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중앙아시아서 입지 다지는 중국

동아시아-서유럽 잇는 ‘유라시아 육로’ 건설 관심???

지난 2년 동안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외부 행위자로 등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 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 배경을 우연의 소산으로 분석한다. 다시 말해 중국 정부의 노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늘날 중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국제 환경과 중국이 이룩한 전반적인 경제 성장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던 미국과 NATO의 지역 전략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서방 세력이 아직 완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유라시아의 지정학이 변화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의 악토베(Aktobe)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Kandahar)에 이르는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의 사회 정치적 및 물리적 틀 자체가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공식적인 대중앙아시아 정책은 소리 없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추진돼 왔다. 중국은 자국 서부의 신장 지역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중앙아시아 지역 발전을 이 목표와 연계시키는 데 역점을 두어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더욱 웅대한 전략을 실행하려 한다. 즉 동아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유라시아육로(Eurasian Land Bridge)를 건설하는 일이다. 최근 중국의 국영 기업들은 중앙아시아 지역 곳곳에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것이 유라시아육로 건설 사업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가 불명확하다.

또 중국이 유라시아 다자간 협의 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중앙아시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견해도 있으나, 많은 전문가들은 동 기구가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실하다고 지적한다. 즉 기구가 갖고 있는 상징성에 비해 제도적인 내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중앙아시아 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소규모 중국인 행위자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사들과 소규모 기업들 그리고 중국이 지역 곳곳에 만들고 있는 공자학원의 교사와 학생들이 장기적인 중국의 투자와 영향력 확대의 전위부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서방의 개입이 줄어들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중국의 존재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2014년에 미군과 NATO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면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프가니스탄에 힘의 공백 상태가 초래돼 테러와 살인 등 폭력행위가 급증하고 나라 전체가 총체적 불안정 상황에 빠지게 될 경우, 중국 기업과 외교관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 국영기업들 막대한 돈 쏟아붓고 있어

하지만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기 전에 중국의 국영 기업인 ‘중국금속공사(MCC)’와 ‘장시 구리 공사’는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 중 하나이며 카불의 서남부에 위치한 메스 아이나크(Mes Aynak)에 막대한 양의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중국의 거대 자원 기업인 ‘중국국영석유공사(CNPC)’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아무다리야(Amu Darya) 분지에서 석유 채굴에 여념이 없다.

현재 이 회사는 끌어올린 원유를 트럭에 실어 투르크메니스탄에 있는 정유공장으로 운반한 뒤 정유 처리를 하고 있는데 조만간 아프가니스탄 영내에 정유공장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천연가스의 운송을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거쳐 신장에 이르는 또 다른 파이프라인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CNPC와 자회사들은 현지 당국과의 협상을 통해 작업 영역 내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이미 끝마쳐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금 파슈툰족 지배지역인 남부와 타지크 및 우즈베크족 지배지역인 북부로 분열된다면, 중국은 북부동맹 세력의 보호 하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니, 이렇게 되면 아프가니스탄의 고질적인 지역주의에 불을 붙이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천연가스의 주요 생산지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CNPC와 중국 정부는 가장 영향력 있는 외부 행위자로 나선지 오래다. 특히 자원 부문에서 중국의 위치는 확고하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파이프라인 중 하나로서 불과 18개월 만에 완성되었으며 향후 연간 60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송하기 위한 확장공사가 계획 중이다.

이 같은 막대한 수송량은 카스피해에서 유럽 동남부로 이어지는 트랜스아나톨리아 파이프라인의 계획 수송량보다 네 배나 많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파이프라인 세 개를 합친 수송량과 맞먹는다. 더구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경유하는 루트보다 훨씬 적은 경비를 요하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선택지임에 틀림없다.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자원 및 대외 정책의 핵심은 투르크메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를 연결하는 TAPI 파이프라인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이 파이프라인은 아프가니스탄의 동남부를 관통하여 파키스탄과 인도 시장에 연결된다. 최근 열린 동 프로젝트의 국제 로드쇼에 CNPC와 시노페크(Sinopec) 사가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로 참여를 희망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양한 국적의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싶은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로서는 중국 기업이 아닌 다른 나라의 기업이 투자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지난 해 10월 뉴델리에서 개최된 페트로테크(Petrotech) 국제회의 기간 동안, 투크르메니스탄 석유 가스 산업 및 관물 자원부 장관인 카카겔디 압둘라예프(Kakageldy Abdullaev)가 인도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지난 해 9월부터 자국 영내를 관통하는 파이프라인에 우즈베크 산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2010년 체결된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정부 간 협정에 따른 것으로서 동 협정은 <우즈베크네프테가스>(Uzbekneftegas)가 연간 100억 평방미터의 가스를 중국에 송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에너지 빈국인 타지키스탄에서도 중국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무 다리야 분지의 동쪽 끝에 위치한 타지키스탄 령 보흐타르(Bokhtar) 지역에서 테티스 페트롤리엄(Tethys Petroleum Ltd.)이 추진 중인 가스 탐색 프로젝트에 CNPC는 <토탈>(Total) 사와 함께 뛰어들었다.

