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일류인생, 삼류인생
일류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3등은 괜찮지만 3류는 안 된다고 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학창시절을 통해 한 번도 일등을 해 본 적이 없다. 일등은커녕 맨날 가(假) 진급 아니면 턱걸이로 겨우 올라가곤 했다. 물론 반장은 고사하고 줄반장 노릇도 한 번 못해 보고 졸업을 한 소위 ‘먹고 대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뒤늦게 원불교에 뛰어들어 감투란 감투는 거의 다 써봤다. 필자가 뛰어든 조직 어느 곳에서도 활성화되고 발전하지 않은 곳은 별로 없었다. 인생의 가치는 이타(利他)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온 몸을 던져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류인생이란 내 한 몸 내 한 가정 뛰어넘어 세상을 위하여? 한 목숨 던지는 삶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삼등은 괜찮지만 삼류인생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나처럼 일등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누구나 다 일등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까 3등이나 4등 그 이하가 되어도 좋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도대체 일등과 일류, 삼등과 삼류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또 ‘등(等)’과 ‘류(流)’에는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인가?
‘등’은 순위나 등급 또는 경쟁을 나타내고, ‘류’는 위치나 부류의 질적 가치를 나타낸다. ‘등’에서는 외양적 의미, ‘류’에서는 내면적 의미가 파악된다. ‘등’보다 ‘류’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긍정성이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일등은 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일류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사람이 다 일류가 될 수는 없다. ‘삼류는 안 된다’고 한 것은 꼭 일류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일류가 되지 않아도 괜찮지만 삼류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류가 되어 질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삼류가 되어 질 낮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삼류란 질의 문제로 ‘질이 형편없다, 그럴 가치가 없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산품일 경우 품질의 문제이고, 인간일 경우 인격과 인품, 법력(法力)의 문제이고, 국가일 경우 국격(國格)의 문제가 된다.
인생에도 등수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일이나 경기에서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모두 다 일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등수가 매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등은 일등대로의 가치, 꼴찌는 꼴찌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꼴찌라고 해서 무조건 무가치한 존재는 아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육상경기의 한 장면을 못내 지울 수가 없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한 선수가 남보다 몇 바퀴나 뒤쳐져 비틀거리면서 골인지점까지 달려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관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람들은 비록 꼴찌지만 최선을 다해 달리는 선수에게 진심 어린 갈채를 보내는 것이다. 꼴찌가 있기 때문에 일등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이 등수가 인생의 가치마저 매길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한 순위일 뿐 가치가 아니다. 인위적 순위가 본질적 가치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일류와 삼류는 다르다. 그것은 바로 인간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쟁그룹에서 일등을 하지 못하는 것과 어떤 위치나 부류에서 삼류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순위에서는 삼등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질과 가치에서는 삼류, 즉 삼류인생, 삼류사회, 삼류국가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일류와 삼류의 차이는 그리 큰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윤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도덕규범, 국민으로서의 헌법질서 등을 제대로 지킨다면 바로 일류인생이 되는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수술이 거부되는 것이나, 재벌들이 나서서 코 묻은 돈을 빼앗아 덩치를 키우는 것이나, 정쟁에 의해 국회를 폭력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 삼류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며 살았는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에 남는 것은 결국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 많고 지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자신만 아는 이기적 삶을 살았거나 사회와 국가의 기저(基底)를 훼손하는 삶을 살았다면 결국 삼류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삼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천박하다. 남을 이해할 줄 모르고 양보와 배려의 정신이 부족하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동물적 본성이 더 드러나기 십상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류인생을 만드는 열쇠다. 가치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라”고 한 것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는 이타(利他)에 있다. 자리이타(自利利他)로 살다가 안 될 때는 차라리 자해타리(自害他利)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사회, 이 가정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요청해 오는 데 이타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 가치를 위해 이 한 몸 조금 밑지며 살자. 조금 베풀고 살자. 맨발로 헌신하고 봉공(奉公)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새 일류인생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