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이 풍진 세상을 이기려면
천지에는 사시(四時)의 질서가 있다. 사람에게도 일생에 시기(時期)가 있다. 천지가 그 질서를 어기지 아니하므로 만물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거두는 차서(次序)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그 시기를 잃지 아니하여야 일생의 생활과 생사거래(生死去來)에 원만(圓滿)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유년기에는 문자를 배우게 한다. 장년기에는 도학(道學)을 배우며 제도사업(制度事業)에 노력한다. 노년기에는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 들어가서 세상의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다 여의고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연마하게 한다. 이것이 인생에 시기를 잃지 않고 노년을 맞이하는 휴양(休養)의 도다.
사람이 늙어 갈수록 고고하고 청결하며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 차서를 잊고 제멋대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천격(賤格)이다. 그리고 자기비하 속에 몸을 떤다. 정조시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자저실기>(自著實紀)를 보면, 노인의 다섯 가지 형벌(五刑)과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에 대해 논한 대목이 있다.
첫째, 다섯 가지 형벌(五刑)이다.
사람이 늙으면 어쩔 수 없이 다섯 가지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으니 목형(目刑)이요,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치형(齒刑)이며,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각형(脚刑)이요, 들어도 정확하지 않으니 이형(耳刑)이요, 그리고 여색(女色)을 보고도 아무 일렁임이 없는 궁형(宮刑)이다.
둘째, 다섯 가지 즐거움(五樂입)니다.
보이는 것이 또렷하지 않으니 눈을 감고 정신을 수양할 수 있고, 단단한 것을 씹을 힘이 없으니 연한 것을 씹어 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다리에 걸어갈 힘이 없으니 편안히 앉아 힘을 아낄 수 있고,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아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여색으로 망신을 당할 행동에서 저절로 멀어지니 목숨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이 ‘오락’은 승지(承旨) 여선덕(呂善德)이 ‘오형’에 관해 하는 말을 듣고 심노숭이 반격에 나선 말이라고 한다. 이른바 노인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닌가! 화를 복으로 돌리는 심노숭의 말은 일품이다. 생각을 한번 돌리자 그 많던 내 몸의 불행과 좌절이 더없는 행운과 기쁨으로 변한다. 눈을 감아 정신을 기르고, 가벼운 식사로 위장을 편안케 한다. 힘을 아껴 고요히 앉아 정신을 수양하며, 귀에 허튼소리를 들이지 않으니 마음이 요란하지 않다. 정욕을 거두어 장수의 기틀을 마련하니 몸이 쾌락하다.
그러면 다가오는 ‘오형’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휴양의 도는 어떤 것일까? 사람이 휴양기에 당하여는 생사에 대한 일과 정신통일이 가장 크고 긴요한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오직 수양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오락’을 누리는 방법이다.
첫째,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기어이 보려하지 말 것이요, 둘째, 귀에 들리지 않는 일은 기어이 들으려하지 말 것이요, 셋째, 보이고 들리는 일이라도 나에게 관계없는 일은 간섭하지 말 것이요, 넷째, 의식 용도를 자녀에게 맡긴 후 대우의 후박을 마음에 두지 말 것이요, 다섯째, 소싯적 일을 생각하여 스스로 한탄하는 생각을 두지 말 것이요, 여섯째, 재산이나 자녀나 그 밖의 관계있는 일에 착심을 두지 말 것이요, 일곱째, 과거나 현재나 원망스럽고 섭섭한 생각이 있으면 다 없앨 것이요, 여덟째, 자기의 과거에 대한 시비에 끌리지 말 것이요, 아홉째, 염불과 좌선, 기도, 경전공부를 부지런히 할 것이요, 열째, 무시선 무처선 공부에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같은 열 가지 휴양의 도를 끊임없이 계속하면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