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마지막 불꽃

마지막 불꽃이 더 아름답게 타오른다 하던가요? 지난 대선(大選) 때 양 진영의 후보들이 저마다 앞 다투어 복지공약을 쏟아 냈습니다. 과연 그 공약이 현실성이 있는지 무척 걱정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그 불안감이 적중한 것 같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이 65세 이상이면 기초노령연금으로 월 20만원씩 지불한다는 대표적 공약이 9월 26일, 시작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공약(空約) 터지는 소리가 보통 요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소득 상위 30%에 들어서인지 정부로부터 연금 탈 소망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부은 연금보험도 타 쓴지도 오래 되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나라에서 준다는 월 20만원의 노령연금을 학수고대 했었습니다. 허허허! 그 꿈이 사라지다니요? 늙은이가 되어가니 사람노릇 하기가 점점 더 힘이 드네요. 주위 애경사 안 챙길 수도 없고, 어린 손자 녀석들 사탕 값 안 줄 수 없고, 모처럼 만나는 동창생들이랑, 평생을 함께 한 각종 모임 회비내기도 벅찬 이 노년의 고충을 뉘 알겠습니까? 최소한 그 노령연금만 주어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거의 품위유지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요.

언젠가 친지의 임종(臨終) 때 보니 여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황홀함이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이 늙어 갈수록 추하게 늙으면 안 됩니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온양온천에 가면 노인들로 만원이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노인들이 그곳에 많이 갈까 하는 생각했지요. 전철이 천안까지 운행이 되어 무료로 탈 수 있고, 단 돈 1만원만 가지면 그곳에 가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온천욕으로 하루를 때울 수가 있다고 합니다. 더욱이 집에서 마누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홀대를 받는 우리 노인이 여간 측은한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이 나라의 안녕과 부강이 이 노인세대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결과가 아닌가요? 지금은 은행 이자로 노후를 책임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개발의 역군들이 지나온 세월 당당하게 일하며 일군 세월의 보상은커녕 월 20만원의 노후 대책까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이런 홀대를 받으며 갈 곳을 몰라 공원벤치를 안방 삼아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이 서글픈 군상들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참 좋은 세월이다!” 감탄을 한 적도 있었죠.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의 번영에 마냥 어깨가 으쓱거려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큰 차를 사고 대형 TV를 보며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게 성공의 상징인 시절도 있었고요.

그러나 세월이란 녀석이 인생의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이치 따라 모든 것을 그대로 두지 않네요. 강산은 소리 없이 변하고 우리네 육신도 보이지 않게 변해 어느덧 언제까지도 누릴 것 같던 청춘과 부귀와 영화도 저만치 데리고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백발은 막을 것을 미리 알고 지름길로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고, 돋보기를 써야 사물을 볼 수 있는 어둠침침한 눈동자만이 흐릿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세월만 응시(凝視)합니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살았더라면 이 노병사(老病死)의 천리(天理)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더 저축하며 노후준비를 해둘 걸 하는 자탄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리지 않는 노인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건강을 지키며 곱게 늙을 준비를 미리 해 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노년에 이르러 즐거움이 무엇일까요? 또 행복이란 게 무엇일까요? 오래 살고 싶은 게 욕심이라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이상 큰 바람은 없을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곱게 늙는 것도 꽤나 어렵고 힘든 숙제인 것 같습니다. 주어진 삶을 주위 인연들과 처자식들과 웃으며 사는 일상이 행복이고 즐거움이 아닌가요?

며칠 전 아내와 다정하게 손 잡고 동네 한의원을 다녀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하데요. 그나마 간단한 외식이라도 하고 손잡고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여간 대견한 일이 아니죠. 그러나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 노인들의 삶에도 누군가의 추임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다 못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 보기 좋게 늙어간다는 칭찬의 말 한 마디라도 있으면 한층 활력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추임새가 바로 몇 푼 안 되는 기초노령연금 아닌가요? 곱게 늙기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네 가지 큰 괴로움이 있다 하셨습니다.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이죠. 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수행(修行)을 통하여 해탈(解脫)을 얻어 열반(涅槃)에 드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수행을 하는 신앙생활도 최소한의 용돈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렇게 언제라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게 진정 곱게 늙는 것인데 그마저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라도 다 태우고, 그나마 품위 있게 떠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방법은 없을까요? 그건 주기로 발표했던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중증 환자들을 위한 대선공약의 회복이 아닐는지요? 물론 나라의 형편과 세수(稅收) 결함이 장애가 되겠지요.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다수 노인들의 희망을 무참히 꺾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권리이며, 대선공약을 철석같이 믿고 투표를 했던 대다수 노인들의 꿈을 깨는 배덕행위(背德行爲)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위정자들 역시 미구(未久)에 노인이 됩니다. 남에게 은의(恩義)로 준 것은 은의로 받게 되고, 악의(惡意)로 빼앗은 것은 악의로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편의 진, 강, 급(進降級) 여하에 따라 그 보응(報應)이 몇 만 배 더할 수도 있고, 몇 만분으로 줄어 들 수도 있습니다. 나라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대통령의 고뇌(苦腦)도 이해합니다. 그래도 다른 것을 줄여서라도 노인을 위한 공약은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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