 소식통에 의하면 3년간 아부다비 스포츠가 확보한 시청자는 35만명도 채 안 된다고 한다. 단순한 위성시청 외에 IPTV 시청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OSN과 달리 아부다비 스포츠는 여러 중계권들이 있어도 EPL만큼의 유료 컨텐츠가 없어 수익구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OSN은 앞서 얘기했듯이 엔터테인먼트 채널로서의 차별화된 수익원과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데 강점이 있다. 특히 OSN 유료 영화채널들은 중동-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른데다 무삭제 방영으로 유명하다. 어지간한 중동 채널에서 검열당하는 영화들과 달리 성적 표현이 강해도 자르지 않는다.

아부다비 스포츠가 얻은 경험을 통해 이제 대부분 방송 사업자들은 불필요하게 높은 중계권료를 내면서까지 EPL을 중계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상상을 초월한 가격에 중계권을 사들인 MP&Silva는 손해를 보건말건 신경 쓸 상황이 아니기에 협상은 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중계 방송사가 결정되지 않아 애만 태우고 있다. 언제 최종 협상이 마무리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렸다.

독점 중계권 유지? 또는 파기???

중동-북아프리카 시청자들은 13/14시즌 개막전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지지부진한 협상 과정을 통해 단일 중계권자가 없는 상황에서 MP&Silva측은 지금껏 유지해온 ‘중동-북아프리카 독점 중계권’을 깨고 최대 4개 방송 사업자에게 나눠 팔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과연 그 비싼 중계권료를 감당할만한 곳이 얼마나 있을지가 관건이다. EPL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아챔’ 재송출권료마저 알자지라 스포츠에서 폭등시켜버리자 이를 감당하지 못해 사우디 스포츠 등 국영 스포츠 채널들은 중계를 포기한 적이 있다. 이익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걸 체험한 3대 메이저 업체에게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과연 어느 사업자가 다음 시즌부터 중동-북아프리카지역에 EPL을 중계할까?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어느 한 방송사가 독점 중계권을 가져갈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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