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에서 문재인까지 영욕의 청와대, 그리고 윤석열의 ‘용산시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를 공식화하면서 청와대와 북한산을 완전 개방을 하는 모양새다. 70여년간 역대 대통령과 영욕의 세월을 함께 한 청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윤 당선인은 “5월10일 대통령취임식을 마치고 바로 국방부에서 근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본관, 영빈관을 비롯해 최고 정원이라 불리는 녹지원과 상춘재를 모두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릴 것”이라 했다.
청와대는 ‘구중궁궐’로 비유되어 왔으며,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푸른 기와집’을 의미하는 청와대(靑瓦臺)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 때부터였다. 원래 조선시대에 경복궁이 창건되며 후원으로 쓰인 자리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이 부지에 총독 관사를 지어 사용하던 것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경무대’라고 이름을 붙여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했다. 이것을 윤보선 전 대통령은 1960년 당시 4·19 혁명 분위기 속에 경무대가 지닌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이름을 ‘청와대’로 변경했다.
그러다가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경내 500m 앞까지 침투한 후, 청와대 북한산 산길은 폐쇄됐다. 이제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900년 넘는 영욕(榮辱)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청와대 터에 궁궐을 지은 고려가 지금의 서울 강북에 남경(南京)을 설치한 것은 1068년(문종 22년)의 일로, <고려사>에는 “남경에 신궁(新宮)을 세웠다”고 기록됐다. 하지만 이때의 신궁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36년이 지나 15대 왕 숙종(재위 1095~1105) 때 다시 남경을 설치해 천도 계획을 세우고 1104년 남경 궁궐을 완성했다.
그리고 <고려사>에는 숙종이 대신과 내관을 거느리고 이곳을 찾아 10여일 머물렀다고 기록해 놓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94년(태조 3년) 천도를 위해 한양을 답사한 권중화 등이 올린 상소에 “고려 숙종 때 경영했던 궁궐의 옛터가 너무 좁아 그 남쪽에 궁궐(경복궁)터를 정했다”고 했다.
‘용산시대’를 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결정은 엄청난 파격이다. 윤 당선자는 3월 20일 “한번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새 정부는 대통령 집무 공간 변경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와는 확실한 차별점을 갖게 되었다. 윤 정부는 새로운 용산시대의 첫 정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시각도 있다.
반대한 분들의 견해는 “어떤 연유로 지금의 청와대를 단 하루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납득 안 된다”는 것과 “우선 모든 조건이 완비된 청와대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한다.
또한 “지금처럼 국가안보 시스템의 핵심인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이전하는 데 따른 대책도 없이, 갑자기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바꾸는 데 대한 의견 수렴도 없이, 심지어는 예산 편성도 없이, 그냥 밀어붙이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이런 의견도 있다. “용산을 포함하여 차제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으로 이전하는 안까지 충분한 검토를 시키고 현 정부에서 검토했던 내용도 참고하고 정식으로 예산도 편성해 국가 중대사에 걸맞는 집행계획을 세워야 한다”거나 “1년 정도 후에 국민의 새로운 기대감 속에 이전을 완료하면 될 일”이라는 주장 등이다.
물론 이제 이전 비용도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고, 벌써 국방부는 이사를 시작하고 있다.
어찌 되었던 그간 여러 대통령이 실현하지 못했던 청와대 이전을 단칼에 실현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쾌도난마(快刀亂麻)식 결단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왕 영욕의 청와대 이전이 확정된 이상 온 국민이 성원하고 지지하면 참으로 좋겠다.
한편 용산 일대는 ‘1882년 임오군란 때부터 일본군의 공관 수비대가 용산에 주둔하였던 곳이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조선군 주차사령부, 일본군 전시사령부, 일본군 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라 불가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무려면 풍수에 현혹되어 집무실을 이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이제 결정된 이상 한뜻 한마음으로 집무실 이전이 성공되도록 협력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