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화만발’ 카페지기 15년, 추억과 꿈
“마음은 청춘”이라고 큰소리치던 나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눈도 침침해지고, 기력도 시원치 않아 이제 후진에게 <덕화만발> 카페지기 역할을 넘기고 슬슬 뒷전으로 물러나 앉아야 할 것 같다.
이미 원불교 여의도교당에서는 뒤로 물러나 앉아 조용히 미소 지으며 후진들 하는 것에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조윤제 인문고전연구가는 이번에 오랫동안 기고해 오던 <농민신문>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뛰어난 후배가 등장하면 그땐 자리 물려주는 것이 순리다. 끝까지 버티고 집착하면 안 된다. 그간 사랑해준 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당(唐)나라 후기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탁월한 재능으로 동시대 시인 백거이에게서 “죽어서 너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극찬을 들었다. 이상은은 교분이 두터웠던 한첨의 아들 한동랑을 위해 칠언고시(七言古詩)를 지었다.
“오동나무 꽃 가득한 산길에 어린 봉황이 늙은 봉황보다 더 청아한 소리를 내는구나.”(桐花萬里丹山路 雛鳳淸於老鳳聲)
이 시는 열살 때부터 훌륭한 시를 지은 한동랑이 아버지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인정하며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세상 이치를 담고 있다. 온 산을 울리며 노래했던 봉황도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더 청아한 소리를 내는 어린 봉황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어린 봉황(雛鳳·추봉)은 훌륭한 젊은이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은 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존재라고 해도 언젠가는 더 뛰어난 후배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직접 가르쳤든 혹은 다른 곳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든,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인생 순리다.
어느 곳에서든 그것이 물 흐르듯 이뤄져야 세상이 조화롭게 흘러간다. 명대(明代) 후기에 이루어진 ‘명구·명언집’인 <고금현문>(古今顯文)에도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재촉하고, 세상의 새 사람은 옛 사람을 쫓는다”(江中後浪催前浪 世上新人)는 말이 있다.
군자를 자처했던 옛 선비들은 “나아가기는 어렵고 물러나기는 쉽다”며 스스로 자중했다. 설혹 주위 강권으로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부족함을 깨닫거나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있으면 아낌없이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다. 진정한 실력자는 최고 자리에 있을 때 흔쾌히 자기 자리를 훌륭한 후배에게 물려주고 떠난다. 후배 실력을 인정하고, 그가 잘할 수 있도록 도우며, 그의 앞길을 축복하며 떠나기에 그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은 나라도 사회도 크고 작은 조직도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기인 것 같다.
<덕화만발>을 개설한 지 근 15년이 가까워온다. 오는 10월 25일을 이돈희(임마누엘)님이 앞장서 <덕화만발의 날>로 제정해 놓았다. 이제 제가 물러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 날지도 모른다.
원불교 정산(鼎山) 종사는 “선진 후진의 모든 동지가 서로 서로 업어서라도 받들고 반기라”고 했다. 어떠한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서로 감싸주고, 용서하며, 이끌어 주어서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덕화만발>의 대업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참으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