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된장의 오덕(五德)을 아시나요?
된장을 언제부터 먹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고구려가 장양(贓釀, 장담그기·술 빚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 제조를 잘 한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된장·간장을 담가 먹다가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장담그기 기술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조방법을 보면 먼저 메주콩을 불려 쪄서 메주를 쑤어 띄운 다음 소금물을 부어서 익힌다. 메주·물·소금의 비율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다르다. 음력 10월이나 동짓달에 진 메주를 쑨 다음 목침 모양으로 만들어 거죽이 약간 마르면 훈훈한 온돌방에서 메주 사이사이 볏짚을 놓아 띄운다. 30~40일쯤 지나면 겉을 깨끗이 씻어 말린 다음 소금물에 담가둔다. 담그는 달에 따라 소금 양을 달리하며 날씨가 더워질수록 양을 늘려야 장맛이 변하지 않는다.
간장을 떠낸 메주를 건져서 으깨면 노랗고 맛있는 햇된장이 된다. 장을 담글 때 장독에 금줄을 치고 고추와 숯을 장위에 띄우는데, 이것은 살균과 흡착효과가 있기 때문이지만 부정한 것을 막아주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다. 된장 종류는 재래식·개량식 된장 이외에 짧은 시간에 익혀 먹는 청국장·담북장·무장 ·보리장 등이 있다. 지역에 따라 독특한 제법이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된장에도 다섯 가지 덕(德)이 있다고 한다. 삶의 자세를 알려 주는 자연의 뜻인 셈이다.
첫째, 단심(丹心)이다.
결코 변치 않을 정성 어린 마음이 단심이다. 된장은 다른 음식과 섞여도 결코 자기 맛을 잃지 않는다. 제 맛을 잃지 않는 덕이 단심이다.
둘째, 항심(恒心)이다.
변함없이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이다. 된장은 오래 두어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셋째, 무심(無心)이다.
세속적인 욕망이나 가치 판단에서 벗어난 마음 상태다. 된장은 각종 병을 유발시키는 기름기를 없애준다. 이렇게 좋지 않은 기름기를 조건 없이 없애주는 덕이 된장의 무심이다.
넷째, 선심(善心)이다.
선심은 착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부처와 같은 자비스러운 마음이다. 된장은 매운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다섯째, 화심(和心)입니다.
화심은 화목한 마음으로 잘 지내자는 의미다. 인간이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된장은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룰 줄 안다.
된장의 오덕(五德)같이 곰삭은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휴학을 하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갈비집 일을 도운 지도 벌써 반년이 되어간다. 손님들에게 음식 나르는 일부터 불판 닦기, 술 취한 손님 비위 맞추기 등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어느 새 ‘갈비집 소녀’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일에 능숙해졌다. 하지만 얼마 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일이 있다. 그날 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그 와중에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더니 된장찌개가 되느냐고 물으셨다. ‘갈비 집에서 웬 된장찌개!’ 그런데 엄마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앉으시라고 하는 게 아닌가! 자리가 없어 다른 손님도 못 받을 지경인데, 메뉴에도 없는 된장찌개를 왜 받느냐고, 힘들어 죽겠다고 카운터로 가서는 엄마에게 막 화를 냈다. 그런데 엄마는 가만히 웃으실 뿐이었다.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앉아 메뉴판을 한참 보더니 달랑 천원짜리 공기 밥 하나를 시키셨다. 그냥 밥 좀 얻어 먹으로 왔다고 해도 드릴 텐데, 태연히 주문까지 하는 할머니를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그 할머니를 위해 따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반찬을 참 알뜰히도 챙겨 수북한 공기 밥과 함께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나가면서 공기 밥 값 천원을 내미셨는데, 엄마는 극구 사양하셨고, 할머니는 “음식 값도 안 받는 별 이상한 식당 다 있네!”하며 나가셨다. 그날 저녁 엄마가 나를 붙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반년 동안 일만 배웠지 삶은 배우지 못했구나 싶어 내가 아주 작아지는 것 같았다. “가영아! 남에게 베풀 수 있을 때 그렇게 대접해 드리고 싶었단다. 아무리 장사가 잘 돼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마음이 가난하면 다 쓸데없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