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시선] 말레이시아, ‘중국계’ 학생 감소 이유
[아시아의 시선] 한 주간 주요 이슈들에 대한 아시아 주요언론의 사설을 요약 게재합니다.
말레이시아 <The Star> (7월25일자 사설)
우수 학생 상처 주는 불투명한 대학입시제도????
말레이시아에서 매년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한 쪽에선 우수한 학생들을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많은 돈을 사용하는데 다른 쪽에선 우수한 학생들이?선택한 대학에서 거부당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말레이시아 우수한 학생들이 다른 나라를 찾도록 부채질할 뿐이다. 그 중 한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우리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생활비, 매력적인 환경과 심지어 졸업 후 직업까지 제공한다.
왜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한 대학에서?거부당하는가? 이는 학생들에게?말레이시아에 대한 애정을 시험하는 일이다.
말레이시아 차이니즈 협회는 20개 공립대학에서 중국계 학생들의 수가 왜 줄어드는지 알고 싶어 한다. 올해 4만1573명의 입학생 가운데 중국계 학생은 7913명에 불과했다. 교육관계자인 위 카시옹(Dr Wee KaSiong) 박사는 중국계 학생들이 새학기에 19%가 채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2년 능력주의(Meritocratic System)가 도입된 이래 중국계 학생 비율이 25%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전체 등록학생 중 말레이계 등이 3만903명이었고, 인도계 1824명, 그밖에 933명의 다른 종족이 분포됐다.
현재 20개 공립대 선발과정은 불투명하다. 우리는 어떻게 누가 학생들을 선발하는지, 심지어 자격기준도 모른다. 학생들은 그들의 시험결과로 90%, 과외로 10% 정도 선발돼야 한다.
우리는 뛰어난 사람들이 선택한 학과에서 공부할 권리를 박탈하면 안 된다. 그들은? 능력을 가진 인재 풀로 가치가 있다. 그들 중 몇몇은 가난에서 벗어나기?위해?교육이라는 사다리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STPM(대학입학시험)를 위한 준비로 책에 파묻혀 살았다. 정부는 이들이 선택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투명한 선발과정을 보장해야 한다.
우리가 능력주의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혜택 받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한 손에는 능력주의, 다른 손에는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기회를 주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편집자주 : 말레이시아는 1973년 말레이계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공립대학에서 말레이계 입학정원제(55%)를 실시했다. 이는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을 야기시켜, 2002년 폐지됐다. 2004년 대학입학시험에서 모두 A를 받은?비 말레이계 학생 128명의 입학거부 사건이 발생하고, 2010년 인도계 학생의 입학정원이 2~3%에 해당돼 인도계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인종쿼터제 폐지 후 대학입학시험의 대안으로 능력주의(Meritocratic System)을 도입했으나, 이 제도 역시 말레이계에 대한 우대제로 역할한다는 비판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UAE <Gulf News> (7월28일자 사설)???
민주주의는 ‘투표함’ 그 이상이다????
이집트의 혼란은 무르시가 선거 승리로 절대권력이 주어졌다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집트 위기는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 퇴진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혼란은 민주주의 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무르시와 그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투표함의 합법성에 목 매달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의미는 투표함 그 이상이다. 투표함은 민주주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통치의 좀 더 포괄적인 방법이다. 투표함 승리가 자동적으로 독점권력, 시민들의 자유제한, 일방적인 헌법 도입, 언론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위 열거한 일들이 이집트 대통령으로서 무르시가 1년간 행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헌법, 민주주의 시스템의 선언, 의회에 의한 통치, 대통령 선거를 도입하면 어느 나라도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규범의 총합이다. 개인과 사회사이의 규칙적 관계설정, 법 앞의 평등,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 종교 종족에 관계없이 공존할 수 있는 이해 등이 전제돼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루아침에 키울 수는 없다. 각 지역에서 잘 양육돼야 한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우리가 이러한 규범들을 삶 속에서 체화한 후 따라오는 투표 결과는 의미가 있다.
현재 이집트는 내전 직전 같다. 어떤 이들은 무르시대통령이 투표승리로 사회규범을 바꿀 힘과 그의 당의 이념을 강제할 권리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민주적이지 않다.
가네보는 고객 불만에 귀기울였어야 한다
일본의 유명 화장품 회사인 가네보의 화이트닝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이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얼굴에 반점이 생기고 얼룩덜룩해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접수된 사례만 6800명이 넘고 이 중 2250명은 반점이 세 군데 이상 생기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이번 사건은 한 피부과전문의가 지난 5월 가네보 제품을 쓴 소비자들의 부작용 사례를 보고하면서 이슈화됐다.
가네보는 사실조사에 들어간 뒤 문제의 제품을 회수하기까지 2달이나 걸렸다. 그 사이 소비자에게는 어떤 주의사항도 권고하지 않았다. 일본 소비자안전국장까지 나서서 더 빨리 공개하지 않은 가네보를 비난했다.
조사가 계속되자 이와 비슷한 사례가 2011년 이후 39건 더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가네보 직원들은 소비자들의 체질을 탓하며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즉 최초의 고객불만사항에 대한 잘못된 평가가 사태를 키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의 화이트닝제품에는 가네보가 얼굴 반점과 주근깨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개발한 성분이 들어 있다. 관계기관의 승인도 받았지만 시장에 나오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또한 의약품과는 달리 화장품에는 적절한 용량이 상품라벨에 나와 있지 않다. 가네보는 화장품 제조사로서 안전주의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화이트닝 제품 시장은 전체 화장품 판매액의 10%인 2000억엔(20억 달러)에 이른다. 제조사들은 소비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화장품 회사는 가네보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제품의 안전성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을 재점검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The Jakarta Post> (7월29일 사설)
인도네시아에서는 산호초를 잃으면 너무 많이 잃는 거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산호종의 75% 이상이 있고, 말레이시아에서 솔로몬 아일랜드까지 산호초 물고기의 36% 이상이 있는 산호 삼각지대(Coral Triangle Initiative) 중심지다. 이런 인도네시아 산호초가 지금 어류 남획으로 위협받고 있다.
자연관리단 인도네시아-태평양담당 해양프로그램 차장인 로드 삼(Rod Salm)은 지난 1973년부터 다이빙을 해왔는데, <자카르트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산호초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1980년대 초반에는 다이빙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스쿠버다이버 자격을 갖추고 해양탐험을 하고 있다”면서 해양생태계에 대해 “지난 수년간 지구온난화로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산호가 더 이상 물의 온도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특히 1998년 엄청난 열기로 산호 색이 바래지면서 죽어간 적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세찬 조류로 따뜻한 바다 표면이 차가운 물과 섞여서 다행히도 산호가 죽지 않은 지역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인도네시아는 운 좋게 그런 지역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로드 삼은 “인도네시아 산호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90%의 산호가 기후변화 뿐 아니라 어류 남획으로 위협을 받았다”며 “인도네시아는 산호초의 관광가치와 어업으로 2010년 기준 한 해 20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지만 그걸 손놓고 잃는다면 엄청난 실수”라고 말했다. 더불어 산호초는 많은 이들에게 직업을 제공하고 의약품도 제공하며, 해양관광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의 산호초 보호 실태는 어떨까. 그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산호초 보호정책은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힘을 모으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여줬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불법 조업을 막기 위해 쾌속정을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규제와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