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싱겁게 끝나버린 버마 NLD 전당대회
국민민주주의연합(NLD), 창당 이후 최초 전국규모 전당대회 개최??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은 3월 8~10일 2015년 총선 준비를 위한 예비단계로 창당 이후 25년 만에 전국규모의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2012년 4월 보궐선거에서 압승(43/45석)을 거두며 제도권 입성에 성공해 대중정당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으나 이후 당내 권력 재편과 관련해 당원들의 불만이 제기되면서 당내 결속력 도모, 향후 당 정책 및 조직 재정비 등 20년 간 누적된 당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고령화된 당 수뇌부의 교체, 중앙당원 선발, 차세대 지도자 육성을 골자로 당내 화합과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 제1야당의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수권정당으로서의 기강과 위상을 확립해 2015년 총선 승리를 도모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전당대회를 개최한 것으로 분석된다.
NLD는 1988년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정권을 반대한 퇴역군부, 소수종족, 공산당당원, 학생운동가 등 다양한 세력들의 이합집산으로 창당됐고, 1990년 총선에서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해 일약 수권정당으로 도약했다.
군부의 총선 무효화 조치에 따라 당선자 및 당원 투옥, 탈당 압력 등 각종 분쇄정책에 불복했지만 정당 기능은 정상화되지 않은 채 명맥만 유지해 왔다. 해외로 망명한 당원은 자유지대(Liberated Area)로 분파돼 재조직됐으나 중앙당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NLD가 국민적 지지를 얻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군부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에서 비롯된 반사이익,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혈육인 아웅산수치(Aung San Suu Kyi)의 존재, 국민의 다수인 버마족(Burman)을 대변하는 대표성 등으로 요약된다.
인적쇄신 이뤄지지 않아… 당 집행위 평균 60세 이상??
각 지역별 대표인 대의원 900명이 당 의장을 비롯해 15인의 집행위원, 120인의 중앙위원, 30인의 예비위원 등 당 핵심인사들을 선출할 예정이었고, 특히 현 당의장인 아웅산수치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됐다.
집행위원회의 정족수를 기존 7인에서 15인으로 확대해 의사결정을 다각화하고, 여성과 소수종족 당원의 중앙위원 진출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예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당내 조직 측면에서 부분적 정비를 착수했다.
아웅산수치(67세)가 당의장에서 재선출됐고, 창당 동지였던 띤우(Tin Oo, 85세)는 부의장이자 후견인(Nayaka)으로, 아웅산수치의 부재시 당을 이끌었던 윈띤(Win Tin, 83세) 등 원로급 인사들은 유임됐다.
전당대회가 세대교체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수뇌부격인 집행위원회 15인의 평균 연령은 60세 이상으로 알려졌다. 즉 능력보다 장자(長者) 우선의 원칙이 지배하는 미얀마사회의 인적구조가 그대로 투영됨으로써 인적 쇄신은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띤우와 윈띤은 사회주의 시기 권력서열 2위까지 장악한 군부 출신으로 창당 당시 현역 및 퇴역군부의 지지를 받았으나 아웅산수치의 당내 입지가 강화됨에 따라 배후로 물러난 상징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예우 차원에서 두 인물을 유임시켰으며, 아웅산수치의 당 장악에는 별다른 영향력이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집행위원회 15인은 모두 아웅산수치가 독단적으로 임명한 것으로 알려져 본 전대 이후 아웅산수치의 당내 입지는 더욱 견고할 것으로 관측된다.
창당이후 뚜렷한 정강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본 전대에서 정책우선순위, 향후 집권전략 등에 대한 광폭적인 논의를 했다고 하지만, 결의사항을 당내 기밀로 묶어 두어 군부정권의 의사결정구조를 답습하는 정치행태를 보였다.
당내 민주화와 수평적 화합, 전당대회 이후 핵심 과제
NLD는 느슨한 연정의 형태로 반군부 세력의 집산체로 창당됐기 때문에 조직적 측면에서 독립 전 조직된 반파시스트인민자유연맹(AFPFL)과 내적으로 유사한 정당이다.
AFPFL은 1960년 공식적으로 분열되기 전까지 수뇌부간 권력 갈등이 상존했고, 소수종족과 공산당은 탈당과 입당을 반복하여 당내 화합과 질서를 저해하는 등 대중정당으로서 허약한 위상을 전시했다.
