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사전장례의향서
나이 40이 넘으면 죽음의 보따리를 챙겨야 한다. 지난달 중순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러 보건소에 갔다. 백신이 떨어졌다고?돌아가란다. 모처럼 갔는데 서운하기도 하고 마침 고가(高價)의 폐렴예방주사는 놓아준다고 해서 눈 딱 감고 한 대 맞고 돌아왔다. 그런데 체력이 바닥이 난줄 모르고 맞은 덕분에 꼬박 한 달을 기침을 하며 생으로 폐렴을 앓고 말았다. 몸이 무려 10kg나 빠지고 몰골이 아주 볼품없게 되어버렸다.
당분간 큰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창황전도(滄荒顚倒)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궁리를 하다가 ‘한국골든에이지포럼’에서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캠페인을 벌인다고 하여 알아보았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은 분들이 꼭 참고해야 할 것 같아서 전한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11월13일 장례 방식에 대한 세부 사항을 담은 사전장례의향서 문안을 확정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사전장례의향서’란 작성자가 ‘장례의식과 절차가 내가 바라는 형식대로 치러지기를 원하며’ 부고(訃告) 범위, 장례 형식, 부의금·조화(弔花)를 받을지 여부, 염습·수의·관(棺) 선택·화장·매장 등 장례 방식과 장소 등 당부 사항을 미리 적어놓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불합리한 고(高)비용 장례방식과 절차를 간소하게 개선하자는 취지다.
통계청에 의하면 현재 연간 평균사망자 수 25만명이 3년 후면 30만명, 2035년 50만명 그리고 2055년이면 75만명으로 증가하며 앞으로 40년간 19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장례 의식은 세속화, 허례허식, 상업화, 고급화로 치달아 현대인들이 납득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여러 의식과 절차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장례문화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 앞으로 시간적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유족은 물론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허례허식이 많은 고비용 구조이면서도 정작 고인에 대한 추모는 뒷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장례식장 비용과 묘지 비용 등을 포함해 평균 장례비용은 1200만원 정도로, 외국보다 3~4배 많다. 고급 수의와 염습·관 등 시대에 맞지 않는 관습도 많이 남아 있다.
화장할 경우 수의는 길어야 하루 이틀 입히는데 수백만원 지출하는 경우도 있다. 서양에서는 고인이 평소 입던 옷 중에서 골라 입힌다. 더구나 병원 장례식장이나 상조업체들은 경황이 없는 유족들 약점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지방의 어느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판매하는 장례용품 평균 이익률이 177%에 이른다는 자료도 나왔다. 구체적으로 판매가 45만원 짜리 수의는 원가가 14만원으로 이익이 201%, 오동나무관은 원가가 12만원인데 판매가격은 36만원으로 이득이 196%에 달했다.
요즘 많은 노년층이 상조회사에 가입하고 있는데 이런 회사는 설립 목적이 영리 추구이기 때문에, 유족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상을 당할 본인이 미리 냉정한 대처를 해 놓을 필요가 있다. 자식들은 체면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장례를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할 수밖에 없다.
‘사전장례의향서’에는 양식이 있다. 너무 길지만 필자는 다음 중요한 몇 가지를 자식들에게 남기려 한다.
첫째, 장례절차다. 나의 초종(初終) 장례절차는 ‘원불교 장례절차’에 따른다.
둘째, 부의금 및 화환에 관한 처리는 1)관례에 따라 하기 바란다. 2)부의금은 천도재(薦度齋)와 장례비용을 제외하고 전액 원불교 여의도교당에 교화·교육· 자선사업에 쓰도록 희사(喜捨)하기 바란다.
셋째, 수의와 관은 1)수의는 새로 장만할 필요가 없다. 평소 내가 강연이나 의식 때 정갈하게 입던 법복(法服)과 법락(法珞)을 그대로 사용한다. 2)관은 고급이 아닌 수수하고 보통 수준으로 하기 바란다.
넷째, 장의(葬儀)방법이다. 1)화장(火葬)으로 한다. 2)화장하여 익산 왕궁의 영묘묘원에서 아무 표시가 없는 평분장(平墳葬)으로 한다. 3)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파주 월롱 선영에 훌륭한 선산(先山)이 있으니 선산김씨 종친회장에게 연락을 취하고 수목장이나 선산 안 숲에 그냥 뿌려주기 바란다.
다섯째, 연명(延命) 입원치료는 금한다. 죽음에 임박하거나 중병으로 위기에 처할 때 병원에서의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 집에서 평안히 수행하다가 명을 마치게 하면 좋겠다.
죽음에 임박해 우왕좌왕 하기보다 이렇게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해 놓는 것이 자식들에게 폐를 덜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죽음의 보따리는 이렇게 미리 쌓아 두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