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타지키스탄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타지키스탄에 주둔해 있는 러시아의 군사 기지(과거의 소련군 제201 기계화소총사단)를 2042년까지 연장하는 법안이 10월 1일 타지키스탄 의회 하원에서 통과됐다. 이로써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사이에 계속돼 오던 오랜 줄다리기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이제 의회 상원의 비준을 거쳐 타지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Emomalii Rahmon)의 서명만 받으면 된다. 이번 법안 비준 소식을 접한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양측의 반응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러시아 의회 하원의장 세르게이 나리시킨(Sergei Naryshkin)은 두 나라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면서 환영의 뜻을 표했으며, 타지키스탄 의회 상원의장 마흐마드사이드 우바이둘로예프(Makhmadsaid Ubaidulloyev)도 “러시아의 발전과 안정이 유라시아 지역 전체의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타지키스탄은 러시아의 안정적인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에 의욕을 보였다.
타지키스탄에서는 동 법안이 단순한 군사 기지 협정의 차원을 넘어 보다 넓은 범위에서 지역 안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러시아는 타지키스탄 기지에 7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가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기지 규모로는 최대급이다.
제201사단 기지 외에도 러시아는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 인근에 위치한 아이니(Ayni) 공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협상을 현재 진행 중이다. 동 공군 기지를 제201사단 기지의 일부로 임대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의도는 ‘포스트 2014년’을 염두에 둔 중차대한 전략에서 비롯됐다.
주지하다시피 2014년에 ‘ISAF’(NATO 가입국을 중심으로 37개국이 파견한 국제치안지원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게 되며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에 발생할지도 모를 안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러시아는 고심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타지키스탄에 자국군의 주둔을 연장 및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는 2014년이 오기 전까지 기지 협상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러시아와 타지키스탄을 잇는 유일한 철도를 봉쇄해 버렸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아이니 공군 기지의 사용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도 공군 기지 임대 문제에 대해서 타지크 정부의 태도는 신중하기 그지없다. 올해 1월 타지크 외상이 직접 나서서 아이니 기지 관련 협상설을 부인 하는듯한 발언을 하여 러시아를 긴장시켰다. 외상은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사이에 진행 중인 협정들이 모두 이행된 뒤에야 비로소 이 문제가 검토 가능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같은 발언 직후, 러시아는 타지키스탄 측이 제시한 조건을 거의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기지 문제를 러시아가 원하는 선에서 타결 지으려 노력했다. 즉 러시아 정부는 올해 3월 타지키스탄으로부터 러시아로 이주한 이민자들에 대해 체재 우대 조치를 취했으며 타지키스탄에 수출하는 석유제품의 수출 관세를 폐지했는가 하면 무기 지원 확대나 대규모 투자 등의 약속도 즉각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타지크 측은 러시아의 요구를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그 속사정이 궁금하다.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자신의 차기 대선을 노리고 모스크바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타협을 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있지만, 아이니 공군기지의 현대화 작업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인도도 참여하고 있어 향후 동 기지가 미군에게 임대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에도 중앙아시아에 최소한의 군사적 영향력은 남겨놓기를 원하는 미국이 타지키스탄과 기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확인 안 된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으니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2001년 9.11 사건 이후 한동안 미국의 존재감이 커져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자리를 러시아가 되돌려 받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자원과 군 기지 협상을 놓고 실익을 챙겨온 중앙아시아 국가들로서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게 되는 2014년 이후가 불안하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일단 아프가니스탄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가장 큰 위협을 받게 되는바, 이들 나라의 러시아 접근이 최근 눈에 띠게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협력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키르기스스탄인데, 일단 현재까지의 형국을 보면 러시아가 타지키스탄보다 키르기스스탄에 더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합의된 협정에 따라 러시아는 키르기스 군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미화 11억 달러를 지불하게 되는데, 이 금액은 러시아가 타지크 군의 현대화를 위해 약속한 지원금 2억 달러를 다섯 배 이상 웃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가 타지크 군을 지원하기 위해 내놓은 돈의 액수가 4억1100만 달러에 불과하니 키르기스스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아쉬운 것은 타지키스탄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대단히 열악한 타지키스탄에게 러시아의 도움은 늘 절실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사이의 군사 협력은 그 역사가 깊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제201 기계화소총사단은 소련 시대부터 중앙아시아 지역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부대로서 소연방 해체 이후에도 주둔을 계속해 왔으며 1992~1997년 동안 계속된 타지키스탄 내전 당시에는 이른바 ‘인민 전선’(타지키스탄 서부의 레니나바드 Leninabad와 쿨랴브 Kulyab 지방을 중심으로 한 친 공산 세력)을 도와 이슬람 반군 세력에 맞서도록 지원한 경험이 있다.
