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구원파 교리가 뭐길래···

구원파(救援派)란 무엇인가요? 갑자기 구원파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원파가 이번 세월호 사건의 회사인 청해진해운과 관련이 있어서일 것이다. 구원파 뿌리는 영지주의(靈知主義)라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영지주의는 굉장히 연원이 길다. 기원후 1세기 이전에 이미 출현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에서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적인 지식 또는 그 지식 위에 형성된 종교체계를 주장하는 종교 사상이다. 시대와 문화권을 초월하여 수많은 단체와 종파를 형성하며 인류 역사를 지배해 왔다. 영지주의는 한마디로 “영(靈)은 선하고 육(肉)은 악하다.” 즉 인간을 영혼과 육체 두 가지를 지닌 존재로 볼 때 보이지 않는 부분인 영혼은 선하고 좋은 것이고, 보이는 육체는 더럽고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영지주의가 왜 위험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육체의 생명과 육체적 생명활동에 대한 경시(輕視)다. 예를 들면 성관계라는 것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부부 사이에 성관계는 좋은 것으로 가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며 다음 세대를 낳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성관계가 부부가 아닌 사이에 이루어지게 되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은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지주의 관점에서 보면 성은 육체의 결합이므로 더럽고 추악한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부부간의 성관계에도 무언가 거리낌과 창피함과 떳떳하지 못함을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성은 음습하고 무언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것으로 여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몸으로 하는 노동과 활동을 천하다고 여긴 것이 다 영지주의에 뿌리를 내린 생각이다. 영혼은 불멸하지만 육체는 죽어서 흙이 될 뿐이므로 천하다는 생각 역시 같다.

영지주의를 캐치프레이저로 내건 이단종파가 바로 구원파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 자체가 틀린 것이다. 세월호 선원들은 대부분 구원파의 열혈 신도들이었다는 보도다. 그들이 수많은 생명들을 배에 내버려둔 채 자기들끼리 먼저 빠져 나간데는 그들 종교의 이런 사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수 백명의 생명이 바다에 빠져 죽거나 혹은 그렇게 죽는다 해도 그들 중 구원파가 말하는 ‘구원의 조건’을 갖춘 자들은 어차피 영혼의 구원을 받을 건데 뭐가 문제인가 라고 여긴 것 아닌가 한다. 이런 사상은 현실세계에서 우리들이 목격했다시피 엄청난 범죄로 이어진다. 선원들이 승객을 구조하지 않고 버리고 달아난 게 그들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나 현실 세계에서는 얼마나 중대한 범죄로 나타났나 말이다.

며칠 전 유병언과 함께 구원파에서 일했던 정동섭 교수라는 분이 JTBC에 출연하여 증언한 것을 보았다. 세월호의 문제는 구원파와 긴밀한 관련이 있으며 청해진 해운의 직원 대부분이 구원파라고 이야기했다. 정 교수의 말에 의하면, 딕욕(Dick York)이라는 선교사가 1950~60년대 한국에 들어와 “정통 기독교에는 구원이 없다” “죄 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외친 데서부터 한국구원파가 생긴 것이라 했다. 바로 세모의 유병언과 박옥수 목사는 딕욕 선교사의 수제자였다고 한다.

구원파의 교리는 어떤가?

첫째, 육신을 부정한다.

그들은 육신을 악하다고 생각한다. 초대교회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육신을 악하게 보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들은 세상을 창조한 구약의 신을 열등한 신으로 보았고,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은 고등 하나님으로 보았다. 그들은 예수가 육신 아닌 영으로만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육신에 대한 부정은 두 가지 극단으로 이어진다.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기 때문에 육신을 죽여야 영이 자유함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영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육신은 더 이상 영과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육신은 아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구원은 깨달음이지 회개가 아니라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회개는 삶을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을 포함한다. 즉, 삶이 없다면 구원이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구원파는 언제 구원을 받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얻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삶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다.

셋째, 한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을 얻으면 다른 죄를 지어도 그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죽여도 상관이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이것이 구원파의 무서운 교리다. 기존 정통 기독교에서는 살인과 간음 도둑질 등을 크게 보고, 그런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원 파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로 인해 구원파는 삶에서 선이 드러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의 문(門)에 성리(性理)를 바탕하지 않은 종교는 모두 사교(邪敎)이거나 이단(異端)이다. 종교는 중선봉행(衆善奉行) 제악막작(諸惡莫作) 자정기의(自淨其意), 이 세 가지 가르침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진리를 확신해야 한다. 그 믿음이 바로 성리이고, 진정한 진리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열쇠다. 오도(誤導)된 종교, 사이비(似而非) 집단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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