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라의 아랍이야기] 아랍인의 저녁초대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음식문화 이해, 그 나라 이해의 첫 걸음?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낮에는 꾀죄죄할 정도로 지저분해 보이지만 밤에는 야광 가면으로 그 꾀죄죄한 모습을 감춘 듯 휘황찬란하게 변한다. 거의 모든 중요한 활동들은 밤에 많이들 이루어지기 때문. 저녁 5~6시를 전후해서 칼같이 문을 닫는 레바논의 상점가들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는 상점들은 늦게까지 문을 열곤 한다.
그 중에서 어떤 가게들이 가장 늦게 문을 닫을까? 바로 먹고 마시는 식당이나 카페들이다. 어지간한 곳들은 특히 주말에 자정 너머 새벽 2시까지 영업들을 한다. 이러한 풍경엔 이유가 있다.
보통 아랍사람들이 저녁 초대를 할 때 7시쯤 오라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런 초대를 받으면 밥을 굶고 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뭐라도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가는 게 좋을까? 어찌 보면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지만,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저녁 일찍 초대를 받는다고 해도 보통 식사를 하는 시간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기 때문이다.
오후 7시 초대를 받았다고 아무 것도 안 먹고 빈속으로 갔다간 밥 나오기 전에 배고파서 혼쭐나기 십상이다. 그럼 그 몇 시간동안 뭘 하느냐, 초대에 응한 사람들끼리 샤이(아랍식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결혼식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또 저녁 초대에 응할 생각이라면 그날 저녁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 게 좋다. 이러한 초대습관은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들이 전통적으로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이란 걸 생각해 본다면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다. 예부터의 관습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
뜨거운 사막 생활에 길들여진 생활 습관???
이들의 생활터전인 사막의 환경을 생각해 보자. 사막이란 환경은 얼핏 생각해보면 항상 뜨거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물론 아무런 그늘도 없는 곳이라면 굉장히 뜨겁겠지만 그늘 밑에선 선선한 편이고 저녁이나 밤이 되면 온도가 낮아져서 많이 서늘하다.
이런 사막을 양떼를 몰며, 대상 무리를 이끌면서 다닌다고 생각해 볼 때, 당신이라면 언제 다닐까. 뜨거운 낮? 아니면 서늘한 아침이나 저녁? 이런 이유로 중요한 활동들은 주로 아침이나 저녁, 밤에 이루어지고 낮에는 대부분 오침을 취하는 등 휴식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래서, 특히 사우디는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는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 탓에 식사 초대라든가 사교활동이 주로 밤에 이뤄지고 있고.
낙타나 양떼들을 이끌고 사막을 다니는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장거리 사막여행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력, 지구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짐은 될 수 있는 한 적게 가지고 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 어떤 짐들이 필요할까. 쉬거나 노숙할 때 필요한 천막이라던가 취사도구는 있어야 할테고, 장기간 음식을 보관하기는 힘들 테니 식기도 많이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최소한의 먹거리만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양을 이용한 요리가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들고 다닐 부식이 많지 않으니 상을 펼쳐서 갖은 반찬을 놓고 식사를 한다는 개념도 없을 테고, 마실 물도 귀한 마당에 식기 씻느라 물을 낭비하긴 아까울 테니 그냥 널따란 판에 밥 만들어서 손으로 같이 먹는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양의 젖을 짜서 만든 우유와 대추나무 열매인 타무르를 완벽한 음식이라 부른다. 갖고 다니기 쉽고 영양도 만점이니 장거리 여행엔 제격이다. 그리고 더운 곳에 오래 있다보면 예상 외로 차가운 음료보다 따뜻한 차 한잔이 갈증을 없애는데 적합하기 때문에 샤이라 불리는 차를 많이 마시게 된다.
양 요리하는 동안 장시간 이야기 꽃 피워????
어떤 분위기일지 대충 상상이 가는가. 그럼 사막을 여행하던 중에 아는 친구나 다른 일행들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자. 여행을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인데 그냥 헤어지고 말까? 아니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정보를 나눌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더워 힘들텐데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을테니 시원한 밤에 여장을 풀고 휴식이나 취하면서 같이 저녁을 하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인데 그냥 얘기만 나누다 헤어지기는 아쉽다. 장기간 보관하며 갖고 다닐만한 음식이 없으니 짐이 정리되자마자 요리를 준비한다.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양을 잡아서 요리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알라께 기도를 드리고 양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단칼에 목을 따서 피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린 후, 가죽을 발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서로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특별히 같이 시간을 보낼 오락거리가 없으니 여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이나 자기가 들렀던 동네에서 들었던 각종 소문이나 뉴스, 자기 주변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이 화제로 오른다.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이야기만으로 시간 보내길 잘하고, 다양한 화제거리로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같은 얘기를 같은 표현으로 되풀이하기는 본인도 지겨워 수사법이 따라서 발전하게 된다.
다시 먹는 얘기로 돌아가 빈 입에 얘기만 나눌 수는 없으니까 목도 축일 겸 샤이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몇 시간 얘기하다 보면 저녁이 준비 될테고, 저녁 먹고 나서는 못 다했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게 될 터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날씨가 뜨거울 때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날 테고.
술을 마셔야만 얘기도 잘 나오고 밤새기도 쉬운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차만 마시면서 맨 정신으로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참고로 이슬람에서는 술을 비롯한 주류가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 해서 금기시하는데 이슬람이 태동할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자연환경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5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주 뜨거운 날씨에 사막 한가운데서 술 먹고 취해서 뻗는다던가, 알딸딸한 정신으로 사막 여행길을 떠난다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그러고도 멀쩡할 수 있을까?
이런 아랍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생각해본다면 저녁 초대한다고 사람을 일찍부터 불러내서는 정작 밥은 왜 늦게 주는지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여러 문화들 중 특히 음식문화는 그 사회의 생활여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와 전혀 다른 음식문화를 별 거부감 없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