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돈, 술, 노여움에서 벗어나려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울릉도 쾌속선 고장 등 잇단 사고는 이 시대에 성자 혼(聖者魂)이 죽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여 참회(懺悔)하고 있다.
왜 성자 혼이 죽어 있는 것일까? 사람을 평가하는데 세 가지 함정이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즐겨 읽는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키이소오(돈주머니), 코오소오(술잔), 카아소오(노여움)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사람의 인격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돈’을 줘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돈을 어떻게 쓰고 처리하는가 보고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돈 못지않게 사람을 흔드는 게 ‘술’이다. 사람들은 술에 좌우되어 숱한 일이 생기고 사고를 저지른다. 술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많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그 후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한다.
셋째,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엄청난 위해와 중죄를 뒤집어 쓸 때에도 과연 노여움을 다스릴 수 있을까? 그야말로 성자 혼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극복을 하지 못하고 폭발을 하고 말 것이다.
돈과 술과 노여움! 이 세 가지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성자이고 군자(君子)다. 마군(魔軍)이가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 사용하는 네 마디 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말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사람을 함정에 몰아넣는다. 큰 물고기도 작은 미끼에 걸려드는 것이다. 둘은 “딱 한 번인데 뭘”이라는 말. 마군이는 항상 ‘딱 한번’이라는 말을 유혹의 무기로 사용한다.
셋은 “너는 아직 젊어”라는 말이다. 젊음은 마냥 잘못을 합리화시키기 아주 쉽다. “젊어서 한때 죄 저질러 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 그러니까 젊음이 좋은 것이지!” 마군이는 젊은 시절 내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이 유혹에 넘어가 젊은 시절을 허송하고 후회의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청춘을 낭비한 죄, 그보다 더 큰 죄는 없을 터다. 넷은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뭘”이라는 말이다. 진리는 우리에게 ‘도덕 문(道德門)’으로 들어가라 한다. ‘도덕 문’은 군중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뜻하는 것이다. 인생은 한순간 결단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대도정법의 수행, 결단은 성공의 절반이다.
바로 이 마군이의 네 가지 유혹에 넘어가면 성자 혼이 무너지고 이 사회에는 암흑이 찾아오는 것이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등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더 나은 자아확립을 위해서는 사회 속의 개인을 인정해야 하며, 사회 속에 자신을 적절한 곳에 배치할 줄 알아야 한다. 니체가 말한 ‘노예적인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사회가 존재하기에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결코 성자 혼은 되살아 날 수 없다.
고해성사(告解聖事)를 지키기 위해 25년간 유배를 감수한 신부님이 계셨다. 1899년 프랑스의 한 성당에서 어느 신자가 성당 건축비를 헌납하기 위해 뒤믈린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사제관 문지기가 망치로 그를 죽인 뒤 돈을 빼앗았다. 문지기는 피 묻은 망치를 뒤믈린 신부의 책상 서랍에 넣고 신부가 돌아오자 고해성사를 부탁했다.
“신부님 저는 방금 큰 죄를 지었으니 고해성사를 들어주십시오.” 문지기의 고해성사를 들어 준 뒤 자기 방에 들어와 보니 신자가 쓰러져 있었다. 신부는 문지기가 범인인 줄 알았지만 잠자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신부의 서랍에서 나온 피 묻은 망치와 문지기의 거짓 증언을 믿고 신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신부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라도 고해성사의 비밀을 누설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신부는 법정에서 ‘악마의 섬에 종신유배’라는 판결을 받았다. 악마의 섬은 심한 더위와 질병이 창궐하는 외딴 곳이었다. 신부는 그곳에서 평생 중노동을 하게 되었다.
25년이 흐른 어느 날, 파리 빈민촌에서 한 늙은 병자가 유언을 남겼다. “뒤믈린 신부님은 살인범이 아닙니다. 그 때 살인사건은 사제관 문지기였던 제가 저지른 것입니다. 제발 신부님을 성당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진실이 밝혀져 신부가 돌아왔을 때 신부를 욕하고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성당에 모였다. 그리고 신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뒤믈린 신부는 주름 가득한 얼굴에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무려 25년간 유배생활을 감수한 신부님이야 말로 성자 혼이 살아 있는 진정한 성자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