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여당 원내대표와 천냥 빚
언어는 품격(品格)이다. 그 하는 말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한다. 엊그제 선량(選良)들이 모인 국회에서 연설하는 야당당수에게 “너나 잘해!”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물론 야당대표의 비판이 아팠겠지만 여당 원내대표의 막말은 이해도 안가고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이게 바로 한국 정치판의 현주소와 정치인들의 품격을 나타낸 사건이 아닐까?
언제나 생각 없이 내뱉는 입이 문제다. 그러나 그 또한 잘 쓰면 얼마나 복문(福門)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하여 하라는 ‘구시화문’(口是禍門)에서 잘 쓰면 복이 온다는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으로 속담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악한 말은 독사의 송곳니보다 강하다. 독사는 누군가를 물 때 독침과 같을 역할을 하는 송곳니로 문다. 이 ‘침’을 통해서 적의 몸에 치명적인 물질을 보내어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뱀만이 그들의 입에서 독을 내뿜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조심하지 않고 내 뱉는 말이 바로 위험스런 독이 되는 것이다.
옛날에 박상길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첫 번째 양반이 “야!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라고 했다. 박상길은 “예, 그러지오.” 대답하고는 고기를 떼어 주었다. 두번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라고 점잖게 부탁했다. 박상길은 이 말에 “예, 고맙습니다”하며 기분 좋게 대답하고 고기를 듬뿍 잘라 주었다.
첫번째 고기를 산 양반이 보니, 같은 한 근인데도 자기가 받은 것보다는 갑절이나 더 많아 보였다. 그 양반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따졌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사람 것은 이렇게 많고, 내 것은 이렇게 적으냐?” 그러자 박상길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그거야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자른 것이니까요.”
인간은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많은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우선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마는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마는 한 마디 말로 사람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이발사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젊은 도제(徒弟)를 한 명 들였다. 도제는 3개월 동안 열심히 이발 기술을 익혔고 드디어 첫번째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배운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여 첫째 손님의 머리를 열심히 깎았다. 그러나 거울로 자신의 머리 모양을 확인한 손님은 투덜거렸다. “머리가 너무 길지 않나요?” 초보 이발사는 손님의 말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를 가르쳤던 이발사가 웃으면서 말한다. “머리가 너무 짧으면 경박해 보인답니다. 손님에게는 긴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걸요.” 그 말을 들은 손님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갔다.
두번째 손님이 들어왔다. 이발이 끝나고 거울을 본 손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말했다. “너무 짧게 자른 것 아닌가요?” 초보 이발사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이발사가 다시 거들며 말했다. “짧은 머리는 긴 머리보다 훨씬 경쾌하고 정직해 보인답니다.” 이번에도 손님은 매우 흡족한 기분으로 돌아갔다.
세번째 손님이 왔다. 이발이 끝나고 거울을 본 손님은 머리 모양은 무척 마음에 들어했지만, 막상 돈을 낼 때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것 같군.” 초보 이발사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발사가 나섰다. “머리 모양은 사람의 인상을 좌우 한답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머리 다듬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요.” 그러자 세번째 손님 역시 매우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초보 이발사는 자신을 가르쳐준 이발사에게 오늘 일에 대해서 여쭈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손해 보는 것도 있지. 또한 세상에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네. 나는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네에게 격려와 질책을 하고자 한 것뿐이라네.”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말하는 기술이다.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분은 아마 인격수양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비수를 들이대듯한 야당당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말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는 척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