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화만발’ 카페지기 15년 이제 떠나렵니다
원불교 수행법에 ‘삼학수행(三學修行)’이라는 것이 있다. 수행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음을 요란하지 않게, 어리석지 않게, 그르지 않게’ 쓰는 법이다. 이렇게 간단한 법을 수행해 ‘마음을 마음대로’ 쓰는 경지에 이르신 분이 바로 부처요, 내 마음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을 중생(衆生)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공부’가 바로 ‘용심법(用心法)’이다. 흔히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줄이면 <반야심경>(般若心經)이고, 반야심경 260자를 다시 5자로 줄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다. 그리고 일체유심조를 한 글자로 줄이면 마음, 즉 심(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마음이 곧 경전(經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육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과 죽음, 질병과 건강,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마음)임이 꾸준한 연구를 통하여 밝혀지고 있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인간은 육체를 위해서 먹었고, 육체를 위해서 입었다.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 집이 필요했다. 인간은 육체를 중심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사 문제와 질병을 지배하는 정신(마음)의 속성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버드대의 월터 캐논 박사는 35년 전에 우리의 정서(마음상태)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발견하고 깊이 연구했다. 그 후 많은 대학병원에서 신체적 질병 치료에 정서적인 면을 적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마음이 생각하면 육체가 생각하고, 육체의 생각은 마음의 생각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외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좋으면 건강한 것이고, 나쁘면 질병으로 보는 것이다. 질병은 왜곡된 생각의 결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질병은 어두운 마음의 그림자인 것이다. 건전한 마음은 건강한 육체로 나타나고 부정적인 마음은 불건전한 육체로 나타난다. 흔히들 ‘생각’ 하면 머리로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몸 전체로 생각한다. 한 가지를 생각하는데 수백억개의 세포가 동원되어 서로 협력해야 한다.
모든 세포는 마음에 미세한 스파크 작용을 일으킨다. 세포가 건강하지 않으면 건전한 생각을 할 수 없다. 모든 마음의 병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은 죄악을 낳고 죄악은 사망을 낳는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것을 우리는 수행 또는 마음공부, 용심법이라 한다.
어떤 환자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건전하게 바꾸어야 한다. 근심을 기쁨으로, 패배감을 자신감으로, 열등의식을 승리감으로, 후퇴하는 것에서 전진함으로, 증오에서 사랑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다스려야 한다.
그 방법이 원불교의 삼학수행인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 △작업취사(作業取捨)다. 건전한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몸의 기존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바뀌고, 각 세포의 면역력이 강화되며, 결국 질병이 떠난다. 마음이 바르고 고요하면 건강한 신체활동이 활성화되고,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필자는 당뇨병으로 40년이라는 세월을 고생하고 있다. 그 여파로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고, 이제는 눈도 어두워 잘 볼 수도 없으며, 삶의 질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도 건전하게 했고, 안빈낙도 생활도 하고 있으며,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젊은 시절 나의 생활이 천방지축이었고, 그것도 아니라면 전생의 업보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 업보를 나는 달게 받을 것이다. 그래서 15년 동안 열정을 다했던 ‘덕화만발’을 이제는 나보다 유능한 분에게 ‘카페지기’ 직을 양도하려 한다. 그리고 조용히 물러나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업(罪業)을 마음공부, 삼학수행, 용심법으로 씻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