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종교계의 ‘롱테일 법칙’ vs ‘파레토 법칙’
‘롱테일 법칙(Long tail Low)’이란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20대80의 법칙’으로 불리는 ‘파레토 법칙(Pareto’s law)’이었다. ‘파레토 법칙’에 따르면, 투입량 중 20%가 산출량의 80%를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전체노력의 20%에서 전체성과의 80%가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20%의 손 큰 고객이 매출의 80%를 올려주고, 전체 자동차 운전자의 20%가 80%의 사고를 내며,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소유하는 상황을 설명하는데 적용되었던 것이 파레토의 법칙이다.
그런데 ‘롱테일 법칙’은 많이 안 팔리는 제품이 길게 나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게 팔리는 제품들 매출의 총합(總合)이 인기 상품의 매출과 맞먹거나 이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즉 인기 상품에만 매달려서는 시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에서는 어쩌다 한두 권 팔리는 80%의 책들이 20%에 속하는 베스트셀러의 매출을 앞지르고, 한두 번 다운로드 되는 80%의 음원(音原)이 20%의 인기 음원보다 더 다운받은 횟수가 많다고 한다. 잘 안 팔리고 별 볼 일 없는 다수의 상품이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해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 ‘롱테일 법칙’이다.
유통업계에서 ‘롱테일 법칙’을 적용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한다. 특정 20%가 80%를 좌우하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제품이 올라서면 다른 제품이 빠져야 되는 제로섬이 지배하는 진열대의 경제에서 이제는 별 볼 일 없이 긴 꼬리를 늘어트리고 있던 상품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파레토의 법칙’은 상위 20%를 잡는 상술이나 ‘롱테일 법칙’은 하위 80%를 잡는 전략(戰略)이다. ‘파레토의 법칙’과 상반되는 롱테일 법칙의 등장은 우리들의 삶을 재음미하게 하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종교계에서도 ‘파레토의 법칙’ 일변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 심한 비애를 느낀다. 대다수의 일반 교도(敎徒)보다 돈 많고 많이 배우고, 권력과 명예가 있는 20%의 잘난 교도들만 귀히 여기며 우대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은 돈 없고 못 배우고 못난 대다수의 교도들이 각 종단(宗團)의 주인이 아닐까? 원불교 교헌(敎憲)에 보면, “‘재가(在家)’와 ‘출가(出家)’는 구분은 할지언정 차별하지 아니하며 실력에 따라 대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교단은 관료화, 경직화되어 가고, 권위적인 모습이 곳곳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그러니 중생을 위해 헌신하러 출가한 성직자들이 간혹 교도 위에 군림하는 듯한 모습은 본원(本願)을 망각한 것 같아 영 안타깝게 느껴진다.
종교는 모름지기 차별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평등해야 할 종교에서 차별과 계급이 존재한다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교단 통치(統治)를 위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계급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원불교에서도 법위(法位)가 보통급에서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까지 3급(三級) 삼위(三位)가 있다. 이것이야 법력(法力)의 상징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각 종단에서 돈과 재물을 많이 바쳐야 상당한 직분이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교단에 대한 특별한 기여도는 아랑곳 없이 돈만 많이 내면 직분이나 위(位)를 수여 받는다는 것은 중세시대(中世時代) 천주교에서 천국행 티켓을 판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재물로 직분이나 공훈(功勳)을 받는 것은 무상이 아니고 유상(有相)이다.
물론 교단도 재물이 있어야 운영이 되고 발전이 된다. 거액의 재물을 받은 교단의 입장에서는 표창도 하고 위(位)도 주어야 하고 대우도 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재산을 내는 사람의 신심(信心)도 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력을 갖춤도 없이 교단을 위한 공덕(功德)은 도외시(度外視)한 채 재물로 직분이나 공훈을 준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는지?
원불교 <대종경(大宗經)> ‘교단품(敎團品)’ 32장에 이런 법문(法門)이 있다.
“큰 회상(會上)을 일어내는 데에는 재주와 지식과 물질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물론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울타리가 될 뿐이요,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血心) 가진 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나니, 그가 참으로 알뜰한 주인이 될 것이며 모든 일에 대성(大成)을 보느니라.”
종교도 꾸려가려면 상위 20%의 잘난 사람들이 필요할 것이나 그와 함께 대다수 80%의 혈심 가진 일반 평교도가 더욱 소중하고 우리가 받들어야 할 교도가 아닐까? ‘파레토의 법칙’도 필요하지만 안 팔리는 80%의 총합이 더욱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롱테일 법칙’의 세상이 도래한 지금 종교계에서도 시대 흐름을 인식하여 재물보다는 법력을 우선하고, 고단한 80%의 교도들이 진리 앞에 평등하게 대우받는 그런 종단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