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탁신의 귀환, 또 다른 카오스의 시작?

탁신 전 총리 사면 법안 통과

지난 7월 26일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만 64세 생일이었다. 2006년 9월 군부쿠데타로 실각한 후 7년째 망명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 아들 판텅태 친나왓이 직접 중국 베이징에서 아버지를 만나 촬영해 자신의 SNS를 통해 유포한 동영상 속의 탁신 전 총리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곧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던 고국, 멀지 않은 곳을 떠돌면서도 자신의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아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슬픔 등을 낮은 어조로 전하는 탁신 전 총리. 말미에는 국민의 화합을 보고 싶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8월 7일과 8일, 탁신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범들에 대한 사면 법안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결국 찬성 300표, 반대 124표로 1차 심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 약 3000여명과 그?선두에 선 아피씻 웨차치와 추안 릭파이 등 야당 민주당(쁘라차티빳당) 지도부의 가두 시위가 있었지만 법안의 통과를 막지는 못했다. 표면상으로 탁신 전 총리를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2006년 쿠데타 이후 발생한 정치 사건과 시위 관련자들에 대한 포괄적인 사면을 목적으로 하는 이 법안이 앞으로 두 차례 더 예정된 심의에 모두 통과하게 되면, 탁신 전 총리의 사면과 귀국으로 이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 반대파들의 입장이다.

태국에서 속칭 ‘레드셔츠’와 ‘옐로우셔츠’의 갈등으로 불리는 친탁신 세력과 반탁신 세력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군부 쿠데타 이후로 볼 수 있다. 탁신 전 총리 1기 집권 말기인 2005년 말부터 쏜티 림텅꾼을 필두로 한 반탁씬 세력의 집회가 이어지다가 2006년 초에 들어 통신사인 ‘친코퍼레이션’의 지분을 싱가포르 국영투자기구인 테마섹에 매각하면서 탁신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증폭돼, 부정 비리와 왕실 모독 등의 이유로 탁신을 반대하는 세력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9월 19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후 2007년 새로 실시된 총선에서 다시 친탁신계 정당이 승리하면서 2008년 5월부터 반탁신 시위가 다시 심화되었는데, 이 당시부터 친탁신 세력들이 태동하였다. 2008년 하반기에 들어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여 비상사태가 내려졌고, 이후에도 반탁신 세력들은 정부 청사와 공항 등 공공시설을 점거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2008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선거법 위반으로 집권당 해체를 선고하면서 민주당이 연정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고, 정치 활동이 금지된 탁신계 정당 의원들이 친탁신 세력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레드셔츠’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듬해 4월에는 팟타야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레드셔츠’들이 회의장에 난입하며 급기야 정상들이 헬기와 스피트 보트로 회의장에서 탈출을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10만 여행객의 발을 묶은 국제공항 점거부터 시내 유명 백화점 방화, 국제회의장 난입까지. 5년 여에 걸친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의 충돌의 비화들은 그야말로 태국의 ‘레드’와 ‘옐로우’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 행위를 세계에 단단히 각인시킨 초유의 사건들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필자가 체감하는 것 보다 훨씬 원색적으로 국제 언론에 비추어진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잉락 총리 지지율은 떨어지고

최근의 태국 내 정치적 갈등에 있어 탁신 전 총리는 말 그대로 알파요 오메가나 다름없다. 관용을 미덕으로 여기고 에둘러 말하기를 좋아하는 잔잔했던 태국 정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 바로 ‘탁신’이다.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의 갈등으로 전국민적 갈등과 반목, 지역 감정이 심화되었다. 이제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을 기피할 정도로 정치적 ‘색깔’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영국과 두바이, 홍콩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탁신의 시선과 마음은 늘 태국으로만 향해있다. 탁신 전 총리의 막내 동생인 잉락 친나왓 현 총리 역시 ‘탁신’이라는 브랜드 덕분에 (내지는 떠밀려) 총리직에 올라, 탁신의 꼭두각시라는 꼬리표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1년 이후 5번의 정부가 바뀌었지만 총선으로 국민들이 뽑은 정부는 3번 모두 탁신계 정당이었고, 국내에 있는 정치인들의?백마디 말보다 멀리 있는 탁신의 화상통화 한번이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 탁신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가장 ‘핫’한 이름이다.

