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다가오는 범아시아 고속철 시대

태국 전역의 철도는 총 4400km인데 이 중 거의 90%가 1932년 이전에 건설됐다. <사진=태국 관광청>

방콕~치앙마이, 기차타고 13시간

유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깐짜나부리에서 기차를 탄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당시 일본군이 미얀마로 가는 수송로로 건설하였던 것으로 태국 중서부 랏차부리에서 미얀마 동부 탄뷰자얏까지 총 길이 415km에 달하는 이 열차는, 당시 철도를 건설하는데 동원된 연합군 포로 십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데에서 ‘죽음의 열차’라는 무시무시한 아명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해 현재는 깐짜나부리에서 남똑역까지 77km 구간을 관광 코스로 운영하고 있다. 기차를 타고 가며 창밖으로 내민 손에 닿을락 말락한 거리로, 굽이굽이 펼쳐진 절벽 길을 끼고 돌아가는 운행 코스도 스릴 있었지만, 내게 더 스릴 있게 느껴진 것은 바로 기차 그 자체다.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식민주의 시대로 돌아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낡은 나무 의자와 먼지가 가득한 선풍기와 나무 창틀. 게다가 노쇠한 열차는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다가 엔진 고장으로 멈춰서기도 하고, 잡초가 철로 위로 침범해 승객들이 내려 힘을 모아 잡초 덤불을 치워내고 나서야 전진하는 그야말로 ‘어메이징’한 상황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죽음의 열차’ 뿐이 아니다. 방콕에서 남부 초입에 위치한 휴양지 후아힌으로 가는 기차는 관광객들로 이용자가 비교적 많은 인기 노선임에도 시설이 열악하다. 우스갯소리로 기차타고 후아힌 가려면 흰색 티셔츠는 피하라고 한다. 창문을 열고 한참 가다보면 흰 티셔츠에 먼지가 앉아 시커멓게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방콕에서 751km 떨어진 북부 치앙마이까지 기차로 움직이려면 반나절을 꼬박 잡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관계자에게 문의하면 11시간 내지 13시간쯤이라고 두루뭉술한 대답이 돌아온다. 중간에 기계 고장으로 멈춰서거나 선로를 침범한 장해물을 치우느라 몇 시간씩 지체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거리가 더 먼 남부 노선은 말할 것도 없다.

태국, GDP 15% 물류비용으로 소모

이렇듯 태국의 철도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태국 전역의 철도는 총 4400km인데 이 중 거의 90%가 입헌혁명(1932년) 이전에 건설된 것이다. 기차의 평균 시속은 30km에 지나지 않는 정도. 지난 10년간 단선철도를 복선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 300km 정도만 복선이고 대부분이 단선 철로이기 때문에, 번갈아 철로를 쓰느라 한참씩 정차하는 경우가 빈번해 연착도 잦다. 태국 철도공사는 가장 적자율이 높은 공사로 꼽힌다.

철도는 승객을 실어 나르는 운송수단일 뿐 아니라 중요한 물류의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태국 내 5곳의 국제공항이 늘 승객으로 북적이고, 항구 물동량도 급증하면서 인프라의 추가 확대가 절실한 상황에서, 늘어나는 수요를 고려해 태국 정부는 인프라 구축으로 예산의 30%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태국 국내총생산(GDP)의 15%가 고스란히 물류비용으로 소모되고 있는 실정으로, 물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더욱이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ASEAN Economics Community : AEC)로의 도약을 앞두고, 아세안 연계성(ASEAN Connectivity) 증진을 위한 사업에 태국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태국이 역내 운송과 물류의 중심으로 발돋움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서 고속철 사업의 추진은 가장 시급하고도 불가결한 선택 중 하나이다.

태국 교통부가 발표한 고속철의 국내 준공 계획은 크게 4개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①방콕-치앙마이 노선(북부 노선) ②방콕-나컨랏차씨마 노선(동북부 노선) ③방콕-후아힌 노선 (남부 노선) ④방콕 쑤완나품공항-촌부리-팟타야 노선(동부 노선) 등 방콕과 주요 관광 도시를 잇는 계획으로 약 2조바트(한화 약 70조원)의 예산을 투자할 것으로 발표했다.

