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라의 아랍이야기] 차남 무타입 왕자가 밝힌 사우디 압둘라 국왕
압둘라 국왕의 일상과 성품 등을 소개한 인터뷰 기사가 있어?소개한다.
사우디 장관 겸 사우디 국가 방위군의 수장인 무타입 빈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는 최근 아랍어 신문 <오카즈>와 자매지인 <사우디가제트>와의 독점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인 압둘라 국왕의 일상과 관점,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타입 왕자는 압둘라 국왕의 차남이다. 압둘라 국왕은 13명의 부인과 35명의 자녀를 뒀다. 이는 그의 아버지이자 사우디 국부인 압둘 아지즈와 마찬가지로 타부족과 정략결혼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딸 중 사하브 빈트 압둘라 공주는 하마드 바레인 국왕의 아들인 셰이크 칼리드 빈 하마드 알 칼리파와 2011년 결혼하면서 바레인 왕실과도 사돈지간을 맺게 됐다.
– 국왕의 하루는.
“압둘라 국왕은 새벽에 하는 파즈르 예배 (계절에 따라 새벽 3시30분~5시30분 사이에 시작)를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쿠란을 읽기 전 오랫동안 알라에게 기도를 드린다. 그 후 잠시 눈을 붙이고 오전 8시30분 일어난다.
기상 후 알 두하 예배 (해가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랐을 때, 두후르 (정오) 예배 전 드리는 예배로 무슬림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다섯 번의 예배에는 포함되지 않는 예배)를 드리고 아침을 하며 하루 일과를 확인한다. 칼리드 알 트와이지리 왕실법원장이 국왕에게 그날의 일과 목록을 가져와 보고한다.”
칼리드 알 트와이지리 왕실법원장은 압둘라 국왕의 최측근으로 슈라 위원회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등 일련의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보수적인 종교 세력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압둘라 국왕이 슈라 위원회 개정칙령을 발표한 후 이들은 압둘라 국왕과 칼리드 왕실법원장에게 반대의사를 표출한 바 있다.
“정오에 두후르 예배를 드린 후 국왕은 각종 서류를 결제하고 결정들을 내리는 업무를 본다. 이는 아스르 예배(계절에 따라 오후 2시30분~3시30분에 시작)까지 계속되며, 일정에 따라 때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손님을 맞는다. 저녁에는 다시 업무를 본 후 오랫동안 산보를 즐긴다.”
압둘라 국왕은 2010년 이후 등과 척추 쪽 수술을 4차례 받았으며, 가장 최근의 수술은 늘어난 등인대를 조여주는 것으로 작년 11월에 리야드에서 치뤄졌다.
– 국민들은 그를 존경한다고 보나.
“알라는 모든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 국왕에 대한 사랑을 심어두었다고 믿는다. 국민들에 대한 압둘라 국왕의 사랑 역시 그 끝을 알 수 없다. 그는 온화한 분이다. 그가 예배를 드리고 알라에게 기도하면서 당신의 자식과 가족들을 언급하기에 앞서 국민들을 먼저 이야기한다.
그가 병원에 있었을 때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국왕의 치료기간이 길어질 것임을 알았을 때 큰 방을 개방했고, 그 방에는 매일 국왕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국왕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병문안 온 남녀노소를 불문한 수천명의 사우디 시민들로 가득 찼다.
각료회의 중 국왕은 항상 각료들에게 사우디 국민들을 만나서 그들의 문제와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 가장 큰 관심사는
“압둘라 국왕의 마음속엔 사우디 국민의 복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외교 정책을 검토할 때, 그것이 사우디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생각한다.”
‘아랍의 봄’이 사우디까지 영향을 끼쳐 대대적인 집회가 예정됐던 2011년 3월 11일 ‘분노의 날’이 별 탈 없이 조용히 넘어가자 1주일 뒤인 18일 압둘라 국왕은 150조원 규모의 거국적인 복지정책을 발표하면서 복지정책, 여성 사회진출 확대 정책 등 일련의 사회개혁정책을 내놓고 있다.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기도 하지만, 인근의 독재국가들이 아랍의 봄과 함께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기에 국민들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자신들의 왕권 유지를 위해서 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 압둘라 국왕의 인사원칙은.
“장관이나 각료들을 선정할 때마다 무엇보다 알라에 대한 두려움을 놓고 후보군들의 신뢰와 정직함을 중요하게 본다.”
–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한 입장은.
“시리아는 압둘라 국왕이 사랑하는 나라들 중 하나다. 국왕은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시작 당시 국왕은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수많은 서한들을 보냈고,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관계자들을 파견했다. 사태의 중대성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통화를 해왔다. 안타깝게도 헛수고로 돌아갔지만. 압둘라 국왕은 시리아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시리아 국민들을 볼 때마다 마음 속에 상처를 받고 계실 것이다.”
– 자녀와의 관계도 궁금한데
“압둘라 국왕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은 가족과 함께 보낸다. 손주들과 함께 놀며 그들의 학창생활에 대해 물어보기도 한다.”
압둘라 국왕은 77세이던 2003년 막내 아들인 바드르 왕자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