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골든트라이앵글… ‘아편’ 경작지가 ‘커피’ 농장으로

지난 겨울,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촬영 차 태국 북부 미얀마 국경지대인 치앙라이주를 찾았다. 치앙라이 도심에서도 차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야 닿을 수 있는 한 마을. 소수민족인 아카족이 거주하고 있는 파히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비릿한 콩 냄새가 진동을 했다. 파히 마을은 거의 모든 주민이 커피 재배에 종사하고 있다. 아라비카종 커피나무를 심고, 붉게 익은 커피 체리를 핸드피킹(Hand picking)으로 한 알 한 알 채집하고, 채집한 커피 체리를 펄핑(Pulping)작업을 통해 외피와 과육을 벗겨낸다. 생두는 하루정도 물에 불려 점액질을 제거 한 후 깨끗이 씻어내고, 지붕에서 좋은 볕에 일주일은 말려야 완전히 건조된다. 파히 마을은 저녁이 되면 채집한 커피 체리를 펄핑하는 탈곡기의 소리로 요란해진다. 경사가 험한 마을의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면 지붕마다 생두를 널어놓은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사실 이 마을은 아편을 재배하던 마을이었다. 치앙라이 지역은 국경지역이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가 만나는 접경지역인 쏩루악군(郡)은 악명 높은 아편 재배지역으로 황금삼각지대(Golden triangle)로 불리었다. 아편이 금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한 때 이 황금 삼각지대에서 생산되는 아편과 헤로인은 세계 총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아편은 문명의 기원 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해 왔다고 하니 그 역사가 길다. 태국에는 약 13세기 후반 쑤코타이 시대 때 중국 상인들을 통해 아편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의 경우 아편의 재배 면적 자체는 미얀마나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았지만 아편의 해외 유통이 주로 태국 항구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내 아편문제의 근절을 위한 태국의 역할은 컸다.

습기가 많고 기온이 낮은 고산지역이 아편 재배에 적합했기 때문에 주로 고산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아편을 재배했는데, 이로 인하여 삼림과 수원이 훼손되고, 아편 중독으로 인한 국민보건과 사회범죄 등 각종 문제가 심화되면서 아편 재배 근절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 이 때부터 아편 재배 근절 및 고산족 복지 향상 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하여, 1969년 태국 왕실의 ‘고산족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해 1973년에는 유엔 마약남용규제기금의 후원 하에 이루어진 ‘아편재배 대체 및 공동체개발계획’이 수립돼 태국 정부의 아편 재배 근절 노력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1987년부터 시작된 푸미폰 국왕의 모친인 씨나카린 여사의 ‘더이뚱 프로젝트’ 역시 치앙라이 지역의 녹화와 아편 추방, 주민 재활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이러한 태국 정부의 노력은 결실을 보이고 있다. 현재 태국에서 아편 재배지 면적은 90%이상 감소하였고, 아편을 대신하여 수익성이 높은 커피, 차, 서양란, 망고, 유기농 채소 등의 작물이 그 자리에 심어졌다. 특히 커피는 고도와 기후, 토양 등 그 재배 환경이 아편과 비슷하여 대체 작물로 매우 적합한 것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파히 마을의 경우 커피 재배를 통한 한 가정의 월 소득이 적게는 5만 바트(약 200만 원)에서 많게는 20만~30만 바트(800만~1200만원)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 돈으로 해도 상당한 고소득이며 태국 물가 수준에 비춰보면 더더욱 높은 수준이다.

현재 치앙라이에는 커피재배지역이 약 6만3000 평방킬로미터로 연간 생산량이 3500톤 정도이다. 주요 생산 지역은 더이창, 더이와위, 파나싸완, 빵컨, 파히 등이 있다. 더이창의 아라비카 커피는 세계적으로도 그 풍미를 인정받아 국내 뿐 아니라 수출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관광객의 발길도 점차 늘어나 연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치앙라이를 찾고 있다. 또한 메콩강 유역 개발 가속화에 따라 교통과 물류의 중심으로서 치앙라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지난 3월 잉락 친나왓 총리는 치앙라이를 특별국경경제구역 가운데 하나로 지정하였고, 향후 태국 북부의 주요 국제 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렇게 아편 재배 지역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고산족들의 소득과 복지수준이 높아지면서 유엔은 태국의 사례를 세계 아편재배 근절의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 근절을 위한 실행 모델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배를 근절했음에도 마약 유통과 소비까지는 뿌리 뽑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해 태국 내 마약 사건은 2011년에 비해 오히려 소폭 증가하여 5.4%로 집계되었다. 많은 양의 마약이 여전히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을 통해 태국으로 밀수되어 들어오고 있으며, 이러한 마약의 주 소비층은 청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태국 마약통제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0월부터 2012년 3월 사이 검거된 마약 사범은 총 601명, 333건으로 이전해 동기에 비해 수는 줄었지만 압수한 마약의 약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 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특히 미얀마는 여전히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 중 하나로 꼽힌다. 1997년 대마전쟁 선포와 1988년 UN협약 가입을 정점으로 매년 아편과 마약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적인 능력 부족으로 실질적인 마약의 강력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얀마 북동부 샨주(州)에서 주로 재배되는 아편은 수십 년간 독립군의 군사자금이 되어 왔으며 단속이 매우 민감하며 신중을 요하는 문제이고 외국의 원조도 아직은 많지 않아 단속 작전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니 마약 근절을 위한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중국 남부와 라오스 등도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3월 중국에서는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왕이라 불리던 나오칸의 사형 집행이 있었다. 미얀마 국적의 나오칸(태국식 발음 : 너캄)은 골든트라이앵글의 마약왕 쿤사의 투항 이후 새로운 마약왕으로 군림하다가 지난 2011년 중국 화물선을 공격하여 선원을 1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공개처형’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사형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한 것은 마약 근절에 대한 굳은 의지를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잉락 총리는 출범 당시 마약문제를 정부의 16개 우선 해결 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마약 근절에 주력하고 있다. 또 아세안 국가들은 2015년까지 역내 DRUG FREE 달성을 선언하고, 마약의 생산, 가공, 밀매, 사용을 모두 근절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러한 목표의 달성과 구체적 방안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지만, 문제를 인식하고 공동 노력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파히 마을을 떠나며 누군가가 “아직 일부는 마약 중독자”라고 한 말이 아직 귀에 울린다. 그 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여유로운 주민들의 모습에서 소박함과 행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파히 마을에서 마신 갓 볶아낸 원두커피의 끝 맛은 씁쓸한 여운을 주는 듯하다. 적어도 그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진정한 DRUG FREE를 기원해 본다. <박경은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조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