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어처구니’를 아시나요?
맷돌의 손잡이, 즉 나무로 된 굽은 막대기가 어처구니다. 그리고 궁궐 지붕 위에 올려 홈을 파고 꼭 끼운 동물모양의 토우상(土偶像)도 어처구니라고 한다. 또 ‘없다’와 함께 쓰이는 말로 뜻밖이거나 한심해서 기가 막힘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 도처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문화·사회·국방·역사·종교 등 어느 한 구석도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준공한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국보 1호 숭례문의 부실공사문제는 보통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는 바늘 끝만한 요철(凹凸)도 없다. 12월 들어서도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내년 예산안 심의조차 못하고 법정기일을 넘길 모양이다. 얼마 전 중국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설정하고 우리의 ‘이어도’를 자기네 구역(區域)내로 편입해도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뒤 늦게라도 이어도·홍도·독도 상공까지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려 해도 중국이나 일본은 들은 척도 안한다. 진작 서둘러 설정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원전건설의 총체적 부정이다. 그 결과 엄동설한이 다가오는데 벌써부터 전력비상이 걸리는 모양이다. 도대체 전력행정을 모조리 도둑놈들 손에 맡겨놓은 느낌이다. 또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역사교과서의 꼴불견은 어찌 보아야 하는 것인가? 어찌 우리 역사를 두 갈래로 집필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나라 역사가 두 개란 말인가?
어처구니는 한자어의 요철 공(凹凸孔)에서 유래됐다. 요철 즉 들어가고 나옴과 공(孔), 즉 구멍의 합성어다. 손발이 척척 맞아 나오고 들어감이 물샐 틈 없이 돌아가도 힘든 세상에 어찌 어처구니 없이 국정을 이끌어 가려하나? 아마도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해 놓은 총체적 부실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 아닐까 한다.
맷돌은 ‘어처구니’가 있어야 곡식을 맷돌질할 수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돌덩이에 불과하다. 첫 출발을 시작할 때는 ‘꼼꼼히’ ‘완벽하게’ ‘국민의 복지와 행복’ 그리고 통 큰 대화합의 정치를 천명한 이 나라 지도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옛날에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에 왕이 직접 말을 타고 나와 진두지휘를 했다. 두 나라의 전력은 엇비슷했고, 그만큼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왕이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달리다가 갑자기 왕이 탄 말의 발굽이 빠진 것이다. 말은 힘차게 달리다가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왕은 땅으로 굴러 떨어졌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왕의 부상으로 전쟁에서 크게 패하였고 결국 나라를 거의 모두 빼앗길 지경이 됐다. ‘적당히’ 만든 작은 말발굽 때문이었다.
일부 기독교계의 막말은 우리를 슬픔에 잠기게 한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 지옥가게 된다는 폭언도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무엇을 믿든 안 믿든 선업(善業)을 쌓으면 천상(天上)에 나고, 악업(惡業)을 쌓으면 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신이나 또는 어떤 강력한 존재가 있어 벌주기보다는 우주의 법칙이 그런 것이다.
진리는 그렇게 옹졸하지 않다. 만약 자기를 믿고 따른다고 잘 대해주고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막 대한다면 도덕적인 인간만도 못한 형편없는 중생수준일 것이다. 조금만 수양이 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해도 그것이 옳다면 옳다고 인정하고, 유리해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한다. 진리가 그들이 말하는 존재와 같은 것이라면 믿고 따라야 할 존재가 아니라 싸워서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닐까?
기독교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진리를 알건 모르건, 예수님을 알건 모르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기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사랑을 실천했는가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분명히 되어있다. 진리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좀 더 확실한 사랑의 실천력을 갖추게 되어야 한다. 물론 불교를 믿음으로써 좀 더 강한 자비의 실천력을 갖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천사같이 착한 어린 아이가 일찍 죽어도 결국 지옥행을 면치 못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합리(合理)란 될 일이요 불합리(不合理)란 안 될 일이다. 될 일은 취하고 안 될 일은 벼려야 한다. 그것이 어처구니없게 돌아가는 부조리(不條理)를 제거하고 이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