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 전문가칼럼] 방글라데시, 인구과잉 ‘짐’에서 ‘자원’으로
*아래 글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운영하는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EMERiCs)에서 제공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다르게 보기
작년 말 <이코노미스트>는 ‘바구니에서 나오다’라는 제목으로 방글라데시의 발전과 개발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1970년대 닉슨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아무리 재원을 쏟아 부어도 변화가 없는 방글라데시를 ‘밑 빠진 바구니’에 비유했었다. 비록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방글라데시는 이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방글라데시가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아니, 오래 전부터 방글라데시는 주목을 받았지만, 이는 기아, 빈곤, 홍수, 부정부패, 인구과잉 등의 문제점들 때문이었지 긍정적인 시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1990년부터 고질적인 문제들을 점차적으로 해결했고, 현재는 브릭스의 뒤를 이을 신흥국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꾸준히 5%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약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였다. 그러나 1990년 이후부터 5%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오고 있다. 또한 가족계획이 성공하면서 인구 문제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는 가족계획 교육과 피임약 보급을 꾸준히 해왔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 가임 여성의 피임률은 8%에서 2010년에는 60%로 늘어났다. 현재 방글라데시 여성의 출산율은 2.3명으로 인구 정체수준인 2.1% 보다 약간 높지만, 남아시아 국가에서 드물게 가족계획이 성공한 국가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녹색혁명의 성공으로 곡물 수출국이 될 전망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벼 품종 개량으로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2012년까지 3번의 글로벌 식품가격 폭등과 두 번의 싸이클론이 지나갔지만,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위기들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현재 방글라데시 발전의 장애물로 꼽는 5가지 문제 중 3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있거나 해결책을 찾았다. 방글라데시의 문제는 첫째 인구과잉, 둘째 자연재해, 셋째 불평등, 넷째 부정부패, 다섯째 정치적 불안정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제 방글라데시는 인구과잉 문제를 통제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거대 인구가 국가의 ‘짐’으로만 여겨졌던 데 반해 현재는 오히려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해외 각국으로 진출한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현재 본국으로 많은 돈을 송금함으로써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인도,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개발도상국들도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몰려들고 있다.
둘째, 자연재해는 비록 막을 수는 없지만 자연재해에 응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간구되고 있다. 특히 이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던 식량 자원을 보전할 수 있는 강력한 대응 전략을 마련했다. 방글라데시는 몬순시즌에 강수량이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수대비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다. 따라서 홍수 이후에 농작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어 이로 인해 수 없이 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하층민들은 수해와 복구를 반복하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수해에 강한 벼를 개발하고, 홍수 이후에 1작을 더할 수 있도록 벼 품종을 개발하여 보급했다. 1971~2010년까지 방글라데시의 경작지는 10% 정도 늘었지만 생산량은 3배 이상 늘었다. 그 결과 홍수로 인한 빈곤선 아래로 추락하는 국민들이 급속히 줄어들게 되었다.
