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모죽(毛竹)에서 배우는 지혜

보임(保任)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인(修行人)이 진리를 깨친 후에 안으로 자성(自性)이 요란하지 않게 잘 보호하고, 밖으로 경계(境界)를 만나서 끌려가지 않게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보호임지(保護任止)의 준말로 “진리를 깨친 사람이 그 깨친 진리를 천만경계(千萬境界) 속에서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깨친 진리를 보다 확고히 하고 보다 완전한 힘이 되도록 멈추지 않고 안으로 계속 단련하는 것”을 이른다. 옛날에 새카만 중생이 일원대도에 귀의(歸依)하고 몇 년 열심히 다니니까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알면 얼마나 안다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아는 체, 잘난 체, 있는 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꼬락서니가 볼만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스승님께서 눈살을 찌푸리고 내 입을 막는 거였다. 속으로 얼마나 불만인지 항상 그렇게 아는 것을 나타내지 못해 앙앙불락(怏怏不落)하던 때가 있었다. 그 안다는 상(相)을 떼느라고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스승님 눈총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소설가 남지심(南智尋)씨가 원불교소설 (曇無喝)을 쓸 때 하도 내가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니까 귀찮았던지 묵언(?言)을 주문한 적도 있다. 그 묵언 3개월 동안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수도인이 무얼 조금 알기 시작할 때 그렇게 무섭고 위험하며 건방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아는 것을 안으로, 안으로 감추고 함축(含蓄)하는 것이 바로 보임이다.

모죽(毛竹)이란 대나무가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 자생하는 큰 대나무다. 모죽은 초기성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뿌리 발육은 계속하지만 지상 쪽은 꼼짝도 않는다. 그런데 한 4~5년 후부터는 하루에 70cm도 크고 나중에는 30m까지도 큰다. 그러니까 뿌리발육만 엄청나게 하다가 일시에 줄기를 키우는 특성이 있는 나무가 모죽이다. 이같이 모죽은 일반 대나무와 달리 성장을 위해 철저한 준비기간을 거친다. 모죽은 제 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어 놓아도 5년이 지날 때까지 아무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년 내내 땅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 4~5년 동안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을 파보면 5년간 대나무의 뿌리가 땅 속 깊숙한 자리에서 사방으로 10리가 넘게 퍼져 있다. 이것이 대나무를 거대하게 자라게 했던 능력이다. 그 어떤 태풍에도 전혀 쓰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것은 그렇게 5년을 숨죽인 듯 세상에 뻗어나갈 날 만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였기 때문이다. 모죽이 그렇게 멋지고 당당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보임과 함축이 없고도 가능한 일일까?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빠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아야 한다. 도에 발심하고 소각(小覺)이라도 하여 안으로 보임을 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 밑에는 깊고 강건한 뿌리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개 도인들이 가장 위태로울 때가 무얼 좀 알아간다고 우쭐대는 때다. 그걸 도가(道家)에서는 중근병(中根病)이라고 한다. 이 중근병을 잘 넘겨야 한다. 물이 100도가 되면 끓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온도는 올라가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물의 온도는 상승하며 기체로 승화된다. 이 순간이 가장 뜨거운 순간이자, 바로 대각(大覺)의 기쁨이다.

사람은 본래 참으로 온전하고 원만하였다. 태어나면서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불성(佛性. 天心. 聖心)은 원래 온전하고 맑고 밝은 상태다. 그러나 크고 자라면서 욕심의 경계를 따라서 불심이 점점 빠져 나가고 새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온전한 불성도 세월 따라 경계 따라 막 새어 나간다.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수양에서 수(修)라는 글자가 닦을 수자도 되지만 막을 수(修)자로도 쓰인다. 육근(六根, 眼耳鼻舌身意)을 통하여 밖으로 새어 나가는 불성. 불심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모죽같은 대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대산(大山)종사님은 “불성이 새어 나가면 쭈글쭈글 해져서 보기 흉하여지고 민망스러워진다. 불심이 약해지면 심신이 경계 마다 끌려 다닌다”고 했다. 천진한 불성, 불심. 천심은 다 새어 나가고 삼독심(三毒心)과 오욕심(五慾心)이 자리를 잡으면 보기 흉한 것이 이치다. 그래서 우리는 불성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는 보임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임을 하는데 몇 단계가 있다. 1)경계(境界)에 멈추고 2)자신을 바라보며 3)지켜보며 기다린다 4)다시 나를 돌아보고 5)나 없으매 참나가 드러나는 것이니 나마저 놓아버린다 6)있는 그대로 보며 7)삼가 어눌(語訥)해지며 8)아는 바가 없는 듯 바보처럼 행하고 9)기도와 선(禪), 염불(念佛)과 주송(呪誦) 등의 수행을 하며 때를 기다린다. 아는 체, 잘난 체, 있는 체 해봐야 사람들 눈총 맞기가 십상이다. 불심(佛心)을 지키고 키우려면 눈과 귀, 코와 입을 막고 살아야 한다. 보임을 하면 목소리가 맑아지고, 얼굴과 귀가 밝아진다. 마음도 훈훈해진다. 어찌 모죽의 보임을 마다할 것인가? 보임과 함축을 통해 모죽 같은 대인으로 성장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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