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용심법’을 아십니까?

용심법(用心法)이 있다.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손오공이 여의봉(如意棒)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 같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뜻으로 쓰이며, 흔히 말하는 ‘마음공부’가 이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운명은 행복한 삶도 되고 불행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조금만 더 멀리 앞을 볼 수 있다면 마음 씀씀이가 우리의 운명, 행불행을 좌우함을 알 수 있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눈에 안 보인다. 그러니까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짜증 나면 짜증나는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냥 생각 없이 마음을 써버린다. 결국 마음작용에 따라 우리의 모습을 천하게도 만들고, 귀하게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 한 석공(石工)이 무릎을 꿇고 비석(碑石)을 다듬고 있었다. 석공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비석을 깎고 다듬었다. 바닥에는 돌가루 먼지가 가득했다. 하지만 석공은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은 채 일어날 줄 모르고 일에만 몰두했다. 비석은 점점 아름다운 문양(紋樣)을 드러내며 모양을 갖춰갔다. 며칠 뒤 석공은 다듬기가 끝난 비석에 명문(銘文)을 새겨 넣고 있었다.

그때 석공 집앞을 지나던 높은 관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관리는 석공의 재빠르고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며 말했다. “나도 돌같이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당신처럼 유연(柔軟)하게 다듬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돌에 명문을 새기듯 사람들의 마음에 내 이름을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구려!” 그러자 석공이 답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저처럼 무릎을 꿇고 대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이 굴기하심(屈己下心)이라고 이 석공이 가르쳐준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부자가 되어서도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온 세상 중생을 모두 품에 안을 만큼 마음을 넓게 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앞에 놓인 업장(業障)이 무너지고, 지난날의 악연(惡緣)들이 모두 끊어져 앞날이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펼쳐질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재주와 지식을 지녔다 할지라도 마음자리가 올바르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게 된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가 바르지 못하면 그 물질이 악용되어 죄를 짓게 된다. 우리의 마음자리를 바르게 사용하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도둑에게 무기를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용심법(用心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마음에 주(住)하는 바 없이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주위에 무엇을 베풀 때 상(相)이 없이 베푸는 것이다. 정신 육신 물질로 은혜를 베풀어도 그 베풀었다 하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배은망덕(背恩忘德)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하여 미워하거나 원수를 맺지 않는 것이다.

둘째, 합리(合理)는 취하고 불합리는 버리는 것이다. 천지에는 순리 자연(順理自然)한 도가 있다. 그러니까 만사를 작용할 때에 합리와 불합리를 분석하여 합리는 취하고 불합리는 버리는 것이다.

셋째, 편 착심(偏着心)을 없이 하는 것이다. 이 우주는 광대무량(廣大無量)하다. 그 마음을 본받아서 우리는 어디에 치우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을 상대할 때에 원근친소(遠近親疎)와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끌리지 않고 중도 행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도(中道) 중용(中庸) 중화(中和) 곧 도(道)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을 얻는 것이다. 천지에는 영원불멸(永遠不滅)한 도가 있다. 그 도를 본받아서 만물의 변태(變態)와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해탈을 얻어야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다섯째, 길흉(吉凶)에 끌리지 않는 것이다. 천지에는 길흉 없는 도가 있다. 그 도를 본받아서 길한 일을 당할 때는 흉한 일을 발견하고, 흉한 일을 당할 때는 길한 일을 발견하여 길흉에 끌리지 않아야 한다.

여섯째, 마음에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을 없이 하는 것이다. 그걸 계정혜(戒定慧) 또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삼학(三學)이라 한다. 그 공부의 힘으로 경계(境界)를 당해 마음에 요란함과 어리석음과 그름을 없이 하는 것이다.

이 정도에 이르러야 우리의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비록 찬란하다 하나 오직 마음 작용하는 법의 조종 여하에 따라 세상을 좋게도 하고 나쁘게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면 모든 문명이 낙원을 건설하는 데 보조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요, 마음을 바르지 못하게 사용하면 모든 문명이 도리어 도둑에게 무기를 주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마음대로 쓰는 용심법, 어찌 닦아가기를 게을리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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