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베풀면 팔자도 고친다
‘觀相不如心相, 心相不如德相’(관상은 마음상만 같지 못하고, 마음상은 덕상만 같지 못하다). ‘심상불여덕상’이라는 말은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러 관상학을 집대성한 ‘마의선인’(麻衣仙人)이라는 사람의 저서 <마의상서>(麻衣相書) 뒷부분에 기록된 내용이다. 하루는 마의선인이 길을 걷던 중 관상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볼품없는 머슴살이 총각이 나무하러 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의선인은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으니 무리해서 고생하지 말게”라고 말한 후 그 곳을 지나갔다. 머슴살이 총각은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산 계곡물에 떠내려오는 나무껍질 속에서 수많은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였다. 총각은 자신의 신세와 같은 개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떼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우연히 며칠 전의 머슴총각과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총각의 얼굴에 어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30년 넘게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있었다. 마의선인은 총각으로부터 수천마리의 개미를 살려 준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자신이 지은 책인 <마의상서> 제일 마지막에 추가로 기록한 말이 바로 ‘심상불여덕상’ 글귀였다.
1945년 6월 런던광장에서 미 육군중령 브라운은 시계탑을 보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3년 전 죽음의 공포 속에 빠져있던 브라운은 우연한 기회에 젊은 여성작가 ‘주디스’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브라운은 용기를 내어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2주 후에 왔고 두 사람은 전쟁기간 중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랑의 감정이 싹튼 브라운이 주디스 사진을 보내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사진 대신 질책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토록 제 얼굴이 보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말해왔듯이 당신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면 제 얼굴이 아름답던 그렇지 못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만약 당신이 보시기에 얼굴이 추하기 짝이 없다면 그래도 당신은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후, 더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서 귀국하게 된 브라운은 주디스에게 만날 약속을 청했다. 주디스는 브라운에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런던 전철역 1번 출구에서 제 책을 들고 서계세요. 저는 가슴에 빨간 장미꽃을 꽂고 나갈 거예요. 하지만 제가 먼저 당신을 아는 척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먼저 저를 알아보고 만약 제가 당신 연인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모른 척하셔도 됩니다.”
3분 뒤면 만난다는 생각에 브라운은 두근거리는 마음에 조금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금발의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계의 미인이 나타났다. 브라운은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순간 브라운은 그녀의 가슴에 장미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6시 정각, 멀리서 가슴에 장미꽃을 단 여인이 아주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브라운은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듯했다. 놀랍게도 걸어오는 여인은 못생기다 못해 매우 흉측한 모습이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그녀는 한쪽 팔만으로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얼굴 반쪽은 심한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짧은 순간 브라운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모른 척해도 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군. 정말 그녀를 모른 척해야 하나?’ 그리고 브라운은 생각했다. ‘아니야. 원망해야 할 상대는 독일군이야. 이 여인 역시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고…. 3년 동안 난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랑했어. 이건 변할 수 없어. 이제 와서 그녀를 모른 척하는 것은 비겁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배신하는 거야.’ ‘그녀의 뛰어난 문장으로 보아 그 얼굴 속에는 무지무지한 지성이 들어있을 거야’ 브라운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그녀가 돌아보자 브라운은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책을 들어 올렸다. “제가 브라운입니다. 당신이 주디스이지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아니에요 전 주디스가 아니고 페니예요,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녹색 옷을 입은 여자 분에게 부탁을 받았어요. 장미꽃을 달고 이 앞을 지나가 달라는…. 그리고 저에게 말을 거는 분에게 저 앞의 ‘식당으로 오시라’고 하더군요.” 식당에 들어서자 녹색 옷을 입었던 주디스가 환한 웃음으로 브라운을 반겨주었다.
그 후, 이 둘은 혼인을 했다. 그리고 1996년 5월 3일 존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 지 몇 시간 뒤 그의 아내 주디스도 그 뒤를 따랐다. 일생동안 깊은 사랑을 나눈 두 노인은 죽는 날까지 같이 했다. 마음을 잘 쓴 덕에 아름다운 부인과 죽는 순간까지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마음이 곱고 심성이 착하고 남을 배려하고 덕을 베풀어야 한다. 그렇게 공덕을 쌓으면 사람의 관상은 은은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변한다. 그래서 선하게 살면 해맑은 얼굴로 꽃이 피고, 세상을 불편하게 살면 어두운 얼굴로 그늘이 지는 것이다. 마음의 거울이 바로 얼굴이기 때문이다. 보시(布施)의 공덕이 으뜸이라고 했다. 베풀어야 팔자를 고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