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동티모르에 드리워진 언어의 장벽

인도네시아어 쓰는 아버지와 포르투갈어 배우는 아들

동티모르 중부지역 산골에 위치한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마테우스는 요즘 집에만 오면 골치가 아프다. 이제 열 살 난 그의 큰아들이 부쩍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여 집에 와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대견스러워 해야 할 이 일이 마테우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유는 아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종종 그에게 물어보는데 그 대부분의 질문이 포르투갈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테우스는 마을에 사는 또래 사람들 중 몇 안 되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이지만 한 번도 포르투갈어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인도네시아 식민지배시기(1975~1999)에 태어나고 학교를 다닌 그는 동티모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방어인 테툼어와 인도네시아어만을 구사한다.

십수년 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환호하던 시민들은 동티모르 초대 헌법 제 8조 3항, 즉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하는 국가들과 특별한 연대를 유지한다’는 조항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뒤이어 포르투갈어와 테툼어가 공용어로, 그리고 영어와 인도네시아어가 실무 언어(working languages)로 공식 채택되자 인도네시아 시기에 자라 인도네시아어가 가장 능숙한 세대들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동티모르 정부의 포르투갈어 교육의 의지가 세차면 세찰수록 발생할 언어적 고립을 우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포르투갈어 교육에는 동티모르와 포르투갈 정부뿐만 아니라 브라질 정부도 원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2년에는 약 170명의 포르투갈인 교수가 동티모르에 상주하며 약 7000명의 포르투갈어 교사를 양성했고, 브라질 정부도 30명의 교수를 동티모르 국립대에 파견하여 고등교육을 지원함과 동시에 약 70명의 동티모르 학생의 브라질로의 유학도 추진했다. 동티모르와 더불어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브라질이 오늘날 동티모르에 포르투갈어를 전파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은 교훈적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독립 후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정하는 것은 비단 동티모르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앙골라, 모잠비크 그리고 기니비사우 같은 신생국들은 독립 후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선택했다. 이들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영연방까지는 아니라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모여 스포츠 이벤트를 (Lusophone games) 여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연대감은 있다.

즉 국가 간에 어떤 공통점을 통해 (비록 그것이 그들을 핍박한 식민지배자가 ‘마침’ 동일한 국가였다는 다소 우울한 기억일지라도) 연대감을 형성하는 것이 21세기 국제사회 경쟁에서 필요한 외교다변화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있다.

두가지 언어?사용, 사회 여러 분야서 혼란 야기?

그러나 마테우스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은 이런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동티모르 전체 인구 중 약 82%가 테툼어를, 약 43%가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는 반면, 오직 5% 정도만이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5%는 포르투갈 식민시기에 형성된 소수의 선택 받은 엘리트 계층이다.

사회지도층의 포르투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장차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하게 되는 동티모르의 전설적인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행한 발언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만약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서 예전에 떠났다면, 네덜란드가 이 지역을 차지했을 것이고 우리는 아마도 인도네시아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감사해야 한다.” 반면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서 실제로 어떤 교육 정책을 펼쳤는지 사회학자 존 테일러의 1970년대 동티모르 교육에 관한 일화를 들어보자.

“동티모르의 교육기관은 대부분 교회나 선교단체가 운영하는데, 특히 초등학교 입학 첫해는 포르투갈어 준비과정에 해당한다. 이 첫해의 성적이 나머지 교육기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보통 학생들은 집에서 포르투갈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난 후 그 다음 4년 동안 그들은 포르투갈어 읽기, 쓰기, 산수 그리고 포르투갈의 역사를 배운다.

동티모르 시골에 사는 아이들도 포르투갈의 강, 기차역, 도시 이름을 외워야 하는 반면 동티모르의 문화나 전통에 관한 것은 수업시간에 전혀 다루어지지 않으며 이웃 아시아 국가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다. 결국 초등학교에서부터 매우 높은 낙제율을 기록했다” (Taylor J. 1991. Indonesia’s Forgotten War)

언어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티모르 사회 여러 분야에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입법-사법체계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동티모르에서 기존의 법이 인도네시아의 법률 체계를 따르고 있는 반면 새로운 법은 포르투갈어로만 제정되는 경우가 많아 법을 집행하는 기관 내에서조차 제대로 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반인과 경찰은 물론이고 주로 식민지 시절 인도네시아 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변호사, 혹은 심지어 판사까지 법률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에 애를 먹는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포르투갈에서 판사를 수입해 동티모르 법원을 관할하게 하는데 법정에서 판사, 변호사, 그리고 관련 민원인이 서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는 포르투갈어로 하고 민원인을 위해 테툼어 통역이 이루어지는데 구어 위주의 테툼어는 아직 언어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아 법적 사안에 관한 통역은 매우 불완전한 상황이다.

포루투갈어 공용어 방침, 소수 기득권층 위한 것?

수도 딜리의 법률 자문 비정부기구에서 일하는 모니카는 포르투갈어가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기에 공용어로 정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정부 주장은 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행정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특히 인도네시아어에 능숙하면서도 식민지배시기에 가장 많은 피를 흘렸던 젊은 세대가 오히려 독립 후에 구조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니카는 국민감정상 인도네시아어를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차라리 정부는 영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채택한 동티모르의 공식 이름이 영어인 East Timor나 테툼어인 Timor Lorosae (Lorosae: 동쪽)가 아니라 포르투갈어인 Timor Leste (Leste: 동쪽)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실 동티모르 역사에서 인구의 95%가 말할 수 없는 언어가 공용어로 선정된 것은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74년 4월 카네이션 혁명을 겪은 포르투갈은 곧 동티모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식민지에 독립을 허용했다. 이에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은 1975년 11월 28일에 동티모르의 독립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며 포르투갈어를 공식 언어로 선언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동남아시아 역사분야의 저명학자인 옥스포드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 Peter Carey 교수는 Fretilin의 당시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이 가톨릭 교회가 1937년 Soibada에 설립한 교구 Seminary of Our Lady of Fatima 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 교회나 학교 안에서 포르투갈어를 제외한 현지 언어를 쓸 경우 처벌을 받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지도자층의 형성 배경이 언어적 현실을 도외시하고 포르투갈어를 두 번이나 공용어로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현지 지방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동티모르는 전체 면적이 한국의 7분의 1 정도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이어서 각자 고립되어 생활하는 부족이 많았고 그에 따라 많은 지방언어가 존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동티모르 중부에 위치한 마나투토에는 골로레이(Gololei)어라는 지방언어가 있다.

문제는 최근 마나투토 지방정부가 역내 초등학교에서 골로레이어를 보조 교육어로 채택하면서 불거졌다. 포르투갈어로 수업을 진행하던 고역에서 해방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은 이 결정을 매우 반기지만, 국가 전체의 언어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즉 현재 동티모르에서 적어도 16개의 지방언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고 있는데 그들 모두를 각 지역 교육기관에서 보조 교육어로 쓰는 것을 과연 허가해야 하는 가란 질문은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몇 개의 언어를 공부해야 하느냐는 마테우스에게 동티모르의 현실은 앞으로도 해답보다 질문만을 계속 던질 것이다. <서명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마인어과 강사>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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