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은 “서로 등 긁어주는 사이”…윤관과 오연총처럼

사돈의 유래을 낳은 것으로 전해지는 윤관과 오연총 <출처 램프쿡>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돈(査頓)관계는 왠지 친근하면서도 불편한 관계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원래 사돈은 ‘서로 등을 긁어주는 사이’란 말로 굉장히 가까운 관계라고 한다.

필자는 사돈 두 분이 아주 멀리 뉴욕과 광주에 사시기 때문에 등도 못 긁어드려서 항시 송구한 마음이다.

탈무드에 세 자매 얘기가 나온다. 이스라엘의 어느 마을에 딸만 셋인 부자가 살고 있었다. 세 자매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뛰어난 미인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씩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맏딸은 매우 게을렀고, 차녀는 도벽이 있어 남의 물건에 손을 자주 댔다.

막내딸은 셋 중에 미모가 가장 출중했는데 남들 흉보기를 너무너무 즐겨했다. 마침 건너 마을의 부자에게 아들이 셋 있었다. 부자는 세 자매의 미모를 알고 그룹청혼을 넣었다. 세 자매 부친은 흡족한 청혼이지만 세 딸의 단점이 문제라 사돈될 사람을 미리 만나 세 딸의 단점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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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없습니다. 게으르면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게 하인들을 고용해 주고, 도벽이야 갖고 싶은 것은 모두 주면 되지요. 헐뜯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헐뜯을 거리야 미리 없애면 문제없습니다. 그 정도 미모라면 그런 약점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이렇게 합의하에 세 아들과 합동결혼이 이루어졌다. 몇 년 후에 딸들의 결혼생활이 궁금해진 아버지는 사돈을 찾았다. 맏딸은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하인들을 부리는 결혼생활을 만족해했다. 둘째는 도벽이 발동하기 전에 모든 물품이 충족되니 이 또한 만족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막내딸은 아버지를 만나자마자 시아버지 험담을 늘어놓았다. “시아버님은 이상해. 나만 미워하고 언니들 둘에겐 친절한데, 왜 그러시는지 정말 꼴도 보기 싫어요.” 셋째 딸의 험담에 친정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왔다고 변할까? 시아버지까지 헐뜯다니’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남의 험담하기를 즐기면 어떤 상황에 놓이든 상대의 결점이 먼저 눈에 띄게 마련이다. 이렇게 사돈 맺기는 참으로 어렵다. 딸 가진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전정 긍긍이다. 딸 가진 죄인 심정이다. 필자는 딸만 둘이다. 그래도 열 아들 둔 것보다 훨씬 나은 효녀들이다.

사돈(査頓)이라는 말은 고려 예종(재위 1105~1122) 때, 명장 윤관(尹瓘, 1040~1111)과 문신 오연총(吳延寵, 1055~1116)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1107년(예종2)에 윤관이 원수(元帥)가 되고, 오연총이 부원수가 되어 17만 대병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였다.

이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아홉 개 성을 쌓고 재침(再侵)을 평정한 다음 개선하였다. 그 공로로 윤관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고, 오연총은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두 사람은 지금의 길주인 웅주성(雄州城) 최전선에서 생사를 같이 할 만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자녀를 결혼까지 시켜 사돈관계를 맺게 되었고, 함께 대신의 지위에도 올랐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나 늙어서는 시내를 가운데 두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종종 만나 고생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관 댁에서 술을 담갔는데 잘 익어서 사돈 오연총과 한 잔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하인에게 술을 지워 오연총 집을 방문하려고 가던 중 냇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내린 비로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냇물 건너편에서 사돈 오연총도 하인에게 무엇을 지워 가지고 오다가 윤관이 물가에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물었다.

“대감, 어디를 가시려는 중이오?” “술이 잘 익어 대감과 한 잔 나누려고 나섰는데 물이 많아서 이렇게 서 있는 중이오.” 오연총도 마침 잘 익은 술을 가지고 윤관을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피차 술을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환담을 주고받다가 오연총이 윤관에게 말했다.

“잠시 정담을 나누기는 했지만 술을 한 잔 나누지 못하는 것이 정말 유감이군요.” 이에 윤관이 웃으며 오연총을 향해 말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가 가지고 온 술은 대감이 가지고 온 술로 알고, 대감이 가지고 온 술 또한 내가 가지고 온 술로 아시고 한 잔 합시다. 서로 권하면 역시 ‘한 잔 듭시다’ 하면서 술을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연총도 그 말에 흔쾌히 찬동했다. 이렇게 해서 ‘나무 등걸’(査)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편에서 ‘한 잔 드시오.’하며 한 잔 들고 ‘머리를 숙이면’(頓首) 저편에서 ‘한 잔 드시오.’ 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반복하기를 거듭하여 가져간 술을 다 마시고 돌아왔다.

이렇게 ‘사돈’(査頓)이라는 말은 서로 나무 등거리에 앉아 머리 숙이며 술이나 마시자는 뜻의 아주 정겨운 말이다.

혹은 필자처럼 멀리 떨어져 계시는 사돈들을 위해 마음으로나마 ‘서로 등을 긁어 주고, 잘 익은 술을 서로 권 커니 잣 커니’ 하며 무병장수를 빌어드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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