또 키르기스스탄의 추이(Chui) 주에서? 한 중국 기업은 정유공장을 건설하는 데 합의했는바, 키르기스 경제부 장관인 테미르 사리예프(Temir Sariev)는 “중국이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중국을 잇는 송유관은 물론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키르기스스탄 남부를 경유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와 중국 국영 기업들은 카자흐스탄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에도 공을 들여왔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지역 대국이며 자원 부국이다. 서방 기업들이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연안 지대에서 유전 개발에 애를 먹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꾸준히 카자흐스탄 내륙의 자원 개발에 투자를 진행시켜 왔고 그 결과, 최대의 주주로 부상했다.

중국투자공사(CIS)는 카자흐오일 악토베(Kazakhoil Aktobe), 카자흐투르크무나이(Kazakhturkmunai), 만기스타우 인베스트먼츠(Mangistau Investments)의 주식을 사들이는 작업에 착수했는바,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카자흐스탄 석유 생산의 40%에 대해 중국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됨을 의미한다. 또 지난 10년 간 몇 단계의 공사를 거쳐 완공된 카자흐스탄-중국 간 송유관은 2014년에 연간 2천만 톤의 원유를 운송할 전망이다.

중앙亞 개입 강화 나서는 러시아 가장 큰 걸림돌

그러나 이와 같은 중국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전망이 온통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중국이 관여하고 있는 카자흐 유전들이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서 앞으로의 활용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중국 고용주들에 대한 카자흐인들의 시선도 별로 곱지 못하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에 문을 연 호르고스(Khorgos) 자유무역지대가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카자흐 측 국경 내의 각종 인프라 구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 측은 이미 자기 구역 내에 시장과 기업 사무실, 호텔, 세관 건물을 지어놓고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지만 카자흐 측의 준비 태세는 여기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현상이 두 나라 동업자들 사이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알마티의 북동쪽에 위치한 호르고스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관문으로서 세 가지 개발 프로젝트가 이곳을 지나간다.

첫째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나아가는 파이프라인이다. 둘째는 알마티와 아스타나를 거쳐 카스피해 연안과 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고속도로다. 이 도로는 현재 건설 중에 있다. 셋째는 작년 12월에 완공된 중국과 카자흐스탄 간 두 번째 철도다.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유라시아 육로’ 구상의 중심지가 호르도스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최대 걸림돌은 러시아가 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유라시아동맹’ 구상이 그것인데, 2011년 10월 대선을 앞둔 푸틴이 <이즈베스티야>(Izvestia) 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공개된 동 구상은 사실 1990년대에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관세동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동안 관세동맹 창설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푸틴이 구 소련권 국가들 사이의 경제 및 통화 정책을 조정할 새로운 지역 기구 창설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만이 관세동맹의 회원국이지만,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도 동맹 가입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앞으로 회원국 수가 늘어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중국 돈 환영하되 지배력은 거부

단지 이 같은 움직임이 러시아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각국의 자율적인 선택에 따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12년 12월에 러시아 국회 하원(국가두마)에서 연설하면서 푸틴은 CIS 가입국 국민들의 러시아 입국 심사를 강화할 것이며, 러시아로의 자유로운 입국은 관세동맹 회원국 국민들에게만 허용될 것이라고 밝혀 자신의 의도를 드러냈다. 수입의 대부분을 러시아로의 노동 이주에 의존하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으로서는 관세동맹에 냉담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최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개입을 강화하려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지난 1월 22일, 러시아 외무부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및 무역 관계를 확대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알렉산드르 스테르니크(Aleksandr Sternik) 러시아 외무부 CIS과 과장은, 중앙아시아 5개국과 러시아의 무역이 러시아 대외무역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7%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대중앙아 무역은 연간 4,500만 달러에 육박하며 지난 5년 동안 2.5배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내에서 중국 위협론이 제기된 것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경쟁의 장이 중앙아시아가 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중앙아 지역 국가들과의 개별적인 양자 관계를 통해 주로 경제 교류를 해왔지만 최근 들어 경제 관련 다자기구의 창설에도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러시아가 수년 전 카스피해경제협력기구(CECO)의 창설을 강력히 주장한 적이 있었다. 2007년에 테헤란에서 개최된 카스피해 정상회담에서도 CECO를 만들자는 데 합의가 도출된 바 있다. 하지만 그 후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러시아 또한 여태껏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창설된 다양한 지역 기구들이 모두 형해화(形骸化)한 것을 생각하면, CECO의 창설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중앙아시아에 대한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 할 국영 기업도 조만간 발족시킬 계획이라는 후문이다.

중국은 이 같은 러시아의 전략이 자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대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은 중국 상품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중심 루트이며 이렇게 들어간 중국 상품은 해외로 재수출되기도 하는데 그 액수는 연간 500만 달러에 달한다. 중국의 대외무역 총액이 연간 3조 달러 규모인 것을 고려하면 이 액수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키르기스스탄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2013년 한 해에도 중국은 상기(上記)한 불확실성 속에서 중앙아시아 진출 전략을 모색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지역에서 중국이 국익을 확대하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부 행위자로 부상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문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중앙아시아 각국의 대응이다. 중국으로서는 신장 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아직도 이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겠지만, 중국의 돈은 환영하되 지배력은 거부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현승수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 연구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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