브릭스의 뒤 이를 신흥국으로 주목
셋째, 불평등의 문제는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점차 해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30%대에 이르던 극빈층 이하의 국민들은 2000년대에 20%대로 줄어들었고, 2005년경에는 19%로 낮아졌다. 물론 여전히 극빈층이 많지만, 기초보건 분야에서 국민들 다수가 혜택을 받았고, 그 결과 보건 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0~2010년 간 방글라데시인의 평균기대수명은 59세에서 69세로 늘어났다. 방글라데시의 평균수명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배 많은 인도보다 4년이 길다. 또한 1990년 1000명당 영아사망률 97명에서 37명으로 낮아졌고, 유아 사망률은 같은 기간의 2/3로 낮아졌다. 이러한 보건관련 수치들은 인도보다 훨씬 더 앞서있다. 또한 임노동자의 임금도 2000~2010년 동안 59% 인상되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주변국의 임노동자들과 비교할 때 양호한 편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빈익빈 부익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 징수의 투명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방글라데시 국세청(National Board Of Revenue, NBR)에 따르면, 1억6000만 국민 중 2000만 명만 세금을 내고 있다. 비록 유·청소년층의 인구가 많다는 것을 가정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내는 국민이 적은 것이 아니라 뇌물을 주고 탈세를 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세금 투명화가 제도적으로 잘 정립되고 시행된다면, 불평등 문제와 부정부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방글라데시 발전을 막고 있는 부정부패 문제와 정치적인 불안정을 제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이웃국가 인도도 비록 느리긴 하지만 부정부패 문제와 정치적 불안정을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다. 인도는 국가 전체적으로 투명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뇌물수수 비리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으며, 이를 차단할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다. 또한 2010년을 전후한 인도 선거에서 이념 기반 정치와 카스트 기반 정치에 전환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하르 주를 포함한 일부 주에서 유권자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자들을 뽑았다. 유권자들의 변화에 후보자들도 정치적인 계략이 아닌 민생해결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게 되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인접국 인도의 변화는 방글라데시에도 희망이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방글라데시를 다르게 봐야 할 이유는 발전의 과정과 변화의 동력이다. 방글라데시는 부정부패와 정치적인 불안정이 심각하지만, 변화의 동력이 되는 ‘특별한’ 요소를 갖고 있다. 이는 여성과 비정부기구(NGO)이다. 지난 30년간 방글라데시 변화의 중심에 ‘여성’이 있었고, 이들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보수적인 남아시아에서 여성은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특히 여성의 결혼지참금이 일반화 되어있는 방글라데시에서 여성은 짐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에서 가족계획이 성공하면서 여성의 자율권과 사회 참여도 가능하게 되었고, 건강도 증진되었다. 또한 섬유산업(전체 고용의 4/5가 여성)의 발전과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한 미소금융의 발달로 여성은 경제적인 독립을 성취하게 되었고, 이는 가정 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향상은 소비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소모적인 남성의 소비와 달리 여성은 식품 구입과 건강 증진, 교육 등 삶의 질 향상과 재생산을 위해 지출하였다. 그 결과 여성은 가정의 복지를 뒷받침하게 되었고, 이는 방글라데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춧돌이 된 것이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수많은 NGO단체들이 활동하고 있고, 일부 NGO단체는 방글라데시 역사와 함께 시작하여 지금은 성숙단계에 있다. 대표적으로 BRAC와 그라민 은행을 들 수 있다. BRAC는 방글라데시 난민 응급구조 활동을 시작하면서 출범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구호활동 NGO단체가 되었다. BRAC는 구조된 난민의 자생을 위해 양계장과 낙농업을 개업하였고, 판로가 어렵게 되자 점포를 열어 이들을 도우며 활동 범위를 확장해 갔다. 뿐만 아니라 난민들을 위해 학교 사업과 보건 사업도 지원하였고, 심지어 이들에 필요한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각 지역에 법률상담소를 설치하는 등 빈민들의 생활 전반과 관련된 사업 대부분 지원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미소 금융을 지원하면서 이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돕는다. 그라민 은행은 의식교육도 동시에 진행하면서 여성 권익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라민 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하면서, 세계 각 지역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 30여 년 간 NGO 단체들이 정치적 불안정과 부정부패로 뒷전으로 밀린 민생을 지원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발전을 지켜본 국제기구들은 방글라데시가 더 이상 ‘문제 국가’가 아닌 다른 개발도상국에 ‘모범 국가’가 되었다고 입을 모으며, 방글라데시의 도약에 주목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천연가스와 석유 등 주요 에너지 지원을 보유하고 있고, 1억 6000명에 달하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으며, 변화된 여성과 NGO라는 특수한 발전 동력도 갖고 있다. 따라서 방글라데시 발전을 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 부정부패 문제와 정치적 불안정이 해결된다면, 거침없이 도약하는 방글라데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글=신진영/한국외국어대 북벵골만 연구사업단 전임연구원>