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역경을 딛고 일어서야 진정한 승리자다”

“역경(逆境)과 곤궁(困窮)은 곧 호걸(豪傑)을 단련하는 하나의 도가니와 망치다”라는 글을 써놓은 것을 보았다. 옳은 말씀이다. 역경과 곤궁 없이 영웅호걸이 탄생할 리가 없다. 다만 능히 그 단련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아울러 유익할 것이며, 그 단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몸과 마음에 모두 손해가 되고 말 것이다.

역경이란 무엇인가? <맹자(孟子)> ‘고자하편(告子下篇)’에서 “하늘이 장차 큰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그 심지를 괴롭히고, 그 근골(筋骨)을 피로케 하고, 그 체부(體膚)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곤핍(困乏)하게 하고, 행하고자 하는 바를 역행(逆行)시켜 고난을 견디는 정신력을 시험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은 쇠의 시금석(試金石)이며, 역경은 사람의 시금석”인 것이다. 반대로 순경(順境)은 순풍 속에서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사안일해질 때 달이 차면 기울듯이 역경으로 곤두박질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말이 있다. “버섯과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생겨나 사람이 없어도 향기를 풍긴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는 말이다. 군자는 역경에 처해도 뜻과 절개를 지닌다는 비유다. 그리고 <채근담(菜根談)> 99장에도 ‘역경과 순경’에 관한 말이 나온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는 주위가 모두 침(針)과 약(藥)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절조(節操)와 행실을 닦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눈앞이 모두 칼과 창이어서 살을 말리고 뼈를 깎아도 깨닫지 못한다.”

한 여행객이 남아프리카 초원에서 겪은 일이다. 여우를 쫓다보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중 하나에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고 다른 길에는 여행객과 함께 온 안내인이 천천히 여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여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안내인에게 달려들었고, 길을 뚫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희한한 일이네요.” 여우가 도망치고 나서 여행객이 안내인에게 물었다. “아니, 왜 평탄한 길을 두고 사람이 있는 위험한 길로 도망가죠?” 그러자 안내인이 웃으면서 설명했다. “여우들은 아주 영리하거든요. 그들은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길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려운 길을 뚫고 도망간 겁니다.”

얼마나 여우가 현명한가? 평탄한 길에는 반드시 복병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안 것이다. 차라리 역경을 돌파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안내인이 버티고 있는 위험을 돌파한 것이다. ‘궁 즉 통(窮卽通)’이라 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도리어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역경 가운데서 오히려 보리도(菩提道)를 얻으신 것이다.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을 견뎌내지 못하면 경계가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法王)의 큰 보배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루라!” 이 거룩한 말씀은 늘 내 마음을 흠뻑 적셔준다. 나날이 행복하지만은 않은 일상을 도리어 더욱 값진 행복으로 되돌려 주는 말씀이다. 우리는 나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일상이 늘 탄탄대로이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역경이 올 때 한없이 괴로워하고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며 때로는 크게 좌절하기도, 포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역경이 바로 부처이며, 괴로움의 경계가 바로 부처되는 일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은 사실 자연스런 인연의 흐름에 불과하다. 이러한 자연스런 변화나 인연의 나타남을 ‘역경’이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바로 마장(魔障)인 것이다. 역경의 나타남 또한 미리 지어둔 업식(業識)의 과보일 뿐이다. 자신이 지어 둔 악한 행위에 대한 정당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기에 중생의 경계에서 ‘역경’은 괴로움의 대상이지만, 수행자에게 ‘역경’은 마음을 다스릴 재료, 즉 수행의 재료다. 지은 바 업식을 닦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막힌다고 생각될 때가 뚫릴 기회이며, 잘 된다고 순경(順境)에 안주할 때가 가장 막히기 쉬울 때다. 그 마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역경도 순경이 될 수 있으며 순경도 역경이 될 수 있다.

깨침을 구하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역경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마장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역경이나 마장은 부처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역경과 나를 둘로 보지 않고 내 안에서 녹일 수 있어야 한다. 당당히 떳떳이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역경을 미워 할 필요도 가슴 아파 하거나 괴로워 할 필요도 없다. 역경을 견디어 보지 못한 사람은 순경이 오더라도 바로 맞아들일 수 없다. 역경과 순경은 그 뿌리가 하나이기에 역경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자만이 순경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경계라는 것은 아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우리의 삶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우리 앞에 나타난 그 어떤 경계라도 그것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고, 그 경계를 통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공부길일 뿐이다. 역경과 순경이야말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가장 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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