NLD도 2010년 총선을 앞두고 내분에 휘말려 분당사태가 발생했고, 당내에서도 아웅산수치 1인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어 AFPFL의 전례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따라서 정당의 철학과 이념을 지속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정강정책을 수립하고, 해당 기준에 부합한 당론을 선택 및 추진함으로써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웅산수치의 지도력이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정당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아웅산수치도 당내 의사결정구조가 비민주적이라는 외부의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그 배경을 군부통치의 영향력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국한하고,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당도 민주화될 것으로 낙관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 버마 경제제재 유지안을 독단적으로 폐기하고, 군부-NLD-소수종족 대표단 등 3자 회담을 통한 국민통합 달성 계획과 달리 소수종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등 아웅산수치의 행보가 당내 권위주의행태를 강화하고 있다.
2011년 8월 이후 아웅산수치의 단적 정치행태와 중앙위원 측근들의 당 장악에 불만을 품은 기존 당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등 내홍이 확대됐으나 아웅산수치는 가정사로 비유해 초기 진압을 실시했으나 당내 불만이 팽배하다. 본 전대에서 당내 화합과 결속을 강조했으나 기존 수뇌부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당내 갈등 불씨는 잔존한다.
아웅산수치, 서구 언론에 의해 창조된 민주화상징 이미지 극복해야?
아웅산수치는 정계 입문 당시의 초심을 회복하고 동시에 현실 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아웅산수치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절대 다수는 아웅산수치가 아웅산 장군의 혈육이며, 일부는 아웅산 장군이 환생했다고 간주해 초자연적 능력을 보유한 존재로 신격화해 온다. 따라서 아웅산수치를 배제한 NLD는 존재 자체가 의미 없으며, 그녀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수용될 수 없는 환경이 형성됐다.
군부의 학정과 민생 파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달리 그녀가 쓴 몇 권의 책에는 민주화지도자보다 종교지도자에 가까운 정치사상이 피력되어 있고, 이로 인해 현실정치 경험이 없는 전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며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이상과 현실에서 갈등하는 형국이 현실화됐다.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아웅산수치의 이미지는 국내뿐만 해외, 특히 서구 언론에 의해 창조(invention)된 성향이 강하므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의무감에 포획되기보다 정계 입문 당시 추구하고자 한 정치적 이념을 현실적인 전략으로 접목시키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당 내부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절대 필요한 상황을 인지하고, 아웅산수치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015년 총선, 민생문제 대책 누가 내놓느냐 관건
여당과 제1야당의 전대 개최로 이미 2015년 총선은 시작됐으나 정당정치발전은 여전히 초기단계다.
여당인 연방단결발전당(USDP)도 2012년 10월 14~17일 간 전대를 개최하고 당 지도부 선출과 쇄신방안을 의결했으나 수뇌부의 기득권이 유지되고, 뚜렷한 정강정책이 채택되지 않는 등 NLD의 행적과 별반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대 개최를 통해 두 정당은 이미 차기 총선을 위한 전단계를 마쳤고, 이를 바탕으로 대외 이미지 개선 및 영향력 확대에 주력할 것이지만, 국민과의 소통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당 모두 당내 후견주의와 하향식 의사결정구조는 존치될 전망이어서 정당정치의 발전에 따른 민주주의의 확산은 단기적으로 기대할 수 없지만, 정당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상황에서 전대를 개최한 사실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도적 학습 분위기를 조성했다는데 유의미하다고 판단된다.
향후 NLD는 아웅산수치의 역할이 정당 존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수치를 대체할 유력 정치인이 없는 상황에서 향후 당내 의사결정, 정책 수립, 민주주의의 확산 등 정당 활동 과정에서 아웅산수치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권을 염두에 두어 헌법 개정에만 천착하거나 소수종족 문제에 대해 책임 소지가 없다는 이유로 회피할 경우 비버마족을 중심으로 아웅산수치에 대한 지지철회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동시에 민생문제 대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전국적 지지도가 추락할 것으로 보인다.
’88세대’, 국민민주주의의 힘(NDF) 등 NLD와 유화적 관계인 정당 또는 사회단체들과 수평적 연대 또는 흡수를 통해 정당의 외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웅산수치와 NLD는 거대 여당에 맞서는 야당으로 권한과 역할이 제한되어 있다고 항변해 왔으나 지속적인 내적 성찰을 토대로 수권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그 중심에는 아웅산수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