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 마리안 앤더슨 “작은 선행이 운명을 바꾼다”
세계 최초 흑인 오페라 가수이자 미국의 위대한 여자성악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 이야기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들의 영혼을 울렸다.
1955년 미국, 쉰살이 넘은 나이에 흑인 가수로는 처음 메트로폴리탄에서 영감있는 노래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에서 어려서부터 성악가의 소질을 키워 나갔다.
자신이 노래하던 교회 성가대에서 모아 준 돈으로 처음 성악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후에 성악가 대회에서 30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한다. 냉대와 가난과 인종차별의 멸시를 이기고 미국 성악계의 찬란한 별로 여러 차례 세계 각국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한번은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처와 영국여왕을 위한 독창회를 가졌다. 성공리에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기자가 물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늙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남의 집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관객들의 기립박수도, 온갖 영예로운 상도 아니었다.
성악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지만, 1939년 미국 애국여성회는 마리아 앤더슨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워싱턴 DC에 있는 컨스티듀션홀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취소한다는 통보를 하였다. 그녀는 그 처사에 대한 항의로 링컨기념관 광장에서 연주를 강행하였고, 7만5천명의 청중이 운집하였다.
그 후에도 그녀는 연주여행 도중 스케줄이 잡힌 호텔에서 투숙을 거부당하기도 했고, 받아주는 식당을 찾지 못해 식사를 거르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사람들을 돕고 웃음을 잃지 않은 그녀는 어디서나 인간미가 넘쳤다.
연주여행에서 만난 한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그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사인을 하며 앤더슨이 학생에게 “오늘 저녁 음악회에 오실 거죠?”라고 물었다. 학생은 돈이 없어 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 말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베마리아’를 불러주었다.
그녀는 항상 가난했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었다. 1953년 한국전쟁 때, 미군들을 위문하기 위해 그녀가 부산을 찾은 적이 있다. 피난지 부산에서 마땅한 연주회장을 찾기 어려웠다. 이에 앤더슨은 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피난민들을 위해 노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공연을 갖게 되었을 때의 일화다. 가난한 한 흑인 소녀가 새벽부터 호텔에서 잡일을 하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만 호텔의 구석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소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 앞에 한 중년의 흑인 여성이 서 있었다. 그 여성은 소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많이 외로워 보이는구나!”
그러자 소녀가 대답했다. “네, 오늘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리안 앤더슨의 공연이 근처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일을 해야 했기에 갈 수 없었어요.” 그러자 여성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소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이, 마리안 앤더슨이군요.” 그녀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박수와 춤으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당신이 부르는 노래 한 소절이, 당신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당신이 행동하는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