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태국, 탁신 그리고 사면법
포괄적 사면법 부결의 배경과 향후 정세
태국이 또 다시 정치 문제로 시끄럽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그렇듯 탁신이라는 인물과 함께 사면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면법은 지난여름부터 현재까지 태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태국에서 처음 사면법이 시행되었던 것은 입헌혁명이 있었던 1932년으로, 이후 역사적으로 정치범이나 사상범들을 대상으로 수십 차례 사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거론되고 있는 사면법이 국민들로부터 반대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은막의 뒤편에 탁신 친나왓 전 총리라는 인물이 서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지난 8월, 야당인 민주당의 아피씻 웨차치와 총재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과 시민들의 반대 시위 속에서 첫 심의를 통과한 사면법(Amnasty Bill)은 지난 2006년 군부쿠데타 이후 심화되었던 속칭 “레드셔츠(쓰어댕, 탁신 전 총리 지지세력)”와 “엘로우셔츠(쓰어르엉, 반 탁신 보수세력)”의 집회와 충돌에서 야기된 모든 갈등을 불식하고 화합을 이룩하기 위하여 관련자들의 혐의를 모두 사면한다는 취지의 법이다.
의회의 동의를 거쳐 발효되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태국에서 사면법은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원 의회의 발의와 총 세 차례의 심의를 거쳐 상원의 의결,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왕의 승인이 내려져야 비로소 발효된다. 태국 국민들이 설마 하는 사이에 사면 법안은 2차 심의를 거쳐 지난 11월 1일 새벽 4시 경, 야당의원들이 전원 보이콧한 상황에서 열아홉시간의 심의 끝에 찬성 310, 반대 0, 기권 4표로 통과되었다. 생방송을 시청하던 시청자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통과된 지라, “날치기 통과”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면법안의 하원의회 최종 심의 통과는 오히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되었다. 쑤텝 트억쑤반 민주당 의원(지난 정부 부총리)은 의원직을 사임하고 집회에 가담했다. (아피씻 전 총리와 쑤텝 전 부총리는 지난 2010년 “레드셔츠” 시위대 무력 해산 지시로 당시 90명 이상의 사망자와 1700여명의 부상자를 유발한 혐의로 기소된 상태임에도 사면법을 반대하고 있음) 사면법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 대신 검은 마름모 안에 “사면법 반대”라는 메시지가 적힌 그림을 올렸다. 소위 “팔랑응이얍(조용한 세력)”이라고 불렸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던 세력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집회에 가담하여 연일 매스컴을 타고, 집회의 상징인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찍은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명문 국립대학 총장과 교수들이 사면법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 일부 학교는 학생들의 집회 참가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휴교령을 내리기도 했다. 일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사면법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와 비난을 사면서 결국 공식 해명을 해야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인증샷”을 찍으러 집회에 간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은, 일부 유행처럼 변질된 부분에 대한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던 태국인들 특히, 지식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민주주의를 지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행하려하는 바람직한 변화로 받아들일만하다.
이번 사면 법안을 두고 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포괄적 사면법”이기 때문이다. (태국어로는 “쑷써이 : 골목 안쪽 끝까지”, “마오켕 : 바구니 채 떨이로” 등으로 불린다) 이 “포괄적”이라고 하는, 의미의 범위가 상당히 모호한 단어 속에 탁신 전 총리와 그 측근, 그리고 친탁신계 인사들이 행한 그 간의 부정부패 사건들을 “떨이로” 끼워 넣어 소급 사면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처음 “2006년 군부쿠데타 이후부터…”로 규정되었던 시기 관련 조항이 세 차례의 심의를 거치면서 점점 앞당겨져 3차 심의를 통과한 법안은 “2001년도부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탁신 전 총리를 두고, 이제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왕의 특별 사면(Pardon) 뿐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형선고의 효력이 살아있고 잔형 집행면제 정도에 그치는 특별사면에 비하면, 형선고 자체의 효력이 상실되는 사면법은 훨씬 파격적이고 매력적이다. 탁신 전 총리는 자신이 말했던 그냥 “고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 그 이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면법 추진을 두고 탁신 전 총리가 자신의 권력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했고, 그것이 오히려 전략의 실패와 역효과를 야기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반대의 목소리가 친탁신 세력인 “레드셔츠” 사이에서도 만만치 않게 나온 것이다. “레드셔츠” 중 일부는 자신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2010년 시위 당시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희생당했는데, 그것을 지시한 아피씻 전 총리와 쑤텝 전 부총리까지 함께 사면한다는 것은 탁신 전 총리를 위해 투쟁하고 죽은 이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또한 일부는 자신들을 사면의 미끼로 삼아 흥정하는 것이 불쾌하다고 밝혔다.
하원 의회를 통과한 사면 법안은 지난 11일 상원의회에서 재적의원 150명 중 141명의 참석 하에 표결되었고,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상원에서 부결된 법안은 180일 후에 다시 재심의 될 수 있으나, 여당인 프어타이당과 하원의회는 여론을 고려하여 다시 이 법안을 재청하지 않겠다며 한발 뒤로 빠졌다. 그러나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됐던 집회는 그 여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친정부파인 “레드셔츠”도 자신들의 시위를 재개하면서 정국은 계속 찬바람이 불고 있다.
한편, 지난 20일 헌법재판소는 상원의원 150명을 모두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건에 관하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대 모두 숨죽이며 이 판결을 주시하던 차였다. 현재 태국의 상원의원은 총 150명으로, 이 중 77명은 각 주(州)별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나머지 73명은 선발위원회가 지역 및 직업 등을 고려하여 안배하여 적합한 인물로 선발,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현 헌법인 2007년 헌법(군부 쿠데타 이후 과도정부 하에서 개정된 헌법)에 따른 것이다.
그 이전까지 적용되던 1997년 헌법(태국 헌법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라고 평가되는 헌법)에서는 상원의원 200명이 모두 직선제로 선출되도록 되어 있었다. 즉, 상원 전원을 다시 직선제로 선출하자고 하는 헌법 개정 법안이 지난 20일 위헌 판결이 나면서, 반정부 시위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친탁신 세력들은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법안을 통과시킨 312명의 상하원의원들에 대한 처벌이나 여당의 해산은 면한 것에 대해 또한 안도했다. 즉 헌법재판소는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도 위헌 행위를 한 자들은 처벌하지 않음으로서 양쪽 모두의 손을 들어주고 혼란의 고비를 넘긴 것이다.
앞으로도 태국 정세는 한동안 떠들썩할 것으로 보인다. 반탁신과 친탁신 세력들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아직도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지어 있다. 특히 국가 교통 인프라 정비를 위한 2조바트(약 70조원)의 자금 조달 법안이 지난 20일 새벽 상원에서 가결되면서 이에 대한 위헌 여부에 대한 판결이 있을 예정이다. 또한 사면법안 역시 앞으로 6개월 후 또 다른 폭풍을 몰고 올 지도 모를 일이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군부가 계속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탁신 세력이 또 다시 군부 쿠데타라는 전근대적인 방식에 책임과 의무를 전가하고 뒷짐을 지는 형국이 되지는 않기를, 한 걸음 전진하고 두 걸음 후퇴하는 식의 민주화의 역사를 반복하지는 않기를 기대한다. <박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조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