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태국, ‘청소년 문제’ 골치…”폭력에 약물중독까지”

태국 청소년들마 '하모니' 포스터

드라마 ‘호르몬’ 통해본?태국 청소년 문제?

브라이오니(Briohny Smyth)라는 가수가 있었다. 미국계?태국인으로 앳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로 발라드를 부르던 청소년 가수. 1999년도에 태국에서 이 가수의 앨범 자켓을 처음 보고 강수지가 떠올랐던 기억이 있다. 노래 분위기도 ‘보랏빛 향기’와 많이 닮았다. 브라이오니 앨범(당시만 해도 카세트 테이프였다)을 사서 한동안 따라 부르고 다녔는데 얼마나 달달 외웠던지 그 노랫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브라이오니는 5장의 정규 앨범을 낸 후 만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돌연히 가수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혼전 임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혼은 얼마 못 가 파경을 맞았다. 2년간의 양육권 분쟁으로 수억 원을 날린 후 그녀는 명상과 요가에 심취하여 요가 강사가 되었고, 현재 같은 요가 강사와 재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금지되어 있는 것은 다 했다. 술, 담배, 약 그리고 혼전 임신까지. 하지만 지금은 요가로 새 삶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태국의 한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방영된 ‘호르몬(HORMONES)’이라는 이름의 청소년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본방사수’를 위해 토요일 밤에는 일찍 귀가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총 열 세편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의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다시보기 첫 회분의 조회 수가 1000만 건을 넘었을 정도다.

이 드라마는 간단히 말하자면 고등학생들 사이의 에피소드들을 담은 학원물이다. 각 회 차는 테스토스테론, 도파민, 엔돌핀, 아드레날린 등등 호르몬의 이름을 부제로 하고 있어 다양한 호르몬의 기능처럼 청소년기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 반항아 학생과 교사 내지 부모와의 갈등, 친구들 간의 우정과 사랑 등 우리가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연출자는 “어른들이 보고자 하는” 모습이 아니라, 부정하고 싶으나 부정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어두운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내고자 하였다.

드라마에는 학교 폭력과 흡연, 음주, 성 등 민감한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유혈이 낭자하도록 패싸움을 하거나 이유 없이 학급 친구를 따돌리고, 이성 또는 동성 친구와의 성관계까지도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자극적인 소재와 장면들이 시청률과 이슈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현실보다 저속하고 과장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이 드라마에 깊이 공감하고, 환호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실제 청소년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시사함은 또한 부정할 수 없다.

2000년대 태국 최고 인기 가수였던?브리이오니.?마약, 혼전임신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그는 최근?요가 강사로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고 있다. <사진캡쳐=유튜브>

태국 마약중독 치료자 80%가?중고생

실제로 태국의 청소년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청소년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비단 태국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태국의 경우 청소년 문제가 매우 빠른 속도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고, 특히 기성세대들이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일부만의 문제라고 덮어두려고 하는 것이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중파 방송인 CH3의 아침 뉴스에서 여학생 폭력 동영상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교복을 입은, 그냥 보기에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여학생들은 재미있다는 듯 구경을 하거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이 폭력 동영상이 보도되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앵커는 개탄했다.

하지만, 실제로 태국 내 청소년 폭력 문제는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으며, 태국?사회개발인간안보부(Ministry of Social Development and Human Security)에서 지난 2008년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중 30.4%는 조사 당시부터 이전 3개월 동안 다른 학생에게 물리적 폭행을 가했거나 폭력 사태에 가담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학생들 간의 폭행 장면을 담은 영상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폭력은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청소년 임신이다. 태국의 청소년 임신율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라오스 다음으로 높다(태국 보건복지부 2011년 통계자료). 전체적인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청소년 출산율만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데, 2011년 기준으로 1000명의 신생아 중 54명이 청소년의 아이이다. 이 수치는 미국보다도 높은 수치이며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열배나 높다. 문제는 이러한 청소년 출산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2000년도와 비교하면 15~18세 청소년의 출산율이 43%나 증가했다.

청소년 임신율과 함께 낙태율도 또한 증가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유엔인구기금(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과 태국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Office of the National and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Board)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낙태가 6만 건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0년 11월, 방콕의 파이응언 사원에서 수천 구에 달하는 신생아 사체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태국은 보통 화장터 시설이 갖춰진 사원에서 화장을 하는데, 파이응언이라는 방콕 외곽의 한 사원에서 역겨운 냄새의 근원지를 추적을 해 본 결과 봉지에 담겨진 수백구의 신생아 사체가 발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의사의 자백으로 총 2002구에 달하는 신생아의 사체를 찾아냈다. 인근 지역의 병원들에서 불법 낙태한 태아의 사체로 대부분은 청소년 낙태의 결과물이었다는 의사의 증언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청소년 출산과 낙태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보수적인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충분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청소년 마약 문제 역시 심각하다. 태국의 마약예방진압국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마약관련자(중독자 및 거래자)의 수가 2012년 120만 명에서 2013년에는 190만 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동안 마약중독 치료를 받은 환자의 수는 33만 명이었는데, 이 중 80% 이상이 중고등학생이었다. 2011년 한 해 동안 청소년 범죄는 총 3만5000건 가량이었는데 이 중 약 40%인 1만3845건이 마약 관련 범죄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마약을 복용하는 청소년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져 지난 6년 간 만 7~17세 마약중독자의 수가 5~6배 증가한 점은 청소년 마약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교롭게도 드라마 ‘호르몬’의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7월 말, 드라마의 여주인공 중 한명인 쑤탓따 우돔씬(빤빤)이 마약을 복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6살의 고교생 배우 빤빤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상승궤도를 달리고 있었으며 드라마 ‘호르몬’을 통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나, 과거 친구들과 중추신경 흥분제로 향정신성의약품의 일종인 암페타민(야 아이스)을 복용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삽시간에 퍼지면서 결국 혐의를 인정하고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사업가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유복하게 자란 빤빤. 그저 친구들과 호기심에 한번 복용하였다는 진술과 구속 당시 검사 결과 체내에 잔여물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벌금과 훈방 조치로 마무리 되었지만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추락해 연예계 복귀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빤빤 사건으로 청소년 마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몸소 드라마의 현실성을 증명해보인 셈이 되었다.

지난 7월 말, 태국 방송통신위원회(National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Commission)가 방송통신심의규정 37조(“국왕을 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통치체제를 전복하려는 내용이나 국가 안보나 평화, 국민의 윤리에 악영향을 미치는 형태, 또는 선정적인 내용이나 정신건강에 유해한 경우 방송을 제한 한다”)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드라마 ‘호르몬’의 방영 금지 처분을 내리려 하자, 시청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팬들은 “공중파에서 본처와 후처가 물고 뜯고 싸우는 장면이나 살인, 강간 등의 장면은 여과 없이 방송하면서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영을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박했다. 또한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드라마 상영 금지 처분은 반대 운동의 확산으로 무산되었고 드라마는 최종회까지 무사히 방영되어 현재 속편제작이 예정되어 있다.

단순히 자극적인 케이블 드라마가 아닌,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 드라마 ‘호르몬’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문제를 꺼내 보이기 싫어하는 태국인들, 특히 자신의 자식, 손주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기성세대들이 무조건 덮어두고 상처를 곪게 만드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태국 사회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박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조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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