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라의 아랍이야기] 아랍인 이름 이해하기 : ?복잡한 이유
최근 슈라위원회와 관련된 글들을 통해 이번에 임명된 의원들의 명단을 보셨다면 뭔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름 사이에 bin 또는 bint가 거의 비슷한 곳에 위치하고 있을테니까요. bin이나 bint는 ~의 아들/~의 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여기서 그 사람의 이름과 함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아버지 이름입니다. A bin/bint B라는 이름이 있다면 A의 아버지 이름이 B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전통적인 무슬림들의 이름을 통해서라면 아버지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이름과 가문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 무슬림들의 이름입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그래서 <둘라의 아랍이야기>가 준비한 ‘무슬림의 이름 종합 3종 선물세트’!.?은 무슬림의 이름 구조, ?는 고전적, 혹은 현대적인 이름과 무슬림들이 작명시에 고려하는 사항에 대한 Q&A로 아랍인, 혹은 무슬림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종교 바탕된 가부장제, 이름에 고스란히 묻어나
몇몇 문화권에서 보여지는 전통적인 이름을 보면 그 문화권의 특징을 일부 짐작할 수 있다. 벡커(빵 굽는 사람), 슈나이더(재봉사) 등의 독일식 이름을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 일본을 보면 일본인들의 이름 속에서는 거주지를 통해 자신들을 지칭했음을 알 수 있다. 다나까(밭 가운데), 우에다(윗 밭), 야마사키(산 골짜기)라는 이름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어디 사는 누구’라는 식으로 부르는데 익숙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400년이 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종교와 언어를 사용해 온 아랍사람들의 이름에선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바로 신앙심을 갖고 생활해 온 가부장제적 사회구조이다. 종교가 곧 생활 그 자체인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이와 관련된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선 뒤에 언급이 되어 있으니, 여기선 가부장적인 가족구조임을 보여주는 이들의 이름구조를 잠깐 엿보기로 하자.
아랍국가에 가기 위한 사전비자 신청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간혹 서류에 이름을 올릴 때 어머니의 성 등을 포함해서 4글자로 만들어 신청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남궁이나 제갈 같은 성을 가지고 있다면 예외다) 왜 이들은 이러한 방법을 요구하는 것일까? 이는 이곳 사람들의 이름이 네 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행정 전산망이 네 개의 이름을 입력하도록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름 자체가 물론 글자로 써 놓으면 길지만 발음자체로만 따지면 짧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한국사람이 많지 않은 사우디 남부 지잔지역에서 운전면허를 새로 신청했을 때, 모든 서류와 조건을 다 구비했음에도 담당 직원들이 한국인 이름을 어떻게 전산망에 올려야 할 지를 몰라서 여권과와 교통경찰청을 이틀간 돌아다닌 끝에야 겨우 발급받았던 적이 있을 정도라면 설명이 될까? 앞에서 이들의 이름이 네 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그 네 개의 이름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국이나 일본 등의 한자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성과 이름, 서구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은 여기에 첫 이름, 가운데 이름, 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랍인들의 이름은 어떻게 네 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가운데 이름이 하나 더 있는 것인가? 이 문제의 해답을 알게 되면 이들의 가족구조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름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가문 출신이고, 3대까지의 가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랍인들의 이름 체계는 바로 ‘1)본인 이름-2)아버지 이름-3)할아버지 이름-4)가문이나 지역’의 네 개로 이루어져 있다. 설령 bin이나 bint가 생략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 이름 체계는 [어떤 부족이나 지역(출신의) 할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 누구]라는 뜻을 갖는다. 가령, 어떤 사람의 이름이 야흐야 무함마드 아흐마드 쉬라힐리라고 한다면 이는 야흐야란 사람이 쉬라힐리라는 부족의 출신이고, 그의 할아버지 이름은 아흐마드이며, 그가 무함마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름구조에 대해 어떤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본인 이름-아버지 이름-할아버지 이름-가문이나 지역?순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들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첫째로 이러한 이름 구조에선 여성의 이름, 즉 어머니나 할머니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들의 예를 언급할 것도 없이 한국사에서도 가부장적인 제도에 반발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혼용해서 부르는?사람들이 나타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은 이름을 통해서도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를 알게모르게 강요하는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유목생활을 통해 삶을 영위해 왔던 이들의 가정이야 어떠하겠는가? 척박한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이들의 삶 속에서 남성의 권위가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이루어진 가부장적인 가족구조가 이들의 이름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름 구조 외에도 가부장적인 제도를 알게끔 해주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이 바로 쿤야이다. 쿤야가 대부분의 문화권 속 이름에서는 보기 힘든 생소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도 이와 비슷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생각해 보자면 자식을 가진 어떤 부모를 부를 때 본명보다도 “철수 엄마”, “영희 아빠”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바로 아랍인들의 이름 속에서 나오는 쿤야이다. 아랍인들의 이름에선 “아부 무함마드(무함마드의 아버지)”, “움무 무함마드(무함마드의 어머니)”라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부르기만 하는 우리와 달리 이를 또 다른 하나의 이름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 주변에서 “철수 아빠”라고 책을 쓴다거나, 이를 서류상에 올리는 사람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이와 다르게 역사상에 나와 있는 일부 아랍인들의 이름을 보면 본명보다도 이 쿤야가 더 유명한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는 점이 개념상의 큰 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개념상의 차이와 더불어 우리와는 또다른 차이가 있다. 이 쿤야에서는 아부나 움무 뒤에 아들 이름만이 붙을 뿐, 딸의 이름을 붙여 부르지는 않는다. 이에 덧붙여 “무함마드의 아들”이란 의미로 “이븐 무함마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부를 때에도 딸을 넣어 “빈트 무함마드”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들이 남성중심의 엄격한 가부장제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리에겐 이들이 너무나 낯설지만 어떤 면에선 오히려 친숙한 서구 문화권보다 정서적으로는 비슷한 면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