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1조달러 퍼부은 미국 제압한 ‘베트남영웅’ 지압 장군

‘붉은 나폴레옹’ 보구엔 지압(武元甲) 원수가 지난 9월 102세로 서거하였다. 지압은 195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 1960-70년대의 베트남전쟁에서 미군, 1979년 중월전쟁에서 중국군을 물리친 영웅이었다. 고등학교 역사선생이었던 지압은 정규 군사교육을 받은 바 없었으나 세계 강대국의 내로라하는 장군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그의 전술원칙은 단 하나, “적이 원치 않는 때와, 장소에서, 적이 원치 않는 방법으로 싸운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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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베트남전쟁은 일본 패망 후 다시 주인으로 들어온 프랑스를 물리치기 위해 호치민(胡志明)이 벌인 반식민지투쟁으로 1945년 9월 시작되었다. 1954년에 이르러 게릴라와의 장기소모전에 지친 프랑스군은 대부대의 월맹 정규군을 유인하여 격멸하기로 전략을 세우고 라오스와의 경계에 있는 고립된 디엔 비엔 푸를 그 전장으로 선택하였다. 길이 16km, 폭 10km의 디엔 비엔 푸 골짜기에는 8개 대대의 프랑스 군이 집결, 철저히 요새화하였다. 1954년 3월 월맹군의 포위공격이 시작되었다. 프랑스군은 최초 우세한 화력과 적극적인 공중지원으로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나, 우기가 시작되자 공중지원이 부진해진데다 생명선인 비행장을 탈취당했고 월맹군의 포위망은 더욱 좁혀져왔다. 1954년 5월 8일, 마침내 월맹군은 프랑스군 사주방위선(四周防禦線) 주위에 판 땅굴을 통해 진내(陣內)로 돌입하였다. 프랑스군은 상상도 못한 전법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노기 마레스케의 2군은 여순 요새를 득의(得意)의 보병돌격으로 공격하다가 러시아군 기관총의 십자포화에 걸려 수없이 죽었다. 노기는 전법을 바꾸어 땅굴을 파서 요새로 진입하는 전법으로 여순 요새를 함락시켰다. 땅굴은 서양에서도 고대로부터 간혹 사용된 전법이고 일차대전에서는 전선이 교착되어 참호전이 되었지만, 당시 프랑스군은 디엔 비엔 푸 주위에 땅굴을 파고 진내로 돌입한다는 지압의 전법은 상상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 1954년 7월 20일 제네바 협정으로 17도선 이북은 월맹에 넘겨주고 이남에 월남을 성립시켰으나 이 역시 1975년 4월 패망하여 월남이 통일되었다. 디엔 비엔 푸의 실함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한 데 이어 동양인이 두 번째로 서양 군사력을 패배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디엔 비엔 푸의 실함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포기로 이어졌고, 이것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민제국의 붕괴로 이어졌다.?

<서울의 동북>을 쓴 임형주는 호지명이 죽었을 때 월남 여자들이 모두 검은 상복을 입는 것을 보고 ‘아,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구나!’고 직감하였다고 한다. 1990년대 초 한-베트남국방차관 회담에서 월맹군 대좌, 소장 등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들은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에 대하여 “그것은 역사다”고 담담하게 답하면서, 오히려 한국과 베트남은 수천년 동안 중국의 침략과 압제를 받은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서로 협조해나자고 제의하였다. 주위의 다문화가정 가운데서도 베트남 출신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 마땅할 줄 안다.

하노이와 구찌 터넬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호지민시(구 사이공)를?보니 전쟁지도본부 바로 위에 마담 고딘 누와 장군들이 즐기던 까페와 무도장이 있는 것이 아닌가!?미국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 1조 달러를 퍼부어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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