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라의 아랍이야기] 아랍어로 중동사람 배꼽잡는 정원호씨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아랍관련 이야기를 연재하며 3년간 베스트블로거로 뽑힌 이중한(38)씨가 아시아엔(TheAsiaN)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중한씨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 전공 후 6년간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지역에서 건설 관련 일을 하며 아랍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지난 4월 한국으로 돌아와 2013년부터는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중동지역을 심층적으로 공부할 계획입니다. 그가 보고 듣고 읽고 느낀 아랍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둘라’는 널리 알려진 무슬림식 이름인 ‘압둘라(알라의 종복)’에서 압을 뺀 것으로 큰 의미는 없습니다. ??
PD에서 ‘악의 축’ 3인조 정치 풍자 코미디팀 멤버로 발탁되며 연예계 데뷔
예전 언젠가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을 때 지금은 OSN으로 바뀐 SHOW NETWORK의 한 채널에서 아랍어를 능숙하게 하는 동양인 남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과장된 한국식 복장을 입고 코미디를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채널을 고정하고 열심히 봤습니다.
<원후르(Wonhour)>라는 코미디 시리즈물이었습니다.?터키에서 상당히 히트를 친 <Nour(Gumus)>라는 드라마를 패러디한 6부작 코미디 시리즈로 시리아 여인(Budour)에게 첫눈에 사랑에 푹 빠져버린 한국인 남자(Wonhour), 그리고 그 둘 사이를 떼어내려고 하는 그의 한국인 엄마(Umm El Shrou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장된 한국식 드레스코드에 전형적인 한국의 드라마 코드(!)가 아랍식 코미디와 만난 퓨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아랍어가 능숙한 동양인 남자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가 바로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두바이를 비롯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연예인인 코미디언 정원호입니다.
그가 아랍에서 다른 것도 아닌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입니다.
그는 1981년 10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와 요르단 왕 등의 전담 지압사로 활동했던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2004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요르단에서 성장했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말인 한국어도, 어미니의 말인 베트남어도 못하면서 아랍어가 모국어가 된 아랍 로컬로 자랐습니다. 동양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랍의 정서가 더 가까운 특이한 경우인 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적이 한국인 이유는 출생지인 사우디가 미국이면 미국 시민권을 주는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처럼 그 곳에서 태어나서 죽더라도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200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디어 업계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요르단에서 두바이로 옮겨가 사우디 방송인 MBC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던 그를 연예인으로 데뷔시켜 준 것은 전혀 상관없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때문입니다. Showtime Arabia에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3인조 정치 풍자 코미디팀 멤버로 그를 섭외하면서 연예인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되거든요.
코미디팀 ‘악의 축’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이란, 이라크 등 3개국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것을 풍자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란, 이집트, 팔레스타인 등 중동계 미국인 3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원래는 이름에 걸맞게 북한 출신 코미디언을 섭외하려다 여의치 않자 그를 섭외하게 된 것입니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어차피 생김새야 그들에겐 거기서 거기인데다 무엇보다 아랍어와 영어가 유창하다는 사실이 캐스팅의 이유가 된 것이죠.
2010년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로 임명
이유야 어쨌든 깜짝 데뷔하게 된 그는 유창한 아랍어와 뛰어난 재담으로 팀의 주축 코미디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들에겐 낯선 한국인이지만 아랍인 앞에서 아랍인 로컬처럼 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아랍 연예계에 자리를 잡는 데 한 몫 한 것이죠. ‘악의 축’ 팀과 함께 요르단, 쿠웨이트, 이집트, 레바논, 두바이 등 중동 지역을 순회하며 27회의 공연 동안 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아랍권 스탠드업 코미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이후 중동 최대 코미디 프로그램인 ‘쇼 코미디’ 채널의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공동 MC로 활약하며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코미디언으로 시작한 그의 연예계 커리어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나가면서 2008년 두바이 국제 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게 된 그는 다음해인 2009년에는 골디 혼, 대니 글로버, 아미타브 바흐찬 등 시상식에 참가한 헐리우드와 볼리우드 스타들의 인터뷰어로 나서다 2010년에는 시상식과 폐막식의 사회를 맡았고 두바이를 기반으로 중동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입지를 굳혀 나갑니다.
2010년 4월 한국관광공사는 그를 중동지역에 한국 관광을 홍보하기 위한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삼성전자의 중동지역 스마트TV 런칭 홍보모델로도 활약한 바 있습니다. 아랍에서 아랍인을 웃기는 것으로 유명해진 한국인이라는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2011년 6월 그는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관광공사와 두바이 Al-Aan TV와의 협업으로 미니 다큐멘터리 시리즈 “슈프 쿠리야 (Visit Korea)”를 촬영한 바 있으며, Al-Aan TV를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슈프투하 (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이 영상물 시리즈는 중동지역에 한국관광을 홍보하기 위한 영상 홍보물입니다. K-Pop을 위시한 한류 열풍이 아랍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걸프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는 타이밍에 나온 것이지요.
언론에서 떠드는 중동지역의 한류가 와닿진 않았는데, K-Pop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제 계정에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이 동네 여성들이 팔로우하는 걸 보면서 조금씩 실감하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