일례로 1992년 9월, 제201 부대 소속 장성인 마흐무드 후도이? 베르디예프(Mahmud Hudoiberdiev)는 이슬람 반군과의 전투에서 러시아인 병사들이 모는 전차를 동원해 전세를 역전시켰고 이로 인해 반군 지도자들은 러시아군이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략을 바꿔야 했다. 또 타지크 반군은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수비하던 제12 러시아 국경수비대를 종종 공격했는데, 이는 반군에게 있어 최대의 적이, 갓 조직된 타지키스탄 군이 아니라 러시아 군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독립 이후 창설된 타지키스탄 군 자체가 러시아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와 관련해서 러시아연방군 참모본부 정보총국 (GRU)의 고위급 장성인 블라디미르 크바치코프(Vladimir Kvachkov)는 최근 흥미로운 정보를 공개한 바 있다.
내전 당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슬람 반군에 대응하기 위해 타지키스탄 군을 조직하도록 자신에게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다. 크바치코프는 명령에 따라 군을 결성했고 산가크 사파로프(Sangak Safarov)를 그 지휘관으로 앉혔는데, 사파로프는 뼛속까지 소련에 충성했던 인물이었고 23년 간 형무소 생활을 한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였다. 크바치코프는 현 타지키스탄 대통령인 라흐몬이 당시 쿨랴브 지방의 부지사를 역임하면서 사파로프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었다고 회상하고, 1993년에 사파로프가 의문사를 당한 이후부터 갑자기 라흐몬이 타지키스탄 정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한편 오늘날 타지키스탄 영내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반군 세력은 중앙아시아 역내 러시아 군 기지의 주둔 연장에 맹렬히 반대해 왔다. 이슬람근본주의 조직인 ‘자마아트 안사룰라’(Jamaat Ansarullah)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제201 부대의 연장 협정 체결이 반이슬람적일 뿐만 아니라 타지키스탄의 국익에도 반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타지키스탄의 세속정권을 타도하고 이슬람법에 입각한 종교국가를 건설할 것을 지향하는 이 조직은 중앙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과도 깊이 연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들어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2010년 소그디이스크(Sogdiysk) 지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 조직이다. 당시 두 명의 경찰 간부가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타지키스탄 영내 이슬람 과격파의 움직임이 2010년 이후 활발해지면서 라흐몬 정부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알라무로드 마하노프(Alamurod Makhanov)가 이끄는 일단의 무리가 내무부와 안보위원회의 합동작전 과정에서 적발되었고 6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두샨베에서 테러를 일으킬 모의를 하고 있었으며 마하노프 자신은 파키스탄에 있는 특수캠프에서 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 주었다.
또 그가 타지키스탄 당국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2010년부터였고 이미 국제 공안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는 점, IMU의 지도부가 마하노프에게 타지키스탄 영내에서 테러를 자행하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타지키스탄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11월 6일로 다가옴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이슬람 과격파의 공격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2014년 미군과 NATO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본격화되면 치안과 안보가 더욱 악화될 것을 타지크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자국의 안보를 책임져 줄 믿을만한 파트너가 절실해졌고 이러한 필요성이 러시아와 타지키스탄 간 군사협력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9·11 이후 잠깐 동안 중앙아시아 국가 정부들을 설레게 했던 미국의 지원은 결국 미미한 성과에 그쳤으며, 인권 문제를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달고 나오는 미국의 태도에 각국 정부가 질린 것이 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타지키스탄 정부 역시 미국과의 협력이나 지원 기대를 포기하고 러시아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니, 미국으로서는 유라시아 중심부에 친미 국가를 건설할 모처럼의 기회를 완전히 놓치게 된 셈이다. <현승수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