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박목월과 ‘완화삼’ 조지훈의 ‘우정 만리’
꿈 많던 고교시절 즐겨 외우던 박목월의 시 ‘나그네’가 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록파(靑鹿派) 시인 박목월(朴木月, 1916~1976)과 조지훈(趙芝薰, 1921~1968)은 다섯살 차이다. 목월이 다섯 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친구다. 지훈은 복사꽃이 피어 있는데도 진눈깨비를 뿌리는 희한한 어느 흐드러진 봄날, 목월을 찾아 영양에서 경주로 내려간다.
둘은 석굴암을 오르기 위해 불국사에 들러 가지고 온 찬 술을 나무 그늘에서 나눠 마시고, 그 취기로 지훈이 한기가 들어 재채기를 한다. 형뻘인 목월은 입고 있던 봄 외투를 벗어 오한으로 떨고 있는 지훈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지훈은 보름 동안 경주에 머물면서 목월과 함께 안강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독락당에 방 하나를 얻어 그동안 밀려있던 이야기 보따리 끈을 풀어 헤쳤다.
세상에 관한, 시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진로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경주 여행을 마치고 집이 있는 영양 주실마을로 돌아간 지훈은 ‘완화삼’을 써 ‘목월에게’란 부제(副題)를 달아 경주로 보냈다. 지훈은 산새 소리, 유장한 강 물길, 저녁노을, 낙화의 슬픔 등 애잔한 이미지를 안주할 곳 없는 나그네와 결합시켜 유랑과 한과 애수가 가미된 명시로 탄생시켰다.
그때 지훈이 읊은 시가 ‘완화삼’이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생각해 보면 지훈이 목월이란 친구가 없었다면 이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친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고 옴’이 친구 사이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한 형태로 이뤄질 때, 그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목월과 지훈에게서 완성된 시의 주고받음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빛나는 금자탑으로 기록될 것이다.
목월은 지훈에게서 완화삼이란 시를 받고, 바로 엎드려 쓴 시가 바로 나그네다. 목월은 이 시의 표제 옆에 ‘술 익는 마을의 저녁노을이여’-지훈에게- 라고 쓰고, 이를 주실마을로 올려 보냈다.
지훈이 보내온 시의 답시로 쓰인 나그네는 완화삼의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절제되고 표백된 간결미는 아주 특출하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나라 낭만시의 최고’라는 칭송을 받는다. 목월에게 지훈이라는 친구가 없었다면, 이 시 역시 어찌 탄생했을까?
그래서 도반(道伴)과 벗은 위대하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도반이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꽃과 같은’, ‘저울과 같은’, ‘산과 같은’ 세 유형이다.
첫째, 꽃과 같은 도반이나 친구는 지고 나면 돌아보지 않고, 둘째, 저울과 같은 도반과 친구는 이익을 먼저 따져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 셋째, 산과 같은 도반과 친구는 든든하고, 한결같아 변하지 않는다.
도반이란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으로서, 도(道)로써 사귄 친구다. 그리고 친구는 고락을 함께하는 벗이다. 이렇게 우리가 박목월과 조지훈 같은 산과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산과 같은 도반이나 친구를 만나려면 나부터 산과 같은 도반이나 벗이 되어야 한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에는 이 세상에서 참으로 공경하고 따라가야 할 사람으로 일곱 종류의 사람을 밝히고 있다.
1)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行慈)
2) 연민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行悲)
3)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行喜)
4) 다른 이를 보호하고 감싸주는 사람(行護)
5) 마음을 비우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行空)
6) 부질없는 모양에 걸리지 않는 사람(行無相)
7)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行無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