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타지키스탄, 국제 불법자금 도피처로 부상
이란의 불법자금 세탁
이란이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통상제재를 받으며 불법자금 세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 이란인 사업가가 최근 타지키스탄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바박 잔자니(Babak Morteza Zanjani)라는 이란인 사업가는 타지키스탄에서 은행, 항공사, 택시회사, 버스 터미널 등을 망라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배후에는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인들과의 결탁이 필수적인 타지키스탄에서 그의 사업이 특히 올 들어 확장하고 있는 것은 불법자금 세탁에 대한 타지키스탄의 느슨한 정책이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잔자니의 사업 영역은 타지키스탄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데, 두바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소리넷(Sorinet) 그룹 홈페이지에는?사업 분야가 건설, 화장품, 의료, 운송, 석유, 가스 채굴 등 수 십 여 가지에 이른다고 나와 있다.
홈페이지에는 또한 두샨베에 위치한? 아시아 익스프레스 터미널(Asia Express Terminal)을 소리넷 그룹 자회사로 등재했고, 잔자니와 라흐몬 대통령, 두샨베의 우바이둘로예프(Mahmadsaid Ubaydulloyev) 시장이 함께 찍은 사진도 올려놓았다.
이에 따라, 라흐몬 대통령과 잔자니 회장의 밀접한 관계가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재무성의 분석에 따르면, 잔자니 산하의 기업들이 이란 정부의 원유 판매 대금을 세탁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정황이 파악됐다. 지난 4월 미국 재무성은 잔자니 산하의 말레이시아 소재 은행과 소리넷 커머셜트러스트(Sorinet Commercial Trust)를 이란 정부의 불법자금 세탁 혐의가 있는 것으로 포착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잔자니 산하의 기업들이 이란 정부의 원유 판매대금 수십억 달러 이상을 세탁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현재 두샨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콘트 인베스트(Kont Investment)은행을 같은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잔자니의 불법 자금세탁에 대한 제재 조치
지난 2012년 12월 유럽연합은 잔자니를 이란 정부의 원유판매대금 유통과 관련한 자금의 핵심인물로 지목하였고 두바이에 주소를 둔? 소리넷 그룹과 계열 기업들이?제재조처를 받았다.
당시 소리넷 그룹이 두샨베에서 운영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업명이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제재조처에는 제재 받은 개인이 운영하는 기업 모두?대상이 되고 있다.
<유라시아넷(EurasiaNet.org)>은?잔자니의 해명을 듣기 위해?연락을 시도했으나 두바이 사무실에서는 인터뷰에 대한 거절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나 그는 유럽연합의 제재 이후 <로이터>가 그와 이란정부의 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보도했다고 알려왔으며 자신은 유럽연합이 의심하는 것처럼 불법적인 거래에는 전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BBC>는 지난 3월 잔자니가 이란의 고위 공무원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2009년 선거 당시 항의하는 군중들을 강제 진압한 사건에 연루된 이란 정보부 관리들과 함께 전용기를 타는 장면을 촬영한 비공식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타지키스탄인들은 잔자니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지키스탄 중앙은행 총재인 시리노프(Abdujabbor Shirinov)는 지난 7월 한 뉴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잔자니와 콘트 인베스트(Kont Investment) 은행의 제재조처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고위 관료들은 잔자니와 타지키스탄 수뇌부의 밀접한 관계,?이로 인해 타지키스탄이 국제 불법자금 세탁의 새로운 허브가 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서방의 한 고위 관료는 “라흐몬 대통령이 잔자니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버스터미널 사업을 그에게 주었으며 이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매우 친밀한 환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잔자니가 타지키스탄을 이란 원유 자금 세탁에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지키스탄은 이란과 밀접한 문화적, 언어적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타직어는 페르시아어와 매우 유사하며 이란은 타지키스탄에 대한 주요 투자국 가운데 하나다. 또 타지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의 헤로인이 수출되는 경유국으로 이로 인한 불법자금이 두샨베를 중심으로 크게 유입되고 있다.
불법자금 세탁과 타지키스탄
지난 6월 바질 연구소(the Basil Institute on Governance)는 전 세계 149개 국가 중 타지키스탄을 세계에서 4번째로 자금 세탁과 불법 테러자금 유용에 취약한 국가로 지목했다.
이러한 결과가 발표되고 며칠 후, 오슬로에서 개최 예정이던 자금세탁 방지관련 국제회의 개최 5일 전, 라흐몬 대통령은 임시국회를 소집해 불법자금 세탁에 대해 형사적 처벌을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통과하도록 했다.
한 뉴스 매체는 법률가들이 새로운 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많은 CIS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타지키스탄도 불명확하게 정의된 법률을 통과시키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방 국가들은 이번 법률안 제정을 원칙적으로 환영하였으나 한 서방 관리는 타지키스탄 정부가 오슬로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자금세탁 방지관련 ‘정부 간 금융 특별회의(inter-governmental Financial Action Task Force)’를 앞두고 보여주기 식의 법률제정을 한 것? 뿐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이전의 특별회의에서 타지키스탄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이 가장 약한 국가 중 하나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타지키스탄과 같은 소규모 경제에서 교역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제재 조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기업에 의한 투자를 거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자원이 빈약하고 경제성장의 정도가 낮은 빈국이다.
소비에트에서 독립한 뒤 1990년대에는 내전으로 인해 다른 국가보다 비교적 늦게 체제전환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성장의 모멘텀이 될 만한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타지키스탄인들이 러시아로 불법 이주해 러시아의 3D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송금이 타지키스탄 GDP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등 경제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특히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으로 인프라 개발이 더디고, 개발 가능한 자원이 빈약해 외부 투자도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는 타지키스탄으로서는 반길 만한 사안이다. 더구나 서방과의 교역이 많지 않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협력체를 통한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이 더욱 긴말한 타지키스탄으로서는 당장의 투자 유입확대가 추후 확대될지도 모르는 제재 강화보다는 더욱 매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