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훈의 훈훈한 세상] ‘노무족’과 ‘노마족’
노무족(族)과 노마족(族)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도무지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묘한 말들이 유행한다. 국적도 없는 외계인(外界人)의 말처럼 들리는 말들이다. “소비시장의 블루오션(blue-ocean)! ‘노무族·노마族’의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고 한다. 전에는 나이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던 레드오션(red-ocean)이었다.” 이 말의 뜻을 알 수 있을까?
지금 한국에도 여성의 노마族(NOMA族, No More Aunt), 나우族(NOW族, New Older Women), 남성의 노무族(NOMU族, NO More Uncle)의 산업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패션·화장품·식품 ·모발제품·미용 등의 ‘안티에이징(Anti-Aging)’, 즉 젊어 보이고 예쁘게 보이게 하는 ‘꽃중년 사업’이 유행이다. 옛날에는 젊은 여성이나 찍어 바르던 각종 화장품을 나이든 여자나 남자들도 찍어 바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외치면서 말이다.
“NOMA, 나, 아줌마가 아니거든!” “NOMU, 나, 아저씨가 아니거든!”
인간이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하여 양귀비 등이 이를 증명한다. ‘보톡스 주사’나 ‘양악수술’ ‘콧대 높이기’ 등 얼굴성형수술이 다 그렇다. 나이에 관계없이 “젊어 보인다”는 말보다 더 좋고 달콤한 말(lip-service)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노마족’이나 ‘노무족’은 발악을 하는 것이지 인생이 곱게 늙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음과 인품이 곱게 늙어 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보인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오히려 새로움이 있다. 곱게 늙어 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는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한 글자 차이밖에 없다. 하지만 뜻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리고 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일 뿐이다. 그러나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로울 것이다. 우리가 수행(修行)을 하면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진다. 이처럼 수행은 우리의 마음을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게 하고 더 깊은 깨우침으로 다가오게 한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다. 몸은 늙었으나 새롭고 젊은 인품(人品)이 있다. 그러나 늙음과 낡음은 삶의 본질을 갈라놓는다. 글자만 다른 것이 아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늙어 가는 것이다. 몸은 비록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살아간다면 평생을 살아도 늙지 않을 것이다.
곱게 늙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다. 멋모르고 날뛰는 청년의 추함보다는 고운 자태로 거듭 태어나는 노년의 삶이 더욱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 늙는 것이 두렵고 서러운 건 마음이 늙기 때문이다. 마음을 새로움으로, 기쁨으로 바꾸면 백발과 이마의 주름살은 인생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만큼 원숙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곱게 늙어 아름다운 노년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활동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초월적이거나 세속적인 성질의 기운을 동반한다. 즉 분노는 눈에 띌 정도의 거친 호흡을 야기(惹起)하지만 고요한 정신 집중상태는 생각과 호흡을 고르게 만든다. 우리는 미묘한 문제를 풀기 위해 사색에 잠기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멈춘다. 이것이 바로 선(禪)이다.
분노, 자만심, 질투심, 수치심, 사랑, 탐욕 등 마음 작용은 그에 상응하는 호흡과 기운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기운을 자기 내부에서 직접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운이 밖의 모든 것과 교류한다. 즉 악귀(惡鬼)의 심리가 형성되면 몸의 그 기운도 따라 일어나며 그 기운에 따라 실제의 악귀와 교류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소 자비심(慈悲心)을 키우면 이러한 장애를 받지 않는다. 자비는 자비에 반대되는 마음을 정화(淨化)시키기 때문이다. 즉 무명(無明)과 그에 편승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이다. 미움, 성냄, 원한, 적대감, 두려움, 잔인한 폭력성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번뇌(煩惱)가 마음에서 나와 몸에 영향을 주면 몸이 아프다. 또 몸은 마음에 영향을 주어 고민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괴로움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자비로 감싸주면 번뇌를 일으키던 마음이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로 변화를 일으킨다.
곱게 늙어 가기에도 9가지 덕목이 있다. 1)말을 적게 하고 억양을 낮추며 2) 욕심을 버리고 3)정신 육신 물질로 베풀며 4)미운 사람과의 해원(解寃)을 하며 5)가장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고 6)감사생활을 하며 7)조금 바보처럼 살고 8)맨발로 뛰며 9)노병사(老病死)에 해탈(解脫)을 얻는 것이다.
이 9가지만 실천에 옮겨도 우리는 곱게 늙을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다움은 외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외모를 예쁘게 꾸미려고 ‘노무, 노마’를 주장하면 추하게 늙는다. 수행을 하며 9가지 덕목만 실천해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곱게 늙을 수 있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다 황홀해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