교통부는 일차적으로 방콕-팟타야 구간을 2018년까지 완성하고 나머지 3개 노선을 순차적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완공되면 방콕과 300km 이내 위치한 도시간의 이동시간이 평균 3시간에서 90분으로 절반가량 단축될 전망이며, 운송비용도 GDP대비 약2%포인트 가량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역내 국가 간을 연결하는 고속철 건설 사업도 추진을 앞두고 있다. 특히 방콕과 동북부 라오스 국경지역인 넝카이를 연결하는 고속철의 건설 사업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태국의 고속철 사업은 중국이 탐내기에 충분하다. 태국은 지리적으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심국으로 전략적 요지이기도 하며, 특히 언급했듯이 2015년 아세안 공동체로의 도약을 앞두고 아세안 국가들의 연계성 증진에 태국이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11월 말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가 태국을 방문해 잉락 친나왓 총리와 가진 정상회담에서 고속철 신 노선의 개설과 연결 방안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에 앞서 2012년 4월에 잉락 총리가 방중하였을 당시에도, 철도건설 협력 강화를 특히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라오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철도로 연결

특히 앞서 언급한 태국 수도 방콕과 동북부의 넝카이를 연결하는 640km 길이의 고속철 건설과 방콕과 치앙마이를 잇는 고속철 건설에 있어 중국의 참여 여부는 이미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이 건설 중에 있는 상하이-쿤밍 고속철이 올해 안에 완공돼 태국의 고속철과 연계된다면, 태국산 과일과 농산물이 신선한 상태로 상하이나 베이징은 물론 내륙지역에 단시간에 운송되는 물류 천국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기술력에 있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 2010년 Wuhan-Guangzhou 노선에서 시속 350km를 넘는 고속철도 운행에 성공하는 등 기술공여국인 일본을 넘어서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고속철 분야 세계 1위로 도약했다. 지난 2011년 7월에는 터키 앙카라~이스탄불 간 12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 건설 2단계 사업을 전 세계 관련업체 24개를 제치고 중국철도건설 컨소시엄이 수주하며 그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과 태국, 라오스 3국을 잇는 고속철 연결은 이미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해 11월초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간 중국과 라오스 당국은, 중국 서부 윈난성의 징홍과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을 잇는 길이 420km의 고속철 착공에 합의했다. 예정대로라면 2018년에 완공되는 이 노선은, 향후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의 철도와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중국 쿤밍에서 싱가포르에 이르는 구간으로 확장되며, 중국이 밑그림을 그려둔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범아시아고속철도의 일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고속철 건설 계약 당사자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늘 그래왔듯 우선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다. 9월에 입찰을 시작할 예정으로, 입찰에는 한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도 참여할 전망이다.

태국 인프라 건설 사업은 침체된 우리 건설업계에도 희소식이 되어 줄 수 있다. 우리 건설사들이 내수경기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국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전 태국 물 관리 사업에 한국수자원공사가 최종 예비후보로 올라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태국 정부가 입찰 조건을 변경하며 기업 부담을 가중하고 최종 낙찰자 선정을 연기하는 등 애를 태우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번 수주가 성사되면 향후 인근 아세안 국가 물 관리 사업의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주고 있다.

태국의 고속철 건설 사업 역시 침체된 건설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사업 중 하나로, 한국 정부는 태국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고자 정부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 이명박 前대통령의 태국 공식방문 당시 수자원관리 시스템과 함께 태국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깊은 관심과 참여 의지를 표명하였고, 올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직후 잉락 총리와의 정상 환담에서도 양국 간 철도협력 강화와 태국의 고속철도 사업의 한국 참여 등 인프라 분야에서의 협력이 더욱 증진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의 발 빠르고 적극적인 ‘구애’에 비해서는 한발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나, 향후 우리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 확대의 또 다른 교두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머지않아 태국 완행열차의 낭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태국 남과 북이 일일생활권이 되고, 중국에서 태국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기차로 여행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은 또 다른 설렘을 준다. 그 철도의 어느 한 구간, 내지는 상당 부분을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낸다면 또 얼마나 뿌듯할까. 태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으로서 주변국과 연계하여 물류의 중심으로 새로이 도약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박경은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조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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