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박 신부님의 환경미화원 체험

얼마 전 카톨릭의 수장인 새로운 교황(敎皇)이 탄생됐다. 프란치스코 새 교황은 이른 아침부터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예고 없이 들렀다.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오래 된 성당에서 교황은 성직자들과 기도를 올렸다. 선출 다음날 바티칸 성소에 머물던 이전 교황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어 콘클라베에 참석하기 전 머물던 로마의 숙소에 들러 손수 짐을 챙기고 숙박비도 계산했다.

선출 당일에도 교황들이 걸치던 화려한 망토를 입지 않았고 준비된 전용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소탈함을 보여줬다. 그는 숙소에 돌아갈 때 교황 전용 승용차가 준비돼 있었지만 다른 추기경들과 버스를 함께 타기 원했다. “이제 여러분에게 강복(降福)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먼저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주교가 그 백성을 축복하기 전에, 여러분이 주님께서 저에게 복을 내려주시도록 기도하여 주시기를, 곧 자기 주교를 위하여 강복을 청하는 백성의 기도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새 교황이 우리들을 기쁘게 하며 새로운 신부상(神父像)을 보여주고 있다.

몇년 전 들은 얘기다.?영동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박아무개씨는 휴게소 미화원으로 일한 지 이 날로?한 달 이상 되었는데도 ‘아저씨’란 호칭이 영 낯설다고 한다.?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이용해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직한 ‘청소부가 된 신부님’, 박 신부님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며 빗자루질을 한다. 물론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어느 기자가 이 사실을 알고 기습취재를 나온 것이다. 깜짝 놀란 신부님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인데”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삶의 현장으로 나와 본 거예요. 저는 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워요.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유지비를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다고 한다. 농공단지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는데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힘을 써줘서 겨우 휴게소 미화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그는 출근 첫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소변 묻은 변기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 걸레질하고, 담배 한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엉망이고…. 그래도 일이 고달픈 건 견딜 만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했다.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박 신부님은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 라며 돌아서는 데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제가 그때 청소복이 아니라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그 여성이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죠.”

박 신부는 “그러고 보면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눈물 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고 했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는데 허기가 져서 도저히 빗자루질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트럭 뒤에 쪼그려 앉아 몰래 먹었다. 손님들 앞에서 음식물 섭취와 흡연을 금지하는 근무규정 때문이다.

그의 한 달 세전 월급은 120만원이라고 한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 달에 12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 것인지 적게 받는 것인지요?” 하고 기자에게 물었다. 또 “언젠가 신자가 사다준 반팔 티셔츠에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 있던데…”라며 120만원의 가치를 따져보며 어떻게 이 월급을 받고 신자들이 살아가는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신부님은 “신자들은 그런데도 헌금에 유지비에 건축기금까지 낸다”며 “이제 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퇴근하면 배 고파서 허겁지겁 저녁식사하고 곧바로 곯아떨어진다”며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일을 보내고 주일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평화와 휴식 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다”고 말문을 닫았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의 한 달 체험을 사치라고 말했다. “저는 오늘 여기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쉬겠죠. 하지만 이곳이 생계 터전인 진짜 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그나마 이 일마저 잃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런 성직자가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궁전과 같은 교회를 지어놓고 세습을 일삼으며 초호화 생활을 하는 성직자가 아직 교계(敎界)에는 많이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어느 종교라 할 것 없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 로마 교황청에서부터 불어오는 신선한 변혁의 바람이 전 종교계에 널리 메아리치면 좋겠다. 성직자들은 부자교인들에게만 쩔쩔 맬 것이 아니라 일반 교도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섬기는 성직자로 거듭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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