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진출, ‘구조와 기능’ 측면에서 살펴보니···

출근길에 전화를 받고 있는 한 여성직장인.

출근길에 전화를 받고 있는 한 여성직장인.<사진=뉴시스>

근대화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을 얻고자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했지만, 얼마나 근시안적인 정책이었는지 지금 실감하고 있다. 한국의 가정과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며느리의 기능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보이지 않게 떠받치고 있었는지 몰랐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그들의 본래 자리가 다소 비워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더라도 지금처럼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면 예상하고도 미리 알리고 경계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기능에 대한 신중한 인식과 올바른 평가가 있어야 구조가 치명적 피해를 입지 않는 법이다.

[아시아엔=김용호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병원 겸임교수, 대한치과이식학회 부회장] 애플 창업자 故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보이느냐’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이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로 생각한다.”

90년대 말, 캐나다의 토론토치과대학에서 유럽과 아시아, 북미의 대학교수와 임상가들이 모인 임플란트콘센서스 참석중 듣게 된 얘기였다. 임플란트 시술 후 유지관리에 대해 자신의 특정임상과적 시각으로만 논지를 펴는 한 발표자에게 토론자가 강한 어조로 물었다. “입안에서 치아처럼 음식을 씹는다고 하여 임플란트를 자연치아로 이해하는 발표자의 시각은 ‘꽥꽥거리며 풀밭을 걸어다니는 것은 모두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닙니까?”

사물의 가치가 ‘기능’에 있는지, ‘구조’에 있는지를 논하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분야에서 다루는 치아를 포함한 주변구강기관들을 보면 당연히 기능의 가치에 무게가 더 있다. 고르지 못한 치열과 어긋난 교합으로도 잘 씹고, 명확한 발음을 하며, 기분 좋게 웃는 사람이 있다. 반면 외견상 고른 치열과 정상교합으로도 위와 같은 기능들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역시 치아와 입주변의 구실은 생긴 모양보다는 행하는 기능이라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언젠가 국내 학술행사 소모임 토론에서, “구조는 기능을 결정하고, 기능은 구조를 선택한다”는 말을 전제로, 치료계획과 결과의 개연성 및 필연성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분이 있었다. 참으로 간단한 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현상을 쉽게 바라보게 하는 현명한 지혜가 담겨있다.

“형체를 갖추고 구조가 만들어지면, 이미 거기에서 기능은 결정된다”는 말은 일반적 상식이다. 하지만 “기능은 구조를 선택한다”는 말에는 다소 긴장감이 흐른다. 예컨대 목이 좌우향기능이 없거나, 몸전체의 방향전환을 할 수 없어 옆이나 뒤를 경계하고 대응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진 동물은, 뒤에서 공격하는 적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 당연히 그러한 구조는 그에 맞는 기능을 결정했고, 결정된(치명적 한계가 있는) 기능은 이러한 동물이 소멸되도록 작용함으로써 구조의 운명을 선택하도록 작동한다는 뜻이리라..

구조가 지속적으로 선택받아 계속 존재하기에 적합한가에 대한 평가기준에 이런 게 있다. 즉 구조가 애초 지향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며, 구조자체의 통일성(integrity)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의 건강보험이라는 구조가 과연 애초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며, 적절한 비용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허심탄회하게 따져볼 수 있다면, 결과가 참으로 흥미진진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면, 균형잡기가 다소 수월할 것이다. 해방 이후 경제발전은 교육열에서 싹 텄고, 근대화과정에서 교육과 관계되는 일은 숭고한 사명으로까지 받들어졌다. 교육이라는 명분만 붙으면 이의를 달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야 우리 교육구조가 스스로 정화내지 진화의 기능은 커녕, 건강한 유기체로 생동하지 못하고, 교육전문가들이 아닌 이들에 의해 ‘손보아’지면서 교육 본래기능에 소모성 질환과 같은 부전(不全)이 심각해졌음을 인정하게되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문의 구조 존재 자체가 국가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비용이 산출을 능가하는 구조는 소멸과 변화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은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 지, 혹은 어느 것의 선택을 받을 지가 궁금하다.

신세대들은 아니 지금 이 시대는 멋진 외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세대의 산물은 그 이전 세대들이 심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세대들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러한 가치를 선택하였는지 한번 생각해본다. 멋진 외모는 사유의 영역보다는 감각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볼 때 신세대들은 감각의 삶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럴 경우 ‘과연 삶이 감각으로 지속되고 향유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여기서도 외모가 구조인가 기능인가 하는 퀴즈를 던지면 흥미로워진다. 신세대에게 외모는 경쟁력이라고 하니 분명 기능의 가치를 가질 것이다.

대부분 화석연료로 돌아가는 지구라는 구조는 심각히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생태는 인류생존의 터전이라는 기능을 제대로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아직도 연식이 바뀔 때마다 크기와 배기량이 커진다. 유럽과 미주는 이미 자동차의 다운사이징을 구현하고 있다. 선택될 구조의 방향이 아닌 딴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취한 불나비인가?

최근 대학은 취업준비학원 또는 ‘스펙장착반’이라고 한다. 예전보다 많은 자격증과 공인시험 점수를 받고서도 실무현장에서는 업무능력이 심히 부족한 현상을 보인다. 자기 딴에는 ‘구조’를 갖추고 입사하는데, 전혀 기능과 동떨어진 구조들로 장식하고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을 얻고자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했지만, 얼마나 근시안적인 정책이었는지 지금 실감하고 있다. 한국의 가정과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내와 며느리의 기능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보이지 않게 떠받치고 있었는지 몰랐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그들의 본래 자리가 다소 비워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더라도 지금처럼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면 예상하고도 미리 알리고 경계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기능에 대한 신중한 인식과 올바른 평가가 있어야 구조가 치명적 피해를 입지 않는 법이다.

무릇 사물의 가치는 구조의 유구함만으로도, 기능의 합목적성만으로도 평가될 수 없다. “구조, 그 존재 자체에 심오한 의미와 지고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곤란하고, “기능, 그 효율성과 변화의 역동성이 시대의 요청이다”라는 선동도 곤란하다. 구조와 기능이 갈등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희생할 때, 온전한 기능과 적절한 구조가 공존하는 태평성대를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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