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이별의 노래’와 중국 ‘전족’에 깔린 남녀 ‘불평등’

중국 여인들 잔혹사 ‘전족’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첩(妾)’의 사전적인 뜻은 ‘정식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다. 한자의 자원(字源)을 보면 ‘辛’과 ‘女’가 결합되어 있다. ‘辛’은 오늘날에는 ‘매울신’이지만 당초에는 ‘종(노예)’의 이마에 먹실을 넣는 바늘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몸종이라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妾’은 ‘죄를 짓거나 전쟁포로로 끌려와 사역을 당하는 여자’라는 뜻이었다.

첩은 남편 앞에서 아내가 자신을 낮춰 부르는 의미로도 쓰였다. 역사 드라마 대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첩(小妾)’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아내가 아닌’ 첩과 같은 뜻으로 ‘소실(小室)’, ‘측실(側室)’, ‘작은집’, ‘작은마누라’, ‘시앗’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부일처제’가 정착됐으나 본처 이외에 다른 여자, 즉 첩을 들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관습이었다. 그러나 첩이나 첩에게서 낳은 자식, 즉 ‘서자(庶子)’ 또는 ‘서얼(庶孼)’은 신분상 불이익이 컸다.

속담에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남편이 시앗을 보면, 여인들이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1952년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시인이 제자인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가정과 명예. 그리고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자리도 버리고 빈손으로 홀연히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목월의 아내는 그들이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부인은 남편과 함께 있는 여인을 마주한 후, 살아가는 궁핍한 모습을 보고 “힘들고 어렵지 않으냐”며 돈 봉투와 두 사람의 겨울옷을 내밀고 아내는 서울로 올라온다.

목월과 여인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이 아파 그만 사랑을 끝내고 헤어지기로 한 후, 목월은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시를 지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준다. 바로 이 ‘이별의 노래’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 아 ~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 아 ~ 너도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 ~ 아 ~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서울로 올라온 목월은 양심이 찔렸는지 바로 아내와 아들·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효자동에서 두달 동안 하숙생활을 하다가 귀가했다고 한다. 목월은 평생토록 그 여인의 사랑을 시 속에 심다가 붓을 놓고 간다.

옛날 중국인들은 여자들을 매우 귀하게 여겼나 보다. 아내를 얻으면 예쁘게 단장 시켜놓고 인형공주처럼 집안에만 있게 했다. 외부에 나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전족(纏足)까지 시켰다.

전족이란 여자의 발을 작게 하려는 중국 특유의 전통으로 아이가 너댓살이 되면 발에 긴 천을 감아 엄지발가락만 남기고 모두 동여매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풍속이다.

전족은 당(唐)나라 말엽에 시작하여 한창 유행하다가 청조(淸朝)의 강희제 시대에 와서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하니 족히 2백년 이상 이어온 악습이다. 그 후 19세기 초 왕정체제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되면서 전족의 해방을 부르짖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 끝내 이 폐습은 사라졌다.

중국의 그러한 전통은 남성 우월사상의 극치로서 여자를 독점 예속시키려는 발상에서 기인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가느다란 허리와 전족을 한 여인을 으뜸가는 미인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니 그 얼마나 잔인한 처사인가? 전족을 하면 몸을 받쳐주는 발이 제대로 발육하지 못해 뛰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리걸음처럼 뒤뚱거리며 걷게 된다.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화교(華僑) 여자들은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거의 다 ‘전족’을 해서 우리 꼬마들한테는 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이렇게 발의 기능을 억제당한 중국여인은 절로 바깥일을 할 수 없고 집안 일마저 자유롭지 못해 집 안팎 모든 일은 남자 몫으로 여인들은 그냥 장식용 꽃으로만 있게 한 것 같다.

시대가 변하여 전족이란 말은 아득한 옛날일로만 여겨지고 있다. 지금 한국에 오는 ‘유커(遊客)’ 여인들을 보면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참으로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여성들은 수천년 길고도 어두웠던 암흑 같은 터널을 빠져나와 희망이 보이는 터널의 끝에 있는 밝은 빛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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