지난 7월 초, 한 녹취 파일이 태국 사이버 공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녹취 파일에는 ‘탁신 전 총리와 매우 흡사한 목소리’의 한 남자와 현 국방부 정무차관인 ‘윳타싹 싸씨쁘라파 장군과 매우 흡사한 목소리’의 또 다른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탁신 전 총리를 고국으로 다시 모시고 오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내용이다. ‘윳타싹 장군 목소리를 닮은’ 남자가 (2006년 군부쿠데타의 배후로 알려져 있는 왕실 추밀원 원장 쁘렘 띤나쑬라논) 장군님이 탁신 전 총리가 들어와도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나 증명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말하자, ‘탁신 전 총리를 닮은 목소리’의 남자는 자신은 국가의 화합과 발전을 원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복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윳타싹 장군 목소리를 닮은’ 남자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반드시 ‘보스’를 태국으로 모시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확언하자, ‘탁신 전 총리를 닮은 목소리’의 남자가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특히 둘은 국방위원회의 사면을 운운하고 있는데, 그 전에 단행된 개각에서 잉락 총리가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게 되면서 이것이 사면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또한 미얀마 다웨이 경제특구 개발과 관련하여 미얀마 정부에 대한 언급도 있어, 탁신 정부 당시 장관직에 있던 내부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점도, 이것이 진짜 음성파일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녹취 파일은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사자인 윳타싹 장군은 (당연한 대응이겠지만)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집권당 의원들은 조작된 파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탁신 전 총리의 아들인 판텅태 친나왓이 “30년간 아들로 살아온 내가 들었을 때 확실히 아버지 목소리가 맞다”고 주장하며 하지만 일부 내용은 편집되고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중국에서 아버지를 만나 확인한 후 진위 여부를 밝히겠다고 하더니, 대신 생일 동영상을 SNS를 통해 게시한 것이다. 침묵으로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던 프아타이당의 의도대로 이 사건은 점점 여론의 관심에서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얼마 후 정치범 사면법안이 의회 심의를 통과했다.

탁신 전 총리는 이미 실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에 귀국 후 수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면이라는 것이 공공연하게 논의되어 왔다. 그리고 결국 사면법이 1차 심의를 통과하면서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일이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나 태국인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은 아직 팽배해 있다.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이 현실화 되었을 경우, 한동안 잠잠하던 반탁신 ‘옐로우셔츠’들이 또다시 궐기하고, 탁신을 지지하는 ‘레드셔츠’들이 무대 위로 재등장하며,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또 다른 세력들이 난입할 경우 태국의 정세는 다시 한번 혼돈의 시대로 진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잉락 총리의 지지율은 취임 이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 이상은 “잉락 총리가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 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 중 하나는 선심성 공약의 실천을 위한 무리한 쌀 수매 정책으로 국제 시장에서 쌀 가격 경쟁력 저하와 수출 감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사면 문제이다. 정계 진출 당시부터 탁신의 아바타로 불리던 잉락 총리는, 정국이 안정되면서 호감형인 외모와 성격, 그리고 여성 지도자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비교적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탁신 귀국 프로젝트’의 가시화로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하루 빨리 기업인의 평범했던 시절로 돌아가 아들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클지도.

탁신 전 총리의 귀향이 잔잔한 것처럼 보이던 태국에 또 어떤 큰 파장을 몰고 올지, 그것이 태국을 또 다시 혼란속으로 잠식시킬지, 아니면 새로운 발전으로의 발판으로 작용할지 그 판단은 역사의 몫이 될 것이다.

태국 정부는 오는 9월 2일 태국의 민주주의와 국민 대화합을 위하여 “Uniting for the future: Learning from each other’s experiences”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두달에 한번씩 세계 민주주의 관련 명사들을 초청해 민주주의와 관련한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배우자는 취지로 계획한 행사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초청에 응해왔다고 잉락 총리는 밝혔다. TV 생중계와 태국어 동시통역이 제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국 전문가들에게서 민주주의와 화합을 배우자는 이러한 발상이, 현재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을 앞두고 과연 태국인들에게 얼마큼의 호응을 얻어낼 지는 의문이다. <박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조교수>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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