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 칼럼] 아웅산 수찌는 미얀마를 이끌 지도자인가?
호주 방문 앞둔 아웅산 수찌, 속내는 복잡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아웅산 수찌는 한국, 유럽, 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를 방문하고, 미얀마의 지속적인 개혁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곧 호주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도를 결집시켜, 현 정권의 연성화를 추진하고 동시에 자신의 기득권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장기간의 가택연금(1989년 이후 15년)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 맥락, 쟁점 등을 학습하는 기회도 될 수 있다.
미얀마 국민이 아웅산 수찌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녀의 탁월한 도덕성, 아웅산 장군의 혈육이라는 후광효과, 군부통치로 인한 피로감 누적에 따른 반사효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제도권 입성 이후 현실정치인의 역할 수행에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현 정부의 중대 과제인 종족과 종교 갈등 해결에 기여도는 매우 낮다. 산재한 과제 해결에 집중하지 않고, 외유로 인해 사리사욕을 모색하는 인물로 평가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미얀마 내 소수자를 보호하지 않는 입장을 유지함에 따라 작년 미국 방문 당시 소수종족 이주민들의 입국 거부 퍼포먼스가 있었고, 호주 방문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소수종족과 무슬림 등 국민적 동질성이 허약한 집단 중 일부는 삥롱회담(1947)에 따른 연방제가 실현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아웅산과 아웅산수찌를 동시에 지지하지 않았다.
종족 및 종교 갈등을 두고 아웅산수찌는 정부의 행정경험 부족, 이로 인한 위기관리부재 등을 비판해 왔지만,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NLD 내 역량이 미비하고, 2015년 총선을 염두에 둔 눈치 살피기 등 향후 실천 가능한 대안의 제시 가능성도 매우 낮은 상황이다.
미얀마에서 그녀는 무엇을 했나
국내적으로 아웅산 수찌와 국민민주주의연합(NLD)에 대한 지지철회 또는 비판세력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국민의 ‘어머니’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범여권 내 아웅산 수찌의 대항마가 부재하고, 아웅산 수찌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유효하며 광범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로 인해 여전히 차기정권의 유력한 지도자로 거론된다.
그녀에 대해 완벽한 도덕성과 강인한 정신력의 결정체이자 아웅산의 화현(化現)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있다. 아웅산 수찌 본인이 집필한 저서(2권)를 포함하여 서적과 영화를 통해 그녀의 생애가 조명됐다. 공통적으로 그녀는 무결점의 인간으로 군부독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러한 이유로 그녀의 언행은 절대 선이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정령신 낫(nat)과 대등하거나 아웅산의 영혼을 그대로 이식받은 초자연적 존재로서 국민들 사이에는 신격화, 우상화의 대상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아웅산 수찌가 집권할 경우 초자연적 힘으로 국가의 정치와 경제발전을 성공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장기간의 가택연금으로 인해 국민의 반 군부 정서는 확대된 반면, 아웅산수찌에 대한 신비감도 증대된 측면도 있다.
1989년 가택연금 이래 그녀는 독재정부를 붕괴시킨 세계의 민주화지도자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포로가 된 공작새’와 같은 시적인 표현도 있었다. 독실한 불교도로 가택연금 중 미얀마의 전통 수행방법 중 하나인 ‘위빠사나’ 고행을 통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빠사나는 자아를 분리하는 수행법으로 개인적 고통, 욕망, 타인에 대한 증오, 분노 등을 절제하는데 초점을 둔다.
개인적 차원에서 수행을 통한 고통의 해체는 납득할 수 있지만, 국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정치력 배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가택연금 이후 경제제재와 관련한 입장 변화, 군부의 정치적 역할, 소수종족과 종교 분쟁 등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 여당뿐만 아니라 당 내에서도 협력보다 돌출행동을 함으로써 정치력에 도전을 받고 있다.
동지들의 투옥, 해외 망명으로 NLD의 활동영역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지만 남아공의 사례처럼 국내외적 연대, 독재정권과 맞설 수 있는 현실적 대안 마련이 부족하다. 간헐적으로 발표된 그녀들의 글에서는 애민정신, 인권 존중, 인간개발의 필요성 등이 역설되었으나 이에 대한 실천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해외 망명자들의 독자세력화, 동지들의 고령화로 인해 NLD는 연명자체가 기적적일 정도로 아웅산수찌의 당내 입지는 굳건했다. 그러나 제도권 정당으로 현실정치에 복귀할 당원 교육, 정강 마련, 정책 제시 등 모든 방면에서 준비는 미비했다.
대권 걸림돌 헌법 독소조항 철회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과연 아웅산 수찌는 대권 주인 될 수 있을까. 헌법 개정이 최대 변수이지만, 출마를 위한 독소조항은 모두 철회될 가능성이 크다. 미얀마의 정치개혁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과 감시의 대상이므로 아웅산 수찌를 구속하기 위한 헌법 조항은 철폐될 것으로 보인다.
아웅산 수찌는 해외 순방을 통해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총선이 민주적으로 실시될 수 있도록 우회적으로 개입할 환경을 조성해 왔다. 헌법 개정의 수준을 속단할 수 없지만 여당과 군부는 아웅산 수찌가 당선될 수 있는 정치 환경을 최대한 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국내정치와 국제사회 간 갈등이 발생하고, 역설적으로 아웅산수찌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정치인으로서의 위상과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정권 교체와 민주화가 달성 가능하다. 정치적 존재감이 허약한 상황에서 국가적 중대사인 소수종족과 종교 분쟁의 해결안 제시는 아웅산 수찌의 지지도를 확대할 유일한 대안이었다.
연방제의 수준, 로힝자족을 포함한 무슬림의 시민권 인정, 각 소수종족의 평등권 보장 수준 등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는 정책 마련 등이 결정적 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고 미래권력을 도모할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므로 의회 내 제한적인 정치 환경, 군부의 비협조,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 등을 정치활동의 장애물로 인식하지 말아야할 필요가 있다.
수권 인물, 정당으로 역량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정권 창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인 정국 운영은 불가능할 것이며, 이는 곧 아웅산 수찌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NLD의 정치적 영향력은 버마족으로 제한되는 형국에서 후속세대 양성 미진, 야당 및 시민세력과의 연대 불투명 등으로 인해 점진적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아웅산 수찌도 고령(68세)임을 감안할 때 2015년 총선 및 대선이 마지막 정치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며, 정치적 존재감을 각인시킬 때 소속 정당의 국민적 지지도는 유지될 수 있다.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책임연구